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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개혁논쟁과 레임덕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성공한 대통령’ 역사적 평가 강한 의지 … ‘2단계 전대론’은 레임덕 차단용 카드

  •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개혁으로 오히려 피해만 봤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을 때 그 개혁이 과연 성공하겠는가. 현 정부는 개혁을 한다는 명분 아래 여론수렴 과정 없이 위에서 밀어붙이는 즉흥적인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

“이제 국민은 칼을 휘두르는 정치보다 마음이 따뜻한 정치, 반대자를 끌어안는 덕치를 바란다.”

말만 듣자면 마치 현 정부의 개혁노선에 대한 정치인들의 질타처럼 들린다. 그러나 위의 말들은 현재 상황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5년 전인 95년 7월 임시국회 본 회의의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이다. 위의 것은 당시 민자당 하순봉, 아래 것은 역시 같은 당 박헌기 의원의 발언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지금 상황에 대입해도 큰 무리가 없다. 정치상황이 5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는 까닭이다.

심지어 이 발언에 대한 대응도 지금과 똑같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인 박종웅 의원은 같은 당 민정계 의원들의 ‘개혁중단론’에 대해 “정치권 일각에서 개혁 방법론상의 문제점만 가지고 개혁 자체를 부정하고, 개혁이 아니라 고통이라고 매도하고 있다”며 “이는 반개혁 세력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공박했다.

지금 민주당에서는 5년 전 집권 민자당에서 벌어진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개혁작업을 확대하지 말고 지금껏 뿌린 개혁의 씨앗을 잘 추수해야 한다”(개혁 추수론-정균환 총재특보단장) “(저항감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으므로) 개혁이란 단어보다 변화-개선이란 표현을 쓰자”(개혁 변화론-한화갑 최고위원) “개혁이 장기화하면서 피로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개혁 피로론-김중권 대표)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지금 추진하는 일을 완벽하고 철저하게 매듭지어야 한다”(개혁 매듭론-김근태 최고위원) 등 지난 5월7일 최고위원 워크숍에서는 개혁 정책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주문들이 쏟아졌다.



무엇을 위한 개혁인가
그러자 청와대에서는 즉각 이에 제동을 걸었다. 다음날인 8일 청와대 박준영 대변인은 “개혁을 하지 않으면 국가가 생존할 수 없으며 개혁은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지속적인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궁진 청와대 정무수석 역시 9일 “마무리는 지구 종말 때나 하는 소리”라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김대중 대통령도 10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겸허한 반성 속의 개혁과 전진’을 재차 강조했다.

5년 전의 김영삼 대통령(YS)도 마찬가지였다. YS는 당내 민정계 출신 인사들이 국회에서 ‘개혁 부정론’을 들고 나오자 “흔들림 없이 변화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당시 윤여준 청와대 대변인(현 한나라당 의원)은 이례적으로 “어느 때보다 단호한 어조였다”고 YS의 분위기까지 전달했다.

5년 전의 YS나 지금의 김대통령은 개혁 매듭론에 대해 왜 똑같이 반론을 제기했을까. 그것은 바로 개혁에 대해 제동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부추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YS는 개혁을 곧 자신과 정권의 정체성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지금의 김대통령도 똑같다. 따라서 개혁의 부정은 곧 대통령 자신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것. 지극히 단순하고 거친 논리지만, YS 정부나 현재의 DJ 정부는 이 등식을 공유하고 있다.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지난 5월11일 ‘2단계 전당대회론’과 ‘당권-대권 분리론’을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도 레임덕과 관련해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당헌에 정해진 다음해 1월의 전당대회는 예정대로 열어 총재를 선출하고, 대선 후보는 지방선거 이후인 7, 8월쯤 선출하자는 2단계 전당대회론은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그러나 권 전 위원이 이를 직접 언급했다는 점에서 얘기가 달라진다. 어느 정도 김심(金心)을 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 전 위원은 왜 지금 이 시점에서 ‘2단계 전대론’을 꺼냈을까.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개혁에 대한 여권 내부의 설왕설래나 회의적 시각의 표출이 대통령의 레임덕을 촉발한다고 보고 이를 경계하기 때문인 듯하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개혁과 관련한 이러저러한 복잡한 시선을 여권의 차기구도로 돌림으로써 그 부담을 덜려 했다는 얘기다.

물론 권 전 위원이 이렇게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은 차기구도는 어디까지나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동교동계의 뜻에 따라 주도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권 전 위원의 이같은 ‘권력 행사’는 오히려 여권 내의 차기 대권 관련 주도권 다툼을 촉발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처럼 여권 내부에서 벌어지는 최근의 여러 가지 일들은 대통령의 레임덕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는 면이 많다. 남궁진 수석이 권 전 위원의 발언에 대해 “당내 여론수렴 결과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하였다”고 일단 긍정적인 의견을 보이면서도 “공론화 시기는 정기국회 이후가 바람직하다”고 시기를 늦춘 것 역시 마찬가지다.

‘당권-대권 분리론’에 대해서는 보다 정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다음해 1월의 전당대회에서 새 총재를 선출한다면, 김대통령은 총재직을 내놓고 당권을 누군가에게 넘길 가능성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김대통령은 이때부터 급격한 레임덕으로 접어든다. 그런데도 김대통령은 총재직을 누군가에게 이양할 수 있을까. 지금으로서는 ‘매우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YS의 경우를 상기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YS는 지난 97년 대선을 3개월 여 앞둔 9월 당시 이회창 대표에게 총재직을 넘겨줬다. 당시 이회창 대표가 아들의 병역문제로 인기가 급전직하하는 등 매우 다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정권 재창출이 무엇보다 중요한 YS는 레임덕의 가속이라는 부담을 무릅쓰고 총재직 이양을 통한 ‘이대표 띄우기’에 들어간 것. 따라서 비록 YS 정권 때보다 훨씬 앞선 것이기는 하지만, 대선전략의 일환으로 대선 후보와 분리한 총재직 이양 카드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다. YS라는 반면교사가 있으므로 총재직 이양 후 자신에게 칼을 들이댈 수 있는 대통령 후보와 당권은 따로 떼어놓는다는 분리론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DJ 정부의 레임덕은 YS 시절과 비교해 한 가지 더 복잡한 문제가 있다. 김대통령이나 친위그룹에서 유난히 ‘성공한 대통령론’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성공한 대통령론’을 제기한 김성재 전 청와대정책기획수석(현 학술진흥재단 이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성공한 대통령론은 정권 재창출 맥락에서 나온 게 아니다. 역대 대통령을 보면 비운 속에 퇴진하거나 감옥을 가거나 했다. 김대중 정부는 진정한 국민의 정부가 되었기에 성공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성공한 대통령론은 이러한 국가적인 맥락에서 나온 얘기다. 의도해서 만든 것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다음 정권이 들어와도 현 정권이 성공한 뒤에 와야 한다.”

김이사장의 이같은 말에는 김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의 전철을 밟게 해서는 안 된다는 강조점이 찍혀 있다. 단적으로 말해 김대통령은 YS처럼 ‘실패한 대통령’으로 자리를 내려와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청와대가 유독 중단 없는 개혁을 강조하는 것은 이같은 ‘성공한 대통령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동교동계의 한 재선의원은 “지금 청와대가 말하는 개혁의 완성은 재집권은 정말로 염두에 두지 않고서 하는 말”이라고 강조한다. “재집권에 실패하는 것은 그냥 정권 창출의 실패에 지나지 않지만, 개혁의 실패는 곧 DJ 정부 치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실패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청와대는 어떠한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김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역사 속에 자리매김하려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김대통령의 심중이 어디에 가 있는지 대충 짐작이 가기도 한다. 여권의 대선 예비주자들 일부에서 “김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정권 재창출이 가능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 남은 1년 반 동안 과연 개혁을 완성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다.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가면 사실상 대선 정국이 개막된다. 이때가 되면 대통령의 통제력은 급격히 줄어든다. 김대통령은 레임덕과 성공한 대통령의 이율배반을 극복할 수 있는 복안이 있는 것일까.



주간동아 2001.05.24 285호 (p12~13)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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