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3

..

나 아직 팔팔해… 방황하는 ‘性’

외도 통해 위기 탈출 시도 … ‘가정의 위안’이 가장 큰 치료

  • < 이근후/ 정신과 전문의·이근후열린마음클리닉 원장 ignoo@hanmail.net >

    입력2005-01-25 14: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나 아직 팔팔해… 방황하는 ‘性’
    ‘훔친 물이 더 달고 몰래 먹는 떡이 더 맛있다.’ 이는 구약성서 잠언에 실린 말씀이고 ‘목숨이 다하도록 음행을 하지 말라, 세간의 온갖 남자나 여자를 간음하지 말라.’ 이는 불경에서 하신 말씀이다. 우리 속담에도 정이 헤프면 동리 시아버지가 열이 넘는다는 말도 있다. 이런 경구들에도 불구하고 성이란 인생의 전 단계를 통해 쾌락과 그에 못지않은 파탄을 안겨준다.

    에릭슨은 인생에는 여덟 단계가 있고 그 단계마다 위기를 극복하거나 실패를 맛봄으로써 인격이 성숙해 간다고 했다. 위기는 중년에만 있을까. 그렇진 않다. 단지, 지금까지의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중년의 위기 때문에 쉽게 접근하는 일종의 탈출 시도가 바로 ‘혼외정사’이다. 흔히 결혼이란 속박에서 자유롭게 탈출하는 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부부 간 결혼생활에서 이 혼외정사는 종교적-윤리적-사회적-법률적 제어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끊임없이 논의하는 부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혼외정사는 남자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이해했으나 지금은 정도의 차이일 뿐 양성 모두의 것이 되었다.

    그런데 남자의 삶이 과거와 달리 극도로 위축한 요즘에 와서 남자들의 성은 30대 중반만 넘어가도 대단히 감성적이고 예민해지는 변화를 겪는다. 40대 중년 남자의 경우 섹스는 심리적인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 전까지 습관적으로 바람을 피우거나 술집에서 일회성으로 술집여자와 외도하던 남자들이 이 시기에 이르러 ‘운명적 사랑’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한 사람과의 관계에 깊숙이 빠져드는 경우가 나타난다. ‘동물적인 성’에서 ‘정신적인 성’으로 전환하는 시기라고 할까.



    얼마 전 ‘린다 김’ 사건이 터졌을 때 전직 장관과 의원들이 린다 김에게 보낸 것으로 알려진 애틋한 연서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중년을 넘어선 나이에 사회적 출세와 야망의 성취를 위해 질주해온 이들이 ‘쌍무지개가 어쩌고…’ 하는 사춘기 소년 같은 감상적 내용의 연서를 썼다는 것이 신기했지만, 사실 이것은 중년의 남성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중년 남성의 ‘바람기’는 일반적으로 가정을 깨지 않으면서 젊은 여성을 만나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일반적이다. 그런 관계를 통해 얻는 활력과 생기는 시들해진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에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문제는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는 경우다. 가정에서 위로 받지 못하고 인정 받지 못하는 중년 남성의 방황은 가정 해체의 위기를 초래하기도 한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란 말이 있다. 이제 혼외정사는 단지 들키느냐 숨기느냐의 문제만 남긴 채 만연해 있다. 과거에 비해 외도가 많아지는 것은 본능을 억누르던 사회 윤리적 억압기제가 느슨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과 몸을 훈육하고 통제하던 구시대의 성담론과 제도들이 힘없이 무너졌지만, 잘못하면 개인의 인생에 씻을 수 없는 불명예가 씌워지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이 상처 속에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스스로 욕구를 조절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