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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한국인 게놈지도’ 왜 필요한가

벤처기업 초안 발표 후 관심 증폭 … 유전자 특성 이해 첫걸음, 신약 개발 실마리

  • < 이영완/ 동아사이언스 기자 > puset@donga.com

‘한국인 게놈지도’ 왜 필요한가

‘한국인 게놈지도’ 왜 필요한가
지난해 6월26일 미국·영국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인 인간게놈프로젝트(HGP)와 미국의 생명공학기업 셀레라 지노믹스가 인간게놈지도 초안을 발표했다. 그로부터 꼭 1년 뒤인 지난 6월26일 국내 생명공학벤처인 ㈜마크로젠(대표 서정선, 서울대 의대 교수)은 이른바 ‘한국인 게놈지도 초안’을 발표했다. 세계를 뒤흔든 인간게놈지도 초안을 완성한 지 불과 1년 만에 국내에서, 그것도 한 벤처기업이 어떻게 이런 ‘성과’를 거뒀을까. 이미 인간게놈지도를 공개한 마당에 한국인 게놈지도를 만든 이유는 또 무엇일까.

마크로젠이 만든 게놈지도는 지난해 발표된 인간게놈지도와는 다른 형태다. 게놈(genome)이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로 생물체가 가진 유전정보의 총체. 게놈을 구성하는 DNA의 4가지 염기(아데닌·구아닌·시토신·티민) 3개가 모이면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하나를 지정한다. 따라서 DNA의 염기는 일종의 ‘알파벳’으로 생명체의 모든 활동의 기본이 되는 단백질이란 ‘문장’을 만든다. 유전자는 이처럼 DNA에서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부분을 말한다.

게놈연구 세계 수준으로 상승 기회

그런데 인간의 게놈은 워낙 크기 때문에 바로 염기서열 분석을 할 수 없다. 때문에 게놈 염기서열 분석을 위해서는 우선 기능을 알고 있는 유전자를 일종의 표지로 삼아 염색체상에서 유전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내는 ‘유전자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 다음 10만 염기쌍 정도의 크기로 절단한 염색체 조각들을 염색체 상의 실제 위치에 따라 배열하는 ‘물리지도’를 만든다.

이 물리지도를 만들기 위해 절단한 염색체 조각들을 박테리아의 염색체에 끼워넣은 형태가 바로 ‘박테리아 인조염색체’(Bacterial Artificial Chromosome, BAC)다. 과학자들은 BAC를 통해 언제든지 염색체 조각들을 필요한 만큼 복제해 낼 수 있다. 이렇게 배열한 염색체 조각들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것이 바로 게놈지도를 완성하는 일. HGP나 셀레라 지노믹스 역시 물리지도를 만든 다음 BAC에 들어 있는 염색체 조각들의 염기서열을 분석해 게놈 지도를 완성했다.



‘한국인 게놈지도’ 왜 필요한가
마크로젠이 발표한 ‘한국인 게놈 BAC클론 지도’는 바로 이런 게놈 물리지도를 완성했다는 뜻이다. 마크로젠은 20대 한국 남성의 정자에서 추출한 게놈 조각 9만6768개를 박테리아 염색체에 삽입한 BAC를 활용해 한국인 게놈지도 초안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므로 마크로젠의 게놈지도는 본격적인 게놈 염기서열지도를 만들기 위한 전 단계다. 그래서 ‘초안’이란 표현을 썼는데, 이를 지난해 6월 발표한 인간게놈지도 초안과 비슷한 것으로 혼동하면서 오해가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게놈지도 초안은 바로 게놈을 구성하는 30억 쌍의 염기서열 90%를 밝힌 것이다. HGP와 셀레라 지노믹스는 지난 2월 염기서열의 99%까지 밝혀 사실상 게놈지도를 완성했음을 선언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미 발표한 인간게놈지도의 전 단계에 지나지 않는 게놈 물리지도를 굳이 국내에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한국인 게놈지도를 만드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하나는 한국인의 질병유전자 특성을 이해하기 위한 것. 다른 하나는 게놈지도 작성으로 국내 게놈연구를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같은 종(種)이어서 같은 유전정보를 갖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마다 키가 다르고 피부색이나 머리카락 색도 다르다. 과학자들은 이를 SNP(단일염기다형성)라고 한다. SNP는 같은 DNA라도 염기 하나가 바뀌어 있는 것으로 평균 1250개의 염기쌍마다 1개씩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에 따르면 전체 게놈에서 SNP가 적게는 140만 개에서 많게는 300만 개까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생명체의 모든 기능은 단백질로 만든 효소가 있어 가능한데, 염기 하나의 변화는 효소 기능의 변화를 가져와 질병을 유발할 수 있음은 물론, 같은 질병이라도 발생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SNP연구는 유전질병을 이해하고 신약을 개발하는 데 실마리를 제공한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 실제로 많은 약이 SNP 때문에 인구의 약 30∼50%에게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심지어 한 사람에게 약이 되는 물질이 딴 사람에겐 독이 되는 경우도 발견했다. SNP 연구가 ‘개인별 맞춤의약’의 탄생을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SNP는 또 개인 간 특징을 포함할 뿐 아니라 인종·민족 간 특징도 포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학자들은 인종 간의 특성을 최소한 게놈의 0.01%로 잡는데 이 정도라도 30만 염기 차이를 나타내므로 한두 염기 차이가 질병 발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SNP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은 크다. 지난 2월 셀레라 지노믹스는 여러 인종의 게놈을 모두 분석했다고 발표했지만, 사실 대부분 백인을 대상으로 했으며 동양인의 DNA분석은 10%도 안 되었다. 마크로젠이 오는 2003년까지 한국인 SNP DB(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겠다고 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국인 게놈지도’ 왜 필요한가
마크로젠은 한국인 게놈 물리지도 작성 다음의 과제로 한국인에게 흔한 암·고혈압·당뇨병·천식·골다공증·관절염·면역질환 등 7대 질환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내세웠다. 이미 알려진 1500개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분석해 한국인의 특성을 알아내고 이를 기준 삼아 개인별 염기 차이를 분석해 ‘한국인 고유의 개인별 맞춤의약’ 개발을 위한 자료로 삼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마크로젠의 게놈 물리지도는 국내 게놈연구를 한단계 도약시킬 계기가 될 전망이다. 지금까지 국내 연구팀이 게놈 전체의 염기서열을 분석한 것은 미생물 3종뿐이다. 그러나 30억 쌍의 인간게놈 분석은 이와 비교가 되지 않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때문에 마크로젠의 연구는 이미 발표한 인간게놈 연구의 성과를 십분 활용해 게놈 물리지도를 만드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생물정보학(바이오인포매틱스)이 필수적이다. 현재 인터넷에 인간게놈지도를 공개했지만 쉽게 활용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 마크로젠은 게놈지도 작성을 통해 생물정보학 성과들을 축적해 일부 게놈분석 프로그램을 세계 시장에 판매할 야심찬 계획도 갖고 있다. 또 마크로젠이 밝힌 것처럼, BAC를 국내 연구자들에게 실비로 제공할 경우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유전자를 찾아내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터넷에 공개된 문자 형태의 염기서열 정보가 아닌, 플라스틱 판에 실제 게놈 조각들을 넣어둔 물리지도는 즉시 연구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따른다. 마크로젠측에 따르면 경비를 최소화했다지만 이미 150억 원을 소요했으며 앞으로도 그만큼의 연구비용이 더 든다고 한다. 투자자를 만족시켜야 할 기업으로서 마크로젠은 어떤 수익모델을 갖고 있을까.

아무래도 당장은 그동안 수익모델이 되어 온 분야에 게놈지도를 연계하는 방법이 가장 빠를 것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마크로젠은 BAC 클론을 이용해 염색체의 이상 징후를 진단하는 ‘게놈 DNA’칩 개발을 추진하는 한편, 유전자가 담긴 BAC 클론을 실험용 생쥐에 이식해 다양한 인간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모델 생쥐를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번에 발표한 마크로젠의 한국인 게놈지도 초안을 활용해 새로운 성과를 얻어내는 일은 이제 모든 국내 게놈 연구자들의 공동과제가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01.07.12 292호 (p74~75)

< 이영완/ 동아사이언스 기자 > 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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