주간동아 400

2003.09.04

사이버 쓰레기 재활용 ‘공공의 이익’

스팸메일 포함 쓰지 않은 파일 폐기 … 누군가에 필요한 자료 땐 ‘나비효과’ 가능

  • 허두영/ 사이언스타임즈 편집주간 twenny@ksf.or.kr

    입력2003-08-28 14:4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이버 쓰레기 재활용 ‘공공의 이익’

    스팸메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스팸메일에 대한 해결책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허름한 식당, 한 부부가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 안으로 들어선다. 부부는 자리를 잡고 앉은 후 종업원에게 묻는다.

    “식사 메뉴로 뭐가 있죠?”

    “달걀과 스팸이 있습니다. 베이컨과 스팸도 있고, 소시지와 스팸도 있습니다. 스팸 달걀 스팸 베이컨도 있고, 스팸 소시지, 스팸 감자, 스팸 토마토도 있습니다. 스팸 스팸 스팸….”

    1970년대 스팸이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 BBC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종업원은 손님의 기호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한 가지 메뉴만 소개한다. 스팸이란 이른바 식당에서 강제로 제공하는 메뉴인 셈.

    미국 미네소타주에 자리한 식품업체 호멜푸즈(Hormel Foods)는 1937년 훈연한 햄을 깡통에 담은 새 제품을 소개하면서 이름을 공모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스팸(SPAM)’이다. 당시 호멜푸즈가 스팸을 홍보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광고를 했는데 그 ‘광고공해’가 사회문제로 부각되면서 이 같은 풍자극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루 평균 6. 7통 … 연 13만원 피해

    어쨌든 햄으로서의 스팸은 독보적인 성공을 거뒀다. 스팸 통조림이 1937년 공장에서 처음 생산된 이래 지난해까지 모두 60억개가 출하됐다. 스팸은 미국에서만 3.1초마다 1개씩 소비되고 세계 41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인기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쏟아내기식 ‘스팸’ 광고전략은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됐다. 결국 인터넷시대에 스팸은 ‘더 이상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은 짜증나는 광고’ 혹은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무차별적으로 뿌리는 어떤 것’이라는 뜻을 갖게 됐다. 네티즌들은 성가신 이메일 광고를 ‘스팸메일’, 이를 보내는 사람을 ‘스패머(spammer)’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정보통신의 발달은 스팸의 범위를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스팸전화와 스팸팩스, 심지어 스팸메신저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문제는 인터넷에서 벌어진다. 일확천금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도박 사이트 메일, 화끈한 밤을 장담한다는 포르노 사이트 메일, 발신지를 밝히지 않는 불법 광고 메일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전자우체통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이러한 쓰레기는 인터넷 속도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실정.

    사이버 쓰레기 재활용 ‘공공의 이익’


    사이버 쓰레기 재활용 ‘공공의 이익’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사이버 쓰레기장 ‘사이버푸벨’. 스팸메일도 한데 모으면 재활용할 수 있다는 원리가 적용됐다.

    더욱이 인터넷 이용자는 스팸메일을 정리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이는 생산성을 중시하는 기업에 치명적인 장애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스팸메일은 과연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자주 뿌려지고 있을까. 지난해 말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네티즌 한 사람이 하루에 받는 스팸메일은 평균 6.78통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나라리서치가 올 7월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네티즌 가운데 이메일을 사용하는 사람은 약 2058만명이며, 이 가운데 스팸메일을 받아본 사람은 전체의 98.9%인 2037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스팸메일을 받고 지우는 데 따른 사회·경제적 총 손실비용이 연간 2조6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는 것. 스팸메일 때문에 네티즌 1인당 1년에 13만원의 피해를 본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내 네티즌이 받는 평균 6.78통의 스팸메일은 미국의 보통 기업 직원이 받는 스팸메일 수신 건수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인건비를 기준으로 할 경우에는 더 큰 차이가 난다.

    미국의 뉴클레우스 리서치가 최근 공개한 ‘스팸-보이지 않는 수익률의 적’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미국 기업이 스팸메일 때문에 연간 직원 1인당 874달러(우리 돈 약 100만원)의 손실을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시간당 임금 30달러에 연간 2080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도출)

    또한 최근 네트워크 어소시에이츠가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들은 스팸메일을 정리하는 데 1주일에 평균 40분을 소비한다는 것. 미국 기업에서 직원 한 사람이 받는 스팸메일은 하루 평균 13.3통으로, 이를 정리하는 데 하루 평균 6.5분을 소비하고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스팸메일 때문에 미국 기업 직원 1인당 생산성이 연간 1.4% 떨어지는 것. 문제는 스팸메일에 대응할 마땅한 방책이 없다는 데 있다.

    뉴클레우스의 이안 캠벨 사장은 “스팸필터를 설치하면 시간 낭비를 줄여 생산성 저하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지에 대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다.

    이처럼 ‘스팸’이란 어휘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자 호멜푸즈는 상표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회사 홈페이지(www.spam.com)에는 스팸에 대한 친절한 설명과 함께 “우리는 원하지 않는 상업용 이메일을 보내지 않습니다(We oppose the act of ‘spamming’ or sending unsolicited commercial email)”라는 문구가 있다.

    나아가 7월 초에는 미국 상표특허청(PTO)에 스팸메일 차단 소프트웨어 업체인 ‘스팸어레스트’의 상표권 등록 신청을 거부해줄 것을 요청하는 한편, 이 회사를 상표권 침해로 워싱턴 법원에 제소했다. 스팸이란 말에서 ‘쓰레기’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어내고 오로지 ‘햄’으로만 사용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한 셈이다. 물론 스팸메일 처리에 힘을 쏟는 회사들은 “누구나 스팸이라는 단어를 ‘쓰레기’로 사용하는 상황에서 무리한 요청을 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쯤 되면 정보통신 업계의 관심은 스팸메일을 재활용하는 방안에 쏠릴 수밖에 없다. 일반 쓰레기를 재활용하여 자원을 재생하고 환경을 보호하듯, 스팸메일도 재활용하여 사이버 자원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인터넷 환경을 정비하자는 것.

    올해 초 프랑스에 ‘사이버푸벨’(www.cyberpoubelle.com)이라는 사이버 쓰레기장이 등장했다. 푸벨(Poubelle)은 19세기 말에 프랑스 리제르에 쓰레기 공동 수거함을 설치하는 법령을 제정하여 환경을 개선한, 주지사 정도 되는 인물이다. 이 사이트의 기능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쓰지 않는 파일을 이곳에 버리면 다른 사람이 뒤져서 주워 갈 수 있도록 한 사이트로, 일종의 사이버 쓰레기 재활용 공간이다.

    무심코 휴지통에 버린 파일이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자료라면? 내가 버린 문서를 누군가 재활용해준다면? 그 결과는 나비효과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어 결국 인류에 공헌할지도 모른다.

    이 사이버 쓰레기장에는 텍스트 소리 이미지 등 모든 형태의 사이버 쓰레기를 버릴 수 있다. 그러나 차별도 있다. 컴퓨터 바이러스와 포르노, 그리고 인종 차별적인 내용을 담은 파일은 쓰레기로 인정해주지 않는다. 이들은 쓰레기장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진짜 쓰레기인 셈이다.

    이 사이트를 기획한 프랑스의 조형예술가 엘자 마조는 “만인의 공리(公利)는 사이버푸벨이 실천하는 사이버 세계의 재활용 철학이다”라고까지 주장했다. 이들은 수거된 쓰레기 파일들을 소재로 한 작품전도 기획하고 있다고 하니, 이제는 사이버 쓰레기의 적극적인 활용방안이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징조가 보인다 하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