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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애물단지가 된 장롱 속 보청기

‘부모님께 소리 선물’ 효심 자극 마케팅, 판매 후 방치…의료기기라는 인식 부족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애물단지가 된 장롱 속 보청기

애물단지가 된 장롱 속 보청기

노인 인구 증가로 노인성 난청 환자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국적으로 노인성 난청 환자가 10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산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동아일보]

“소리를 선물하세요.” 한 보청기 업체의 광고 문구다. 이 문구처럼 소비자는 대부분 보청기를 사용하면 선물처럼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비인후과 전문의들은 보청기는 전자제품이 아닌 의료기기이기 때문에 적응기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적응기간은 최소 6주에서 길게는 몇 개월에 이른다. 즉 보청기를 구매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같은 제품인데 50만 원까지 가격 차

문제는 광고 문구만 믿고 사용자에게 맞지 않는 보청기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다는 것. 특히 노인성 난청이 온 부모에게 사드린 보청기가 말썽이다. 비슷한 성능이라도 브랜드나 판매 매장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기 때문에 대부분 최저가 기준으로 보청기를 구매한다. 이렇게 구매할 경우 전문의 검진이 생략돼 보청기 효과를 제대로 보기 어렵다. 보청기는 전문의 검진을 통해 난청 진단을 받고 진단 결과를 기준으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기기다. 그러나 덜컥 보청기를 선물 받은 부모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기기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사용상 불편함 때문에 장롱에 보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국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현재 노인 인구 증가세로 미뤄보면 2018년에는 전체 인구의 16%, 2026년에는 20%가 65세 이상 노인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노인성 난청 환자도 늘어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난청 진단을 받은 환자는 44만9976명으로 50만 명에 육박한다. 치료받지 않은 사람들까지 고려하면 전국적으로 1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65세 이상 3명 중 1명은 노인성 난청 환자라는 진단도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

노인성 난청은 달팽이관(귀의 가장 안쪽에서 청각을 담당하는 기관)과 청신경이 노화로 기능이 떨어지면서 생긴다. 초기에는 소리가 깨끗하게 들리지 않고 작은 소리를 잘 듣지 못하다 진행 과정에 따라 차츰 소리 자체를 잘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노인성 난청은 일종의 노화 현상이기 때문에 수술보다 보청기로 청력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응 방식이다. 박병호 서울성모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보청기 착용이 노인성 난청에 대응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이라며 “같은 노인성 난청이라도 환자마다 들리지 않는 부분에 차이가 있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보청기로 모자란 청력을 보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아무 보청기나 사용한다고 잘 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서울 동작구 유모(54) 씨는 지난해 노인성 난청으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아버지에게 보청기를 사드렸다. 유씨는 “보청기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며 “각기 다른 브랜드라면 몰라도 같은 브랜드 같은 제품도 판매점마다 가격 차이가 컸다. 심한 경우 50만 원 가까이 차이가 나는 곳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문제는 소비자단체에서도 알고 있었다. 윤명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보청기 제품 할인율이 판매점마다 달라 소비자가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 제품 가격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혼란스러운 가격 차에 질린 유씨는 최저가 검색으로 소셜커머스에서 보청기를 구매했다. 유씨는 “보청기만 끼면 노인성 난청이 해결되리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보청기를 받은 아버지가 사용 초기부터 잡음이 심하고 발소리만 크게 들린다며 불평하더니 요즘은 아예 장롱에 넣어두고 쓰지 않으신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문제가 유씨에게만 일어난 것은 아니다. 2015년 상반기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보청기 관련 상담 건수는 207건. 이 중 품질 불만이 73건으로 가장 많았다.



전문의 상담과 지속적 관리 필요

애물단지가 된 장롱 속 보청기

전문가들은 “보청기는 일반 전자제품이 아닌 의료기기이므로 전문의와 지속적으로 상담하면서 관리해야 난청 극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전문가들은 정확한 진단 없이 보청기를 구매하는 일은 난청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박병호 교수는 “보청기는 일반 전자제품이 아닌 의료기기”라며 “보청기는 착용만으로 바로 난청이 해결되는 전자기기가 아니다. 노인성 난청도 환자마다 각각 다른 증상을 보이기 때문에 전문의에게 진단받아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이유를 정확히 판단하고 보청기를 구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보청기업계 관계자는 “일부 업주가 각 고객에게 맞춰 보청기를 조정하지 않은 채 판매하고 있다. 피해를 입은 고객들이 가끔 상담하러 오는데 사용자의 청력 상태를 알 수 없으니 해드릴 수 있는 것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보청기 구매 전 전문의에게 진단받으면 보청기 가격을 국가로부터 일부 지원받을 수도 있다. 2015년 11월 국민건강보험법이 일부 개정되면서 청각장애등록자에게 지급되던 보청기 구매 지원금이 크게 늘어났다. 당초 최대 34만 원이던 구매 지원금이 131만 원으로 늘어난 것. 혜택을 받으려면 보청기 구매 전 전문의를 찾아 난청 진단을 받아야만 한다. 이후 보청기를 구매하면 구매 금액의 일부를 환급받는 형식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보청기를 구매했더라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박 교수는 “노인성 난청은 노화로 청신경 기능이 떨어져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소리의 범위가 좁아진 상태다. 이 상태에서 들리지 않던 소리가 보청기로 증폭돼 들리면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고 이명이나 어지럼증 등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와 같은 증상을 최소화하려면 최소 6주에서 길게는 몇 개월의 적응기간을 두고 보청기를 미세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응기간을 제대로 거쳐야 비로소 불편함 없이 보청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보청기업계 관계자는 “보청기는 먼저 가격을 따지기보다 사용할 분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판매점을 통해 구매하는 것이 좋다. 보청기를 사용하다 불편한 점이 있을 때마다 미세 조정을 받으면 보청기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고 적응기간도 짧아질 수 있다”며 “근처에 판매점이 없다면 보청기 조정을 받을 수 있는 근처 이비인후과를 알아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6.08.17 1051호 (p52~53)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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