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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2차 정수기 전쟁

“물로 보지 마” 알칼리水 반격작전?

역삼투압정수기 ‘깨끗한 물’로 아성 구축 … 신규 업체 ‘건강한 물’ 내세워 거센 도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물로 보지 마” 알칼리水 반격작전?

“물로 보지 마” 알칼리水 반격작전?
주부 전지원씨(35·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는 요즘 정수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인터넷사이트를 이 잡듯 뒤지고 있다. 정수기회사 방문판매원에게서 냉장고에 딸린 정수기가 알려진 것과 달리 정수 효과가 미미하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전씨는 “따로 정수기를 살 필요가 없다”는 냉장고 판매원의 사탕발림에 속아 그동안 ‘더러운 물’을 마셔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전씨의 걱정은 ‘기우’다. 서울시는 최근 “수돗물이 식용수로 적합하다”고 밝혔다. 각종 수질검사 결과도 이러한 서울시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전씨처럼 ‘수돗물은 믿을 수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대다수다. 한국소비자생활연구원이 6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가정의 ‘겨우’ 2%만이 수돗물을 그대로 마시고 있다. 응답자의 40.2%가 정수기로 거른 물을, 35.3%가 끓인 물을, 16.5%가 생수를 구입해 마시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민들이 가장 많이 마시는 물이 정수기로 거른 물이라는 사실에서 미뤄볼 수 있듯 정수기 산업은 그동안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정수기 산업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은 생활수준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1990년대 초. 50~60년대의 천연수(샘물·우물물·펌프물) 시대, 70~80년대의 수돗물 시대를 거쳐 바야흐로 정수기물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한국인의 대표적 음용수이던 보리차가 미네랄을 파괴하고 중금속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기 시작한 것도 90년대 초다.

전씨가 구입할 제품을 쉽게 고르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선배 이용자들이 올려놓은 상품평을 수집하고 있는 것은 정수기 가격이 만만치 않은 데다 업체마다 자사 제품이 가장 뛰어나다고 선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여름 정수기 시장에 ‘건강한 물’을 표방한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정수기 고르기는 더 어려워졌다. 그는 “역삼투압정수기 중공사막정수기 이온수기 등 업체별로 정수방법이 다양하고 가격도 최고 100만원까지 차이가 나 제품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그렇다면 전씨처럼 정수기를 구입하려고 하는 소비자들은 어떤 정수기를 선택해야 할까.

서울시민 2%만 수돗물 음용 … 정수기 이용 40.2%



“물로 보지 마” 알칼리水 반격작전?

현재 최고 인기상품인 역삼투압 방식의 웅진코웨이 정수기와 일동제약의 이온수기(왼쪽부터).

업체들이 벌이고 있는 ‘정수기 전쟁’의 ‘전황’을 꼼꼼히 점검하다 보면 자신에게 알맞은 정수기가 어떤 것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업계는 1조원에 이르는 정수기 시장을 ‘뺏고 빼앗기는’ ‘2차 정수기 대전’에 돌입한 상태다. 현재 정수기 시장은 웅진코웨이(점유율 56%)와 청호나이스(점유율 34%)가 양분하고 있다. 웅진코웨이와 청호나이스의 주력상품은 역삼투막을 이용한 정수기. 역삼투막은 막 표면의 0.001μ(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만분의 1) 크기의 기공으로 수돗물 속의 불순물인 박테리아·바이러스·미립자를 걸러낸다.

역삼투압정수기의 장점은 다른 어떤 정수기보다도 ‘깨끗한 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역삼투압정수기의 판촉행사에 단골로 등장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드는 것은 깨끗함을 입증하는 시약들이다. 하지만 완벽해 보이는 역삼투압정수기에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몸에 유익한 성분까지도 걸러낸다는 것이다. 즉 역삼투압정수기가 ‘깨끗한 물’을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역삼투막으로 거른 물이 ‘몸에 좋은 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로 보지 마” 알칼리水 반격작전?

‘산소’가 들어 있는 물을 만드는 JM글로벌의 정수기

경쟁업체가 이 같은 역삼투압정수기의 약점을 파고들면서 촉발된 게 ‘1차 정수기 대전’이다. 웅진코웨이가 90년대 초반 한국에 역삼투압정수기를 선보인 이후 국내 정수기 시장은 사실상 웅진코웨이의 ‘1인 천하’였다. 같은 역삼투압 방식 정수기를 생산하는 청호나이스에게 일부 시장을 잠식당하기는 했지만 정수기 시장은 웅진코웨이가 남겨놓은 시장을 두고 청호나이스를 비롯한 다른 업체들이 서로 치고받는 상황이었다.

1차 정수기 대전이 발발한 데는 수돗물 옹호론자들의 역할이 컸다. 정부와 서울시 당국자들이 수돗물을 마시는 ‘퍼포먼스’까지 벌이면서 수돗물의 수질에 문제가 없는 만큼 미네랄이 제거된 정수기물보다는 미네랄이 살아 숨쉬는 수돗물을 마시는 게 더 좋다고 각종 매체를 통해 홍보하고 나선 것. 이런 논쟁이 벌어진 가운데 등장한 게 중공사막정수기다. 2000년 중공사막정수기를 들고 나와 웅진코웨이의 아성에 도전한 것이 코오롱. 코오롱은 “증류수에 가까운 ‘깨끗한 물’보다는 미네랄이 살아 숨쉬는 ‘살아 있는 물’을 마셔야 한다며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나섰다. 이에 역삼투압정수기 제조사측도 학자들을 동원해 ‘깨끗한 물’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반격에 나서면서 1차 정수기 대전의 막이 올랐다.

중공사막정수기는 역삼투막 필터보다 다소 큰 실 형태의 필터로 물을 거른다. 중공사막정수기의 장점은 수돗물의 불순물인 미립자와 박테리아 등은 제거하나 인체에 유익한 미네랄 이온물질 등은 걸러내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정수능력이 역삼투압 방식에 비해 떨어져 오염도가 심한 물이나 지하수를 이용하는 지역에서는 적합하지 않다는 약점이 있다. 수돗물이 오염도가 심한 물이 아닌데도 수돗물 자체를 불신하고 있는 한국적 상황에서 약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다. 1차 정수기 전쟁 당시 역삼투압정수기 제조사측은 “중공사막에 박테리아나 바이러스가 기생할 수 있으며 중금석이나 석회성분을 걸러내는 데 약점이 있다”고 중공사막정수기를 공격했다.

1차 정수기 대전의 승자는 역삼투압정수기였다. 코오롱은 1년여를 버티다 정수기 사업을 완전히 ‘접는’ 수모를 당한다. 미네랄까지 모두 걸러버리는 역삼투압 방식으로 정수한 물은 ‘죽은 물’이고 중공사막 방식으로 정수한 물은 ‘살아 있는 물’이라는 주장은 소비자들에게 먹히지 않았다. 업계에선 코오롱이 완패한 가장 큰 이유가 마케팅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물의 질 논쟁에서 졌다기보다는 웅진코웨이의 막강한 판매조직에 녹다운당했다는 것. 네트워크마케팅(다단계 마케팅)과 유사한 웅진코웨이의 판매조직은 국내 최고 수준이다. 코오롱 관계자는 “지금도 우리 물이 더 경쟁력이 있다고 믿고 있지만 당시로선 웅진의 판매망을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물로 보지 마” 알칼리水 반격작전?

역삼투압정수기에 도전장을 내민 위니아만도의 이온수기.

1차 정수기 대전에서 압승한 웅진코웨이의 시대가 고착화하는 듯했던 올여름, 다시 역삼투압정수기에 도전장을 낸 업체가 등장했다. 이번엔 한 곳이 아니라 여러 개 업체가 집중공격하는 양상이다. ‘2차 정수기 대전’은 김치냉장고로 유명한 위니아만도가 올여름 이온수기를 내놓으면서 시작돼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이온수기는 중공사막으로 거른 물에 전류를 흘려 알칼리수와 산성수를 만들어내는 장치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을 전해수라고 하고, 이온수기를 전해수 생성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해수는 질병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오롱과 달리 위니아만도의 마케팅 능력은 뛰어나다. 위니아만도는 웅진코웨이의 방문판매조직과 유사한 판매망을 구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니아만도 황한규 사장은 “예전과 달리 소비자들은 건강한 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2∼3년 내에 정수기 시장은 알칼리 이온수기로 대체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역삼투압 방식의 정수기를 생산하는 한 업체의 대표도 “이번 대결만큼은 정말 볼 만할 것”이라며 역삼투압정수기는 과거 깨끗함을 무기로 수돗물, 시판생수, 중공사막정수기를 제치고 정수 업계를 평정했으나 이온수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고 말했다.

위니아만도 후방에서 공세를 강화할 우군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우선 일동제약이 눈에 띈다. 일동제약은 일본 OSG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최근 이온수기 ‘휴먼워터’를 출시했다. 일동제약 외에도 인테크홀딩스, 건강의료기 전문업체인 한국세라스톤 등이 이온수기를 시판중이다. 이온수기 분야에 여러 업체들이 뛰어들기 시작한 것은 음용 알칼리수가 소화기능 개선 등 각종 질병 치료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일본 후생성이 알칼리 이온수가 만성설사 소화불량 위산과다 등에 효능 효과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한 물’을 모토로 들고 나온 신규업체들이 역삼투압정수기 제조사측을 긴장시키고 있는 것도 바로 알칼리수의 효능 덕분이다. ‘미네랄이 풍부하게 녹아 있는 약알칼리수’가 인체에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기분해 약알칼리수가 구조적으로는 육각수가 풍부하여 생체를 보호하며, 알칼리성이기 때문에 체액의 산성화를 방지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연세대 생화학교실 김현원 박사) “체액과 혈액은 약알칼리성이고 피부는 약산성이다. 따라서 마시는 물은 약알칼리성이, 피부의 건강을 위해 씻는 물은 약산성이 바람직하다.”(국내 최초로 전기분해정수기를 개발한 물 전문가 강송식씨)

정수기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웅진코웨이와 청호나이스는 이온수기 업체의 공격에 적잖게 당황하는 모습이다. 기존의 유통망이 탄탄하기 때문에 시장 방어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며 느긋한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소비자들의 의식변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 웅진코웨이는 이온수기 시장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최근 이온수기 ‘루체’를 출시했으나 대대적인 마케팅은 벌이지 않고 있다. 업계에선 렌털 판매방식 위주로 깔려 있는 기존의 역삼투압정수기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만큼 웅진코웨이가 이온수기로 말을 갈아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있다. 웅진코웨이 관계자는 “이온수기를 내놓은 것은 사업다각화의 일환”이라며 “이온수가 기존 정수기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할 것”이라고 말했다.

2차 정수기 대전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주전선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웅진코웨이와 교원L&C의 국지전이다. 학습지 시장에서 선두경쟁을 벌이던 웅진과 교원이 다시 맞붙은 것. 교원L&C의 정수기는 코오롱이 실패한 중공사막방식에 웰스필터를 추가한 것. 교원이 정수기 사업에 뛰어든 이유는 학습지와 정수기 시장의 판매조직이 서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교원의 판매조직은 웅진보다 더 크고 탄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교원은 송혜교 이병헌을 앞세운 광고를 내보내며 출시한 지 2개월도 채 안 돼 1만대가 넘는 정수기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교원L&C 관계자는 “빨간펜 선생님으로 상징되는 4만여명의 방문판매조직을 활용하면 조만간 리딩 업체가 될 것”이라며 “학습지 시장에서도 웅진보다 늦게 시작해 웅진을 앞지른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신규 업체들이 들고 나온 이온수기가 역삼투압정수기의 아성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한 지 1~2개월밖에 되지 않은 이온수기는 현재 ‘삼성 LG도 울고 나간’ 정수기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2차 정수기 대전의 판세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수돗물을 외면하고 정수기를 찾게 된 데에는 정수기 업체들이 광고를 통해 수돗물에 대한 불신감을 부추긴 것도 한몫했다. 정수기 업체의 감언에 수돗물을 버린 소비자들은 정수기 업체들이 벌이는 피 튀기는 전쟁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주간동아 2003.09.04 400호 (p42~43)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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