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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컨트롤 타워 ‘목표 교체중’

정무수석실 개편 과거 역할 포기 선언 … 정당보다 ‘국회 상대’ 대통령 의중 설득할 듯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정치 컨트롤 타워 ‘목표 교체중’

정치 컨트롤 타워 ‘목표 교체중’

천호선 정무기획비서관,서갑원 정무1비서관,김현미 정무2비서관(왼쪽부터)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대해 말들이 많다. 최근 바뀐 정무수석실 비서진의 함량미달을 지적하는 이도 있다. 사실상 대통령이 정무를 포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편에서는 정무 기능의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할 때라고도 한다.

김대중(DJ) 정권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한마디로 청와대 정무팀은 ‘잠수함의 토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잠수함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못 느끼지만 산소가 부족한 상황이 되면 가장 먼저 민감한 반응을 보여 경보를 울려주는 토끼처럼, 정무팀은 정치적 사건을 미리 판단해 대통령에게 이를 알리고 대처방안을 제시하는 ‘알람 기능’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인사는 DJ 정권 청와대 정무팀에서 일한 경험을 근거로 몇 가지 정무 기능을 설명했다. DJ 정권 정무팀이 가장 자부심을 느끼는 일은 정권 초 6개월간 파행을 겪었던 김종필 국무총리서리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 그는 “이강래 수석(현 국회의원)이 부임한 뒤 여야를 넘나들며 설득을 벌인 끝에 김 총리서리의 국회 임명동의를 이끌어낸 것을 지금도 잘한 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 살리는 ‘잠수함의 토끼’ 역할

하지만 정무팀이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않아 정권 자체가 위기에 처한 경우도 있었다. 앞서의 인사는 “그 대표적 사건이 옷로비 사건”이라고 말했다. 옷로비 의혹이 언론에 불거졌을 때 몽골을 방문 중이던 DJ에게 정무팀이 아닌 다른 쪽에서 최초 보고를 하면서 단순한 사건으로 보고했고 DJ도 그렇게 파악했다는 것. 이 인사는 “만약 정무팀이 이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제대로 인지하고 대응했더라면 정권의 기반을 흔드는 대형 사건으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천추의 한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정무의 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일상적 정보수집과 분석에서부터 정치적 판단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정치적 두뇌’ 역할을 하는 곳이 청와대 정무팀이다. 과거에는 정무수석과 비서관이 직접 여야 정치권 인사들과 접촉하고 현안을 조정하는 역할도 했다.

이런 전통적 의미의 정무수석실의 기능에 비추어보면 노무현 정권 정무팀은 출발부터 ‘약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웠다. 유인태 정무수석부터 문제였다. 유수석은 독특한 스타일의 정치인이다. 툭툭 내뱉듯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유수석의 표현방식은 종종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최근에도 유수석의 신중하지 못한 처신이 화제가 됐는데, 발단은 8월18일 정대철 민주당 대표의 “노무현 대통령은 신당문제에 관여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관해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는 발언. 유수석은 정대표의 발언에 대해 묻는 기자들에게 “정대표는 대통령과 전화한 적이 없다”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전화통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나섰다. 결국 유수석이 노대통령과 정대표가 통화한 사실을 모르고 있던 탓에 발생한 해프닝으로 판명났지만, 유수석의 실수를 일과성 사건으로만 보지 않는 이가 적지 않았다.

이런 유수석에 대해 최근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원래 낙천적 성향의 자유주의자 아니냐”고 두둔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을 향한 대통령의 눈과 귀 역할을 해야 할 정무수석의 처신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민주당 신주류의 한 초선 의원은 유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정무팀이 보이는 난조에 대해 “그만큼 노대통령 주변에 대통령과 ‘코드’가 맞으면서도 정치적 역량도 갖춘 인사가 없다는 방증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집권여당’임을 자부해온 민주당의 청와대 정무팀에 대한 불만은 극에 달한 상태다. 당을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뜨린 신·구주류 간의 신당 파문에 대해 청와대로부터 어떤 정치적 훈수도 듣지 못하자 원망은 곧바로 정무수석실로 향했다.

정무수석실의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낸 결정적 사건은 지난 5월 고영구 국가정보원장의 국회 청문회 파문. 고원장에 대한 청문회를 마친 뒤 여야는 만장일치로 고원장과 서동만 기조실장 임명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국회의 반대에도 노대통령은 고원장과 서실장에 대한 임명을 강행했다. 야당은 반발했고, 정국은 한동안 요동쳤다.

하지만 당시 정무수석실이 좀더 기민하게 움직였다면 상황이 그처럼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정무수석실에서 단 한 번도 청문회에 나설 의원들을 상대로 의견을 조율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야당이야 그렇다 쳐도 여당 청문위원에게도 사전에 도움을 구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 함승희 의원 같은 이는 야당 청문위원보다 더 비판적이었는데, 사전에 챙겼더라면 여야가 만장일치로 임명에 반대하는 최악의 사태는 막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당직자는 “다른 정권에서는 정무수석실 행정관이 국회를 찾아도 의원들이 앞다퉈 그를 만나려 했다. 정무팀을 통해 대통령의 의중을 조금이라도 더 파악하고, 또 자신을 대통령에게 어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 들어 정무수석이 찾아와도 시큰둥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 사이에 ‘정무수석실 비서관의 역할이 대통령을 대신해 문상이나 다니고, 국회의원 후원회 때 대통령의 후원금이나 대신 전달하는 정도 아니냐’는 소리가 나돌 정도”라고 말했다.

최근 한나라당의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해임결의안 파동 때도 정무팀은 조용했다. 김장관의 한 측근은 “문제해결을 위해 정무수석실에 도움을 청했더니 조언이라고 한다는 게 고작 ‘장관께서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시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정무수석실이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치권 곱지 않은 시선 극복 어떻게?

정무수석실의 기능 개선을 요구하는 여당의 요구가 빗발치자 노대통령은 청와대 인사이동을 통해 ‘응답’을 했다. 대통령이 내린 답은 여당의 요구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었다. 여당이 바라던 방식이 아니라 노대통령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정무수석실을 개편한 것. 한마디로 과거와 같은 정무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정무수석실 인사를 요약하면 문학진 정무1비서관과 박재호 정무2비서관, 그리고 박기환 지방자치비서관 등 내년 총선 출마를 앞둔 비서관들의 사표를 받고, 대통령 측근들로 하여금 그 자리를 대신하게 하는 것. 노대통령은 서갑원 의전팀장을 정무1비서관에, 김현미 국내언론비서관을 정무2비서관에, 천호선 참여기획비서관을 정무기획비서관에 기용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인사는 즉각 정치권의 반발에 부닥쳤다. 여당 의원들조차 선뜻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한 초선 의원은 “서갑원 정무1비서관의 경우 당초 의전팀장으로도 한계가 많다고 했던 인물이고, 김현미 정무2비서관은 민주당에서 부대변인으로 기자 관리를 해온 인물이다. 또 천호선 정무기획비서관은 민주당과 인연이 별로 없는 인터넷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정치권 전체를 상대로 어떤 정무 능력을 보이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내부 여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사 소식이 전해진 직후 정무수석실 내에서도 “이제 정무 기능은 포기하라는 뜻이냐”는 실망 섞인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청와대 일각에서는 “정무수석실에 대한 비판의 대부분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정무 기능에 익숙한 인사들의 불만일 뿐이다. 달라진 정치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라도 정무 기능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정무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여당 총재일 때의 정무는 간단했다. 대통령의 의중을 당에 전달하고 여당을 움직여 입법이나 제도개선을 했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여당 총재도 아니다. 또 여당만의 힘으로 국회를 운영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제는 국회 전체를 상대로 하는 정무 기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는 “올 정기국회가 정말 중요하다.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주요 개혁입법의 국회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 구체적으로 상임위를 상대로 한 정무활동이 중요하다. 이제 청와대의 정무 기능도 정당이 아닌 상임위와 국회를 직접 설득하는 방식으로 바뀔 때가 됐다”고 말했다. 정무의 방식이 바뀌었으므로 정무수석실의 기능도 달라질 것이고, 이번 비서관 인사도 그런 대통령의 구상이 반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정무의 역할에 대한 정치권과 청와대의 시각차는 좀처럼 좁혀질 것 같지 않다. 정무수석실을 향한 정치권의 마뜩찮은 눈빛도 당분간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과연 새 정무팀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잠수함의 토끼’처럼 비록 자신은 죽더라도 대통령과 청와대를 살리는 능력을 보여줄 것인가.



주간동아 2003.09.04 400호 (p20~21)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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