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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 수렁’서 허우적 … 러시아 “어쩌나”

게릴라전에 말려 희생자 속출, 전쟁 비용 눈덩이 … 발 뺄 수도 없고 골치 지끈지끈

  • < 김재명 /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

‘체첸 수렁’서 허우적 … 러시아 “어쩌나”

‘체첸 수렁’서 허우적 … 러시아 “어쩌나”
체첸 전쟁은 러시아의 베트남 전이 될 것인가. 분리독립을 원하는 체첸 사람들의 투쟁에 맞서 지난 99년 10월 초 러시아가 군대를 투입한 지 1년 반이 넘었지만, 체첸 전쟁은 끝나지 않고 있다. 옛 소련만큼은 못하지만 여전히 세계적 군사 강대국인 러시아가 체첸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다. 사망자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푸틴 정권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이겼다”는 발표와 함께 2000년 초부터 8만 병력 가운데 절반쯤을 단계적으로 철군시키기로 했던 러시아였지만 올 5월 들어 철군을 중지했다. 전쟁 초기 2만6000명이던 체첸 반군이 2000∼3000명으로 줄어들긴 했지만, 이들의 게릴라전 반격이 만만찮다는 판단 때문이다. 게다가 체첸 전쟁은 즉결처형과 납치, 실종 등의 인권침해로 국제사회에서 ‘더러운 전쟁’이란 악명을 얻었다. 가뜩이나 빈약한 러시아의 재정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될 것으로 보이는 체첸 전쟁의 끝은 어디쯤일까.

해방 전쟁인가, 반테러 작전인가

체첸 반군들은 그들의 투쟁을‘해방전쟁’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체첸이 러시아에 자발적으로 합친 적이 없으며, 오로지 힘의 논리에만 의존하는 러시아에 대해 이젠 결코 정복당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크렘린 당국은 체첸 공세를 전쟁이라 하지 않고 ‘반테러 작전’이라고 한다. “체첸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에 전쟁이란 용어는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이 현재의 중동위기를 ‘전쟁’이라 하지 않고, ‘테러리스트들과의 싸움’이라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다. 러시아의 체첸 공세는 모스크바와 두 남부 도시에서 잇달아 일어난, 체첸 쪽의 폭탄 테러에 200명 이상이 희생되었다는 데 배경을 두고 있다. 아울러 1996년 러시아군이 물러난 뒤로 체첸이 인질 납치를 비롯한 조직 범죄의 소굴이 되어 버렸다는 점도 크렘린이 강조하는 대목이다.

체첸과 러시아 사이는 오래 전부터 불편했다. 러시아정교를 믿는 슬라브족과 회교를 믿는 체첸족이라는 민족-종교의 차이가 이들 사이를 가로막아 왔다. 19세기 중반 체첸족은 회교 지도자 셰이크 샤밀의 지도 아래 러시아의 남진정책에 격렬히 맞서 싸운 역사가 있다. 지난 91년 소연방 해체 당시 체첸이 독립을 선언하자, 러시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94년 체첸을 침공했다. 이렇게 해서 96년까지 2년 가까이 끌던 1차 체첸 전쟁은 희생자 숫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 3∼4만 명(일설에는 1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진다. 당시 러시아군은 체첸군을 얕보다 굴욕적인 패배 끝에 물러난 바 있다. 따라서 지난 99년 가을부터 시작한 이번 2차 체첸 전쟁은 러시아로선 설욕전인 셈이다.



전투력 하나로만 보면 러시아군이 압도적이다. 러시아군이 전투기-헬리콥터-탱크로 반군을 몰아붙였지만, 반군은 그런 막강 화력이 없다. 그 대신 지리적 이점을 이용한 게릴라전을 펴면서, 기습공격으로 러시아군을 괴롭힌다. 공식적으론 러시아가 “전쟁에서 이겼다”고 선언했지만, 줄을 잇는 사망자들로 러시아의 고민은 말이 아니다. 발을 빼고 싶어도 어려운 게 체첸 전쟁이다.

지난 4월 말 러시아 보안군 장교들로 이루어진 조사팀을 체첸 현지에 파견했다. 체첸 상황을 전반적으로 재평가하기 위해서였다. 러시아군은 체첸 수도 그로즈니에 친러정권을 세우기에는 아직 치안이 확립되어 있지 못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친러정권은 그로즈니로 들어가지 못한 채 제2의 도시인 구더메스에 머물고 있다.

봄철 들어 날씨가 풀리면서 반군의 기습공격이 잦아지자, 한때 철군 채비를 하던 러시아군은 지난 5월 초 철군 중지 명령을 받았다. 러시아 국방상 세르게이 이바노프는 “지금껏 5000명이 철군했으나 앞으로 추가 철군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이바노프 국방상은 보리스 그리즐로프 내무상, 니콜라이 파트르셰프 러시아 보안군 책임자와 체첸 사태를 협의하기 위해 5월 초 현지로 갔다. 이처럼 체첸에 대대적인 공세를 편 지 20개월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러시아는 체첸 반군 지도자들을 한 명도 붙잡지 못했다.

이번 2차 체첸 전쟁을 주도한 사람은 회교 원리주의자로 알려진 과격파 샤밀 바사예프다. 올해 36세인 바사예프는 지난 95년 6월, 1차 체첸 전쟁 당시 야전사령관으로 러시아 남부 도시 부데노프스크에서 인질극을 벌임으로써 러시아로 하여금 공세를 멈추도록 압박해 체첸인들 사이에 영웅으로 떠오른 인물이다. 99년 8월 이슬람공화국을 세우겠다며 2000명의 병력으로 이웃 다게스탄공화국을 침공해 결과적으로 2차 체첸 전쟁의 불길을 지핀 장본인이다. 그러나 이번 2차 전쟁에선 그로즈니에서 물러나면서 러시아군이 설치한 지뢰밭을 밟아 다리 하나를 잃었다.

대통령 아슬란 마스하도프는 구소련군 대령 출신으로 1차 체첸 전쟁 당시 반군 참모총장을 지내며 탁월한 전략으로 러시아군을 패배하도록 만든 인물이다. 러시아와의 휴전협상에서 체첸을 대표했고, 지난 97년 1월 대선에서 60%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온건파로 회교극단주의(Islamic extremism)와는 거리를 두어온 그는, 2차 체첸 전쟁을 거치며 지도력을 잃었다. 강경파 득세는 자금줄과도 관련이 있다. 체첸 반군들의 투쟁자금은 탈리반 정권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과 사우디 아라비아 등지에서 흘러 들어오는데, 아무래도 과격 무장단체들에게 자금이 더 많이 흘러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올해 초만 해도 체첸 반군을 분쇄했고, 따라서 체첸 공화국은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 밝혔다. 실제로 그런 조짐은 여러 가지로 나타났다. 학교가 문을 다시 열고 우체국 등 공공 서비스를 재개했으며 연금도 지급하기 시작했다. 러시아는 체첸 전쟁의 그림을 평화와 안정 쪽으로 그리고 싶지만, 상황은 반대쪽으로 간다. 체첸 반군의 게릴라전으로 러시아 병사들의 희생은 날마다 늘어가는 상황이다. 이를테면 푸틴이 체첸을 전격 방문한 지난 4월 친러 고위관리 2명이 잇달아 저격수의 손에 죽임을 당했다. 반군들은 그들의 테러 공세를 강화할 것이라 말해 왔다.

처음 체첸전을 벌일 때만 해도 러시아 국민들은 크렘린 당국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체첸은 러시아의 적이고 징벌받아야 한다”는 따위로 국민을 설득할 필요가 별로 없었다. 일련의 폭탄 테러로 200명이 사망하는 상황은 러시아 전체에 국민적 분노를 낳았고, 96년의 참담하던 패배를 설욕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이어졌다.

러시아군이 얼마나 죽고 다쳤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 99년 가을 체첸 공세를 시작한 지 1년 동안 3000명의 병사가 숨지고 8000명이 다쳤다는 공식발표가 고작이다. 이는 어디까지나 공식발표이고,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병사들의 어머니’라는 단체는 크렘린 당국 공식발표의 두 배쯤이 죽고, 수천 명의 시민들이 죽었을 것으로 본다(이에 비해 반군은 1만4000여 명 사망). 반군들의 야간 기습과 매복 공격으로 1주일에 10명꼴로 러시아군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에 고운 눈길을 주지 않는다. 지난 4월20일 유엔은 러시아군이 체첸에서 저지른 인권침해를 비난한 바 있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위원회는 유럽연합(EU)이 제출한 결의안을 받아들여, 러시아군의 인권침해에 대한 합당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결의했다. 이 결의안은 비전투원인 시민에 대한 공격을 포함한 러시아군의 부적절하고 무차별적인 힘의 사용을 강력히 비난하는 내용을 담았다. 여기에는 실종, 즉결처형, 고문 같은 인권침해 사실들이 포함된다.

체첸 전쟁의 살벌함은 러시아가 언론인들의 체첸 접근을 제한하는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군이나 체첸 반군은 언론 보도라는 부담(?)에서 벗어났기 때문인지, 전쟁범죄에 준하는 잔인함을 보여왔다. 체첸 시민들은 반군 용의자, 또는 협력자로 의심받아 즉결처형과 고문, 그리고 강간을 당해 왔다. 체첸 반군들도 비전투원인 러시아인들에 대한 무차별 테러 행위를 하나의 전술로 삼는다.

체첸 전쟁은 갈수록 러시아에 부담이 된다. 늘어나는 희생자 숫자도 문제지만 전쟁비용도 큰 부담이다. 푸틴 대통령도 전쟁 비용문제가 간단치 않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지난 99년 전쟁 초기 3개월 동안에만 20억 달러를 썼고, 지금도 매달 1억 달러를 쓴다. 일부에선 이 자금원이 결국은 서방의 재정지원에 바탕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지만 크렘린 당국은 이를 부인한다. 일반적으로 전비는 주로 탄약과 무기지만, 러시아는 그런 데는 별로 돈이 들질 않는다. 냉전 당시 소비에트연방이 비축한 막대한 분량의 탄약과 무기들을 쓰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출하는 돈은 탱크, 작전차량 등에 쓰는 연료비와 점령지역 복구비, 장병들의 급료에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첸 전비와 관련한 러시아 재정사정은 조금씩 나빠지는 상황이다. 지난 4월 중순 헬리콥터를 타고 체첸 현지를 전격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체첸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급여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분노를 터뜨렸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에게 급여를 제때 지급하지 않는다니 말도 안 된다”는 얘기였다.

러시아군들 가운데는 징집된 병사들말고도 이른바 ‘계약군인’들이 있다. 전체 병력의 절반쯤인 이들은 하루 일당으로 30달러쯤을 받고 전투에 뛰어든다. 말하자면 용병인 셈이다. 탄약이나 무기 비축량도 줄어들어 언젠가는 생돈을 들여야 하고, 재원이 고갈될수록 러시아군 전력이 약화할 것이다. 지난해 10월 체첸 공세 1년을 맞아 푸틴 대통령이 체첸을 ‘러시아의 블랙홀’로 묘사한 것도 이런 상황인식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체첸에 발목잡힌 푸틴

푸틴은 체첸 사태를 힘으로 끝내겠다는 공약을 내걸어 집권에 성공한 인물이다. 1999년 하반기 체첸 동쪽의 다게스탄과 체첸에 대한 공세는 당시 푸틴 총리의 인기를 높였고, 그가 2000년 3월 대선에서 압승하는 데 기여했다. 지금도 많은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의 체첸 강공책을 지지한다. 그러나 그 지지도는 러시아의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죽어가는 만큼이나 조금씩 줄어든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로는 러시아 국민의 4명 가운데 3명이 체첸 사태와 관련한 푸틴의 지도력에 회의를 품은 것으로 나타났다.

체첸에서 러시아가 손을 뗄 가능성은 두 가지 이유에서뿐이다. 군사적으로 패하거나, 장기전으로 늘어나는 경제부담과 희생에 따른 여론의 압력에 굴복할 경우다. 체첸은 푸틴 수상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지만, 이제는 그의 발목을 잡는 모습이다. 체첸 사태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집권한 푸틴인 만큼, 그가 스스로 철군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전선 없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것은 이웃 잉구셰티아 지역 난민수용소의 20만 난민을 포함해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체첸 시민들뿐이다.







주간동아 2001.05.24 285호 (p60~62)

< 김재명 /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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