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3

2001.05.10

나도 이젠 ‘나무박사’ 되겠네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입력2005-01-25 1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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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이젠 ‘나무박사’ 되겠네
    이런 아버지를 안다. 아들과 집 뒷산에 자주 올랐는데 “이게 무슨 풀이냐?”는 질문에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자 아예 식물도감과 수목도감을 사서 마치 전문의 자격시험 공부하듯 익히고 또 익혔다고 한다(그 아버지는 의사다). 그래도 모르는 풀이 나오면 반송우표와 함께 저자에게 질문을 보낼 정도로 열심이었다. 어느덧 이 부자는 풀을 보면서 “아빠 이거 애기똥풀이지요?” “왜?” “보세요, 줄기를 꺾어 색깔을 보면 알 수 있어요”라는 대화를 나눌 정도의 실력이 되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해서 식물도감을 한 권 샀다. 보리출판사가 펴낸 ‘어린이 식물도감’.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160가지 식물(논밭식물, 꽃밭식물, 산과들식물, 물에 사는 식물)을 세밀화로 그린 것인데 이름만 들었지 모르는 식물 투성이였다. 세밀화는 사진처럼 선명한 느낌은 없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진이 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보여주는 섬세함이 있다. 식물의 솜털느낌까지도 살렸다고 하면 이해가 될까. 그 뒤로 세밀화 팬이 되어 세밀화로 된 것이라면 ‘어린이 동물도감’ ‘아기그림책’ 등 나오는 대로 샀다. 올해는 드디어 ‘나무도감’이 나왔다.

    이 도감은 나무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배를 열매로만 기억하는 도시의 아이들에게 배는 잎과 꽃과 가지와 뿌리로 된 나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또 새순이 돋았을 때의 느티나무, 잎이 우거진 느티나무, 단풍이 든 느티나무, 잎이 진 느티나무 등 나무의 사계절을 한눈에 보여준 책은 없었다. 잎맥이나 꽃잎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잎의 앞과 뒷면의 색이 다른지 같은지, 잎이 두꺼운지 얇은지, 줄기가 둥근지 네모난지, 모두 사진이 아니라 그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림 한 점 그리는 데 보통 보름씩 걸렸다니 그 정성이 놀랍다.

    보리출판사측은 이 ‘나무도감’을 기획하고, 그림 그리고, 글을 쓰고 책으로 묶는 데 꼬박 6년이 걸렸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 자라는 나무 가운데 어떤 나무를 도감에 담을지 결정하면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문가의 감수를 받아 다시 그리거나 수정을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120종이 실렸다. 우리 나라에는 4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나무만 해도 600여 종이라지만, 여기 소개한 120종만 알아도 ‘나무박사’가 되기에 충분하다.

    나도 이젠 ‘나무박사’ 되겠네
    ‘나무도감’과 나란히 꽂아둘 책으로 진짜 ‘나무박사’ 임경빈 서울대 명예교수(임학)가 쓴 ‘솟아라 나무야’를 권한다. 임교수는 ‘나무도감’의 글을 쓰고 감수를 맡기도 했는데, 자신의 책에서는 나열식이 될 수밖에 없는 도감의 한계를 보완해 나무에 대한 기초지식을 체계적으로 담았다. 나무와 숲의 의미, 난대림에서 자라는 나무, 온대림에서 자라는 나무, 한대림에서 자라는 나무, 아름다운 가로수, 단풍이 아름다운 나무, 꽃이 아름다운 나무, 열매를 이용하는 나무, 약이 되는 나무, 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목, 우리 나라 특산수종과 희귀수종, 외국에서 들어온 나무, 천연기념물 나무들까지 ‘나무 보는 안목’을 길러주는 책이다.



    책의 중간중간에 ‘팁’ 형식으로 나무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도 했다. 나무의 나이를 결정하는 나이테와 나뭇잎 모양이 왜 각양각색으로 되었는지, 숲이 우리에게 어떤 혜택을 주고 숲이 망하면 왜 지구도 망한다고 걱정하는 것인지, 나무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으며 올바르게 나무 심는 방법은 무엇인지 등 18개의 팁을 준비하였다. 아이의 기초적인 질문에도 쩔쩔매고, 숙제를 도와주다 전전긍긍한 경험이 있다면 ‘나무야 솟아라’는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무사랑은 이론으로 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껴야 한다. ‘나무의사’ 또는 ‘나무학교 선생님’으로 불리는 우종영씨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가슴을 적시는 이야기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 썩어 천 년, 합해서 삼천 년을 이어간다는 주목나무’ 편을 읽다 그만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나무 얘기하다 웬 눈물이냐고 하겠지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에 이렇게 많은 사연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소꿉동무로 만나 결혼한 지 1년이 안 된 젊은 부부, 그러나 남편이 위암 말기라는 것을 알았을 때는 손쓸 방법이 없었다. 죽음을 준비하며 마지막까지 웃으며 떠났다는 남편이 울음을 터뜨리는 아내를 다독이며 해준 것이 바로 주목나무 이야기였다. “태백산 주목나무가 살아 숨쉬는 동안 꼭 다시 만날 거라고. 그러니 나 떠나보내고 나서 울지 말라고.” 이것을 읽고 나니 가지치기 한 번 해주지 않아 멋대로 자란 채 마당 한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주목나무가 더욱 안타까워 보였다.

    우종용씨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는 육교 밑에서 인생을 배우고, 누구는 어린 아이들에게서 인생을 배운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나무에서 인생을 배웠다. 겨울이 되면 가진 걸 다 버리고 앙상한 알몸으로 견디는 그 초연함에서, 아무리 힘이 들어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그 한결같음에서, 평생 같은 자리에서 살아야 하는 애꿎은 숙명을 받아들이는 그 의연함에서,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려는 그 마음 씀씀이에서 나는 내가 정말 알아야 할 삶의 가치들을 배운 것이다.”

    ·세밀화로 그린 나무도감/ 임경빈·김준호·김용심·도토리편집부 지음/ 이제호·손경희 그림/ 보리 펴냄/ 320쪽/ 5만원

    ·솟아라 나무야/ 임경빈 지음/ 다른세상 펴냄/ 271쪽/ 1만5000원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우종영 지음/ 중앙M&B 펴냄/ 271쪽/ 9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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