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0

2003.09.04

샤론 총리 감춰진 과거 ‘들통’

최근 베일 벗은 4차 중동전쟁 비밀문서 통해 … 참전시 명령 불복종에 판단착오

  • 텔아비브=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입력2003-08-28 14: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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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론 총리 감춰진 과거 ‘들통’

    샤론 이스라엘 총리.

    이스라엘 언론은 최근 그동안 1급 비밀문서로 보호되었던 제4차 중동전쟁에 대한 IDF(이스라엘 방위군)의 공식기록이 곧 공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기록이 공개되면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그동안 연구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던 점들이 일부 밝혀질 전망이다.

    제4차 중동전쟁은 1973년 10월6일 이집트군과 시리아군이 연합해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함으로써 발발했다. 이스라엘의 명절인 욤 키푸르(대속죄일)에 발발했기 때문에 ‘욤 키푸르 전쟁’으로도 알려져 있고, 아랍권에서는 10월 전쟁, 혹은 라마단 전쟁(라마단 달에 발발했다고 해서)이라고 불린다. 18일 간 이어진 전투로 2만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한 이 전쟁은 10월24일 유엔 주도로 휴전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끝이 났다.

    이스라엘은 1948년 제1차 중동전쟁(독립전쟁)을 통해 독립국가를 건설하고, 56년 제2차 중동전쟁(시나이 캠페인)으로 지중해와 수에즈 운하의 통행권을 확보했으며, 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으로 북쪽의 골란고원과 남쪽의 시나이반도를 획득하는 등 연이은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며 아랍권과 전 세계에 ‘무적 이스라엘군’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러나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전쟁 초기 아랍군의 기습공격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유대력으로 1월10일인 욤 키푸르는 유대인들이 금식하며 한 해 동안 저지른 잘못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경건한 명절로 모든 노동이 금지되는 안식일이기도 하다. 관공서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대중교통도 운행하지 않는 이 날에 전쟁이 터져 이스라엘의 피해가 더욱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초기 전투에서의 연이은 패배로 이스라엘군은 그 명성에 적잖은 흠집을 남겼고,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서는 ‘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볼 것이냐, 패배한 것으로 볼 것이냐’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98년 비밀 해제에도 불구 공개 꺼려



    제4차 중동전쟁 당시 IDF 정보국이 수집한 각종 정보, 정부각료 회의 기록, IDF 지휘부의 작전회의 기록 및 하급 부대에 하달된 통신, 문서명령, 각급 부대에서 올린 보고서 등의 방대한 기초자료를 토대로 IDF 역사기록부가 집필한 2권, 744쪽 분량의 이 전쟁기록은 98년으로 이미 비밀 유지 기한이 종료된 문건이다. 그러나 그간 여러 이유로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군 고위 관계자 등 소수의 제한된 사람만이 열람할 수 있었다.

    이 전쟁기록에 대한 공개 여부가 최근 언론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전쟁 당시 남부전선 사령부에서 통신기술자로 복무하며 남부전선 사령관의 지휘 내용을 녹취한 두 예비역 군인이 최근 이를 이스라엘의 두 일간지 ‘마아리브’와 ‘예디옷 아하로놋’에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현재 두 사람은 비밀로 간직해야 할 IDF 복무 시절 수집 문서와 정보를 사유화하고 남에게 양도한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다.

    샤론 총리 감춰진 과거 ‘들통’

    제4차 중동전 와중인 1973년 10월15일 시리아로 진격하는 이스라엘 방위군. 제4차 중동전 때 수에즈 운하 부근에서 항복한 이집트 병사들을 끌고 가는 이스라엘 병사(왼쪽부터).

    IDF 역사기록부가 작성한 기록은 대부분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것이 관행이다. 제4차 중동전쟁 기록 이외에도 제1차(1988년~92), 제2차(2000년 9월∼현재) 인티파다 관련 기록 등 많은 기록이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주요 일간지 ‘하아레츠’가 “IDF 고급 장교들의 일반적 경향은-특별히 그들이 더 높은 계급으로 진급하기 원한다면-역사 연구의 결과물에 ‘일급비밀’ 도장을 찍어 창고 안에 던져놓는 것”이라고 비꼬았듯이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 때문에 애써 연구한 귀중한 역사자료들이 창고에서 썩고 있다.

    이들 기록에서는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민감한 사안과 정책결정자인 현역 군 장성, 정치 지도자들이 언급되고 있고, 이들은 자신들이 언급돼 있는 이러한 공식기록이 공개되는 것을 꺼린다. 제4차 중동전쟁 관련 기록이 비밀 유지 기한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주요 이유 중 하나도 현 총리인 아리엘 샤론이 부정적으로 평가돼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샤론 총리는 제1차 중동전쟁인 독립전쟁에 소대장으로 참전한 것을 시작으로 4차에 걸친 중동전쟁에 빠짐없이 참전해 용맹을 떨친 전쟁영웅이다. 독립전쟁 당시 예루살렘 근교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고도 전황이 절대적으로 불리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일화와 사단장으로 참전한 6일 전쟁에서 부상한 머리를 붕대로 싸매고 부대를 지휘하는 모습이 담긴 낡은 사진은 이스라엘 국민들 머릿속에 깊이 각인돼 있다.

    73년 6월, 당시 남부지역 사령관이던 샤론은 자신이 참모총장이 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자 예편해서 그해 있을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하다 10월 전쟁이 발발하자 남부전선 기갑사단장으로 현역에 복귀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경로를 통해 알려진 IDF 공식기록에는 샤론이 ‘제멋대로 행동한 지휘관’으로 묘사돼 있다. 당시 샤론은 그의 상관이었던 다비드 엘라자르 참모총장 및 남부지역 사령관 쉬무엘 고넨 장군과 수시로 충돌했으며 명령에 불복종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교란작전 탓 전쟁 징후 포착 못해

    샤론 입장에서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샤론이 ‘국가의 구원자’가 되고 싶은 공명심에 사로잡혀 서둘러 수에즈 운하를 건너 이집트 내부로 진격하려 하는 전술상의 판단착오를 범했다는 평가다. 샤론의 주장대로 서둘러 수에즈 운하를 건넜다면 샤론의 부대뿐 아니라 뒤따르는 다른 부대 또한 전멸당했을 것이라는 것이 공식기록의 냉혹한 분석이다. 이는 샤론의 영웅적 이미지를 손상하는 것으로 현 총리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평가가 기록에 대한 공개를 부담스럽게 만든 이유로 분석된다.

    이 기록에 대한 다른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앞서 언급했듯이 제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했다고 볼 수 있느냐 하는 논란과 관련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째 IDF 군사전략의 최고 목표인 ‘전쟁 방지에 실패’했고, 둘째 일단 전쟁이 개시된 후의 최대 목표인 ‘향후 수년간 이스라엘이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적의 병력과 군사기반을 최대한 파괴’하는 데도 실패했기 때문으로 이 기록들은 분석하고 있다.

    게다가 IDF 정보국은 아랍권의 정보 교란 작전에 말려들어 전쟁 징후를 전혀 포착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이스라엘의 군과 정치 지도부는 우월감에 빠져 아랍의 전쟁 준비 상황이나 전쟁 수행능력을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영토를 잃지는 않았지만, 아랍권이 거둔 성과는 이스라엘이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보다 분명한 이유를 제시한다. 아랍권은 이 전쟁을 통해, ‘첫째 전쟁 초기에 IDF측에 막대한 피해를 입힘으로써 아랍측의 전쟁에 필요한 물자동원 능력과 전쟁수행 능력을 확인시켰다. 둘째 이집트의 경우 67년 전쟁 당시 이스라엘에 빼앗겼던 영토를 일부나마 되찾음으로써 실추된 명예를 일부 회복했다. 셋째 열강을 끌어들여 이스라엘과의 영토분쟁을 국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과 다른 점도 발견된다. 대표적인 예가 아랍이 이스라엘의 명절인 욤 키푸르에 전쟁을 개시해 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일반적인 분석에 대한 이견이다. 이에 대해 공식기록은 “(욤 키푸르에 전쟁을 개시한 것이) 아랍의 입장에서 최고의 타이밍은 아니었다. 징병이 시작된 순간, 예비군들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소집됐기 때문이다. 신속한 소집과 파병은 IDF의 첫번째 기습반격이었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기록 공개로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에 대한 확인 및 재인식이 가능해져 중동전쟁사에 관한 연구는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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