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2

2001.07.12

“더는 못 참겠다 … 굿바이 DJ”

정치철학 차이, 개혁 부진 실망, 냉대 불만 등 사연 제각각 … 정치인 ‘결별’ 잇달아

  • < 김시관 기자 > sk21@donga.com

    입력2005-01-05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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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는 못 참겠다 … 굿바이 DJ”
    김대중 대통령 곁을 ‘떠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정치 철학과 이념이 달라 결별 수순을 밟는 사람도 있고, 지지부진한 개혁에 실망한 사람 역시 김대통령 곁을 떠날 채비를 서두른다. ‘한 자리’를 주지 않는데 대한 불만을 참다 못해 일방적으로 김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경우도 있다. 권력싸움에서 밀린 사람, 지역감정을 극복하지 못해 떠나는 사람…. 사연도 여러 가지다. 집권 후반기 레임덕에 따른 자연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가볍게 보기에는 흐름이 심각하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지난 6월18일 “국내 정치의 늪을 초월해야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고 주장했다. “총재직을 사퇴하라”는 얘기였다. 여권 핵심부는 ‘역린’을 건드린 행위로 여기며 “DJ와 결별 수순을 밟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 전 원장의 이같은 행보는 갈수록 벌어지는 현 정권과의 이념적 편차에 대한 부담감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99년 언론대책문건 파동으로 쇠락의 길을 걷는 그의 암울한 정치 전망이 조급증을 자극했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는다. 물론 정반대 해석도 있다. “자리를 달라”는 무언의 시위라는 것.

    박철언씨 탈당 후 영남권 결별 분위기 확산

    김상현 민국당 고문도 비슷한 처지다. 그는 지난해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지만 공천 탈락과 관계없이 김대통령과의 옛 정을 잊지 않는 마음으로 지난 1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제 미련을 버리자”는 분위기로 돌아섰다는 것. 김고문은 “총선 이후 한번도 김대통령과 대화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지난 6월20일 자민련 박철언 부총재의 탈당도 분명 DJP에 대한 결별 선언이다. 당시 박 전 부총재는 “자민련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DJ에 대한 회한이 더한 듯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누구보다 DJ 당선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 나 아니냐”며 지난 3년간 가슴속 깊이 묻어둔 서운함의 일단을 드러냈다.



    박 전 부총재의 탈당을 정치적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다. 같은 지역구인 한나라당 김만제 정책위의장이나 다른 대구 지역구 의원의 내년 지방선거(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 경우 생기는 보궐선거에 박 전 부총재가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든 김대통령의 그늘에서 벗어나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영남에 뿌리를 둔 박 전 부총재의 현실이다.

    그의 탈당을 시작으로 DJ와의 결별 분위기는 영남 전역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민주당 창원을 지구당 차정인 위원장(변호사)은 박철언씨가 자민련을 탈당한 날과 같은 6월20일 위원장직과 비상임 부대변인직을 사퇴하고 탈당했다. 386세대인 마산 회원 지구당 김형철 위원장도 6월27일 위원장직을 사퇴하고 탈당했다.

    TK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김중권 민주당 대표와 함께 민주당에 입당한 몇몇 TK 출신 인사들에게서는 ‘찬밥’ 대접에 대한 신세 한탄이 연일 이어진다. 대선 때 김대통령의 영남선거를 진두지휘한 엄삼탁씨의 경우 씨름협회 등 비정치적인 분야로만 돌고 있다. 반DJ라는 지역정서를 거스르면서 굳이 민주당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들이 갖는 불만이다. 수도권이라고 DJ 결별론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 인사들 중 몇몇은 민심이반과 관련해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보인다. 특히 수도권은 김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보일수록 차기 총선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림직한 지역이다.

    지난 5월 말 정풍운동을 심정적으로 지원한 수도권 출신 한 의원의 경우, 보다 구체적으로 김대통령에 대한 부담을 토로한다. “지지부진한 개혁, 원칙 없는 인사, 실패한 의약분업과 교육제도 개혁 등으로 지역에 가면 난리다.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 탈당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동원하지는 못하겠지만 마음 맞는 몇몇 동료와 함께 김대통령의 거취(총재직 사퇴) 문제라도 논의해 봐야겠다”는 입장이다.

    수도권 출신 개혁파의 한 초선 의원은 미진한 개혁 때문에 김대통령과 거리감을 느끼는 인물. 그 역시 ‘결별’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경우에 따라 무슨 수를 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민주당에 현재 몸담은 인사들마저 김대통령과 자신들을 다른 개체로 분리하면서 정치적 상황에 접근하는 것은 냉혹한 정치 계산에서 비롯한 일이다. 차기 총선에서는 공천권이 없는 김대통령의 한계가 무엇보다 극명하게 드러난다. 게다가 과거 정권처럼 넉넉한 정치자금을 줄 형편도 아니고 정권재창출에 대한 확실한 비전 제시도 쉽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통령에게 결별의 아픔과 후유증을 가장 크게 각인할 사람으로 JP를 능가할 사람은 드물다. JP는 사랑하다 헤어지고, 또 헤어졌다 사랑할 수 있는 매우 특이한 체질을 지닌 사람이다. 이미 지난 총선 때 JP는 김대통령에게 ‘파혼’을 통보한 적이 있다. 물론 지난 해 연말 다시 합방을 선언해 총선 때의 그것이 ‘위장이혼’임을 세상에 확인시켰지만 요즘은 다시 DJP 공조의 틀에 변화를 주려는 듯하다. JP의 선택에 따라 김대통령은 ‘2차 이혼’의 아픔을 맛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때 ‘DJT 공조’라는 신조어를 등장시킨 박태준 전 총리도 이미 김대통령과 거리를 두고 정치를 외면하고 있다. 최근 포철 명예회장으로 활동을 재개하였지만 ‘정치’ 얘기만 나오면 함구한다는 것이 한 측근의 설명이다.

    정권 창출의 핵심축인 DJT의 와해는 김대통령으로서는 뼈아픈 부분이 아닐 수 없다. DJP의 ‘무이념적 결합’에 따른 후유증은 자민련 일부 인사들의 이탈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김용환 한국신당 대표는 이를테면 그 대열의 선봉에 선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흔히 JP와의 결별로 해석하지만 김대표측은 “내각제 약속을 어긴 DJP와의 결별”로 주장한다. 강창희 의원 역시 같은 생각으로 지난해 자민련을 뛰쳐 나왔다.

    2000년 1월 민주당 대표가 되었다가 12월에 물러난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도 김대통령과 정치적 인연의 ‘정리’를 끝낸 상태. 서총재는 의원직에 강한 애착을 보였지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배지를 반납해야 했다. 요즘 그는 정치에 대해 일절 코멘트를 하지 않는다. 김대통령 곁을 떠나는 사람은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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