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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 곡성 압록 참게장

여름 입맛 살려내는 ‘밥도둑’

  • 시인 송수권

여름 입맛 살려내는 ‘밥도둑’

여름 입맛 살려내는 ‘밥도둑’
정월 참게는 소가 밟아도 안 깨진다’는 말이 있지만 봄 게는 맛이 없다. 게도 11월 중순부터는 월동을 한다. 이때는 게장을 담그려고 쇠고기를 잘게 뿌려줘도 먹지 않으니 10월 말쯤 담그는 참게젓이 별미일 것 같다.

맛을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것과 같다 했던가. 퓨전 음식과 인스턴트 식품이 판을 치는 요즘같이 후텁지근한 날씨에는 남도음식 중 남서해 지방의 꾸득꾸득 마른 굴비타령이 절로 난다. 그것도 통보리쌀 도가지(독)에 묻어놓은 오가재비 굴비를 꺼내 찌거나 굽거나 해서 물에 만 보리쌀밥에 쭉쭉 찢어 얹어먹는 그 ‘물 만 밥의 밑반찬’이라니! 물 만 밥의 밑반찬 대신 섬진강을 끼고 있는 구례나 곡성군 압록의 동부 산간지역에서 담그는 ‘참게장’이 또 한세월 날 때다. 청풍명월의 꽃게장은 바다 꽃게지만 참게장은 민물게다.

짭짤하고 웅숭깊은 맛은 남도 특유의 ‘개미’가 있는 쏠쏠한 맛이며 반가의 음식으로 각광받았다. 남도에선 귀족 티 내는 것을 ‘괴’낸다고 하는데 서울 양반들이 괴를 낼 때는 여름 음식으로 제호탕(醍酉胡湯:궁중음식)을 들었다. 제호탕은 인도에서 온 음식이다. ‘난다바’라는 목장 아가씨가 석가(釋迦)에게 이 제호탕을 먹여줌으로써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석가가 발효우유인 이 제호탕을 너무 좋아해 장이 헐어 죽었다는 설도 있다. 우유를 정제한 것이 낙(酪)이며, 낙으로 치즈를 만들고 생수에 오매육(烏梅肉) 가루를 섞어 끓인 것이 제호탕이다.

여름 입맛 살려내는 ‘밥도둑’
내의원에서 단옷날 옥류천 맑은 물을 길어다 제호탕을 끓여 임금께 바쳤으니, 더위지기 음식으로는 최상이다. 그러나 이것이 어찌 여름 입맛을 돋우는 남도의 ‘물 만 밥의 밑반찬’이나 참게장 맛만 하겠는가. 음식에서 ‘괴’를 내려면 이만큼은 내야 하렸다. 참게장을 잘 담그는 집으로는 압록 철교 밑, 즉 보성강과 순자강(섬진강)이 합수(合水) 치는 지점의 새수궁가든(061-363-4633, 김혜숙)이 있다. 참게탕을 시키면 참게장은 덤으로 따라 나온다. 그것으로 아쉽다면 ‘참게장 백반’을 시키는 것도 좋을 듯하다.

참게장은 입맛이 없는 여름철에 보강음식, 즉 우리 고유의 장맛을 즐기는 데 ‘개미’가 있다. 따라서 참게장은 11월 된서리가 내린 직후에 속이 꽉 찬 참게라야 한다. 옛날에야 섬진강 물목마다 통발이 넘쳤고, 수수모감지를 새끼줄에 매달아 강물에 띄우기만 해도 참게들이 조랑조랑 열렸지만 지금이야 이런 풍경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참게 한 마리 값이 1만 원을 호가하니 자연산이 아닌 양식 게를 쓸 수밖에. 자연산은 몸 전체가 진갈색으로 수게는 엄지에 털이 많고 암게는 배의 뚜껑 부분이 동그랗고 선명하다. 다리가 짧고 발톱 밑 부분이 선명한 갈색을 띤다. 양식 게는 몸체의 빛깔이 흐리고 털의 색깔도 흰색에 가깝다. 다리가 길고 가늘며 발톱도 날카롭고 긴 편이다. 익혔을 대 자연산은 진한 주황색을 띠지만 양식 게는 갈색에 가깝다.



참게장을 달일 때는 특히 조선장을 써서 예닐곱 번은 끓여 부어야 하고 무나 통마늘·풋고추·생강 등을 넣는다. 그러므로 냉장고에서 자란 신세대의 입맛에는 맞지 않는다. ‘밥 한 그릇에 참게 한 마리’란 말도 있지만 통마늘이나 무쪽에도 게장국 맛이 스며 일품이다. 알다시피 중국산 콩은 바글거려 메주가 되지 않고 고려시대 건너가 미소(일본 간장)가 된 그 밀가루의 장맛도 안 되고 소쓰루(진간장)도 아닌 반드시 콩메주에서 떠낸 토장이어야만 한다. 신세대 입맛에 맞춰 진간장을 섞는 경우도 있지만 옳지 않다.

사실 요즘 같으면 콩메주 담그는 법이나 조선간장을 떠내는 과정은 절집에나 가야 볼 수 있다. 스님들이 동안거(冬安居) 한철에 익힌 화두(話頭)를 들고 선지식 찾아 만행을 떠나고 나면 한가해진 도량에선 장 담그기가 한창이다. 대중 울력이 번거로워 머지 않아 절집에서조차 콩메주 띄우는 법을 생략한다면 참게장 맛 또한 죽을 테니 큰 걱정이다.

여기서 7분 거리에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죽곡 태안사가 있는 것도 선식에 선풍을 타는 ‘한 운치’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1.07.12 292호 (p94~94)

시인 송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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