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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철학의 弔鐘은 울리는가

계속되는 정원 미달 호서대 철학과 전격 ‘폐과’… ‘인문학의 위기’ 현실화 대학가 충격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철학의 弔鐘은 울리는가

철학의 弔鐘은 울리는가
신학기의 어수선함이 채 가시지 않은 지난 3월 중순, 호서대학교(총장 정근모) 천안 캠퍼스의 철학과 학생들은 ‘폐과’ 결정이라는 뜻밖의 소식에 할말을 잃었다. 그것도 다른 학과 교양수업 도중 흘러나온 말을 철학과 학생이 전해 들으면서 이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한 과의 존폐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과의 구성원인 학생들의 의사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고, 학교는 방학 중 폐과를 결정하고 학생들에게 아무런 통보도 하지 않았습니다”(최병성·94학번, 호서대 철학과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4월 현재 폐과를 반대하는 대부분의 철학과 학생들은 뒤늦은 통보 아닌 통보에 분노하면서,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재학생뿐만 아니라 동문들과 결속을 다지며 본격적인 폐과 반대운동을 펼쳐나가는 상황이다. 인문학의 인기 없는 강좌들을 폐지하는 경우는 있어도 이처럼 전공 자체가 없어지는 일은 처음이다. 지난 몇 년간 대학사회가 입만 열면 외치던 ‘인문학의 위기’가 드디어 현실로 나타나자 대학사회 전체가 술렁이고 있다.

호서대가 3년 전부터 철학과 폐과를 검토한 배경에는 지난 98년 도입한 학부제가 크게 작용했다. 학과별 모집에서 학부제로 바뀐 이후 철학 전공 희망자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1지망을 철학과로 지원한 학생이 99년 2명, 2000년 2명에 이어 2001년에는 1명도 없을 만큼 철저하게 외면당한 것. 학교측은 전공유지를 위해 성적 기준으로 강제 배정하는 방법도 썼지만, 3년 연속 정원의 60%도 채우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자 결국 폐과라는 마지막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지난 4월11일 이 문제를 놓고 학교와 학생대표가 만난 자리에서 호서대 김교빈 교무처장(철학 전공)은 “지금까지는 규정상 1지망 지원자가 적으면 강제배정을 해왔지만, 2003년 입학생부터 강제배정 없이 완전자율화한다”면서 이대로라면 철학과가 자생력이 없음을 시인했다. 철학과에 강제배정한 학생들도 다른 대학으로 편입하거나 자퇴하는 경우가 많아 재학률은 60%를 밑돈다(현재 2~4학년 철학 전공 정원 90명 중 휴학생 포함 65명). 또 학과에 남아 있는 학생들도 복수전공을 선호해 실질적으로 철학과에 남아 있는 학생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철학의 弔鐘은 울리는가
이 문제는 대학측이 5월10일까지 교육부에 학칙 변경과 개정 내용을 보고하는 것으로 마무리할 예정이다. 당장 내년부터 철학 전공자를 받지 않고, 대신 문화기획 전공을 예술학부에 신설한다. 현재 5명인 철학 전공 교수 중 2명은 신설하는 문화기획 전공으로, 나머지 3명은 신학, 중문학, 영문학 전공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교육인적자원부 대학행정지원과의 김화진 과장은 “정원자율화 정책 이후 대학이 총 정원 내에서 과를 폐지하거나 신설하는 문제는 정부의 허가사항이 아니다”고 전제하면서 “98년부터 추진한 모집단위 광역화로 기초학문인 철학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한 일로 이해해 달라”고 말한다. 아울러 학부제로 인해 기초학문의 뿌리가 흔들리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도 각종 지원책을 마련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학가에서는 이번 호서대 철학과 폐과의 직접적인 원인을 교육인적자원부가 교육부 시절부터 강력하게 추진한 ‘두뇌한국21’(BK21)의 후유증으로 해석한다. 교육부는 지난 98년 학생에게 전공선택 기회를 넓히고 학문의 벽을 허문다는 취지로 학부제를 추진하면서, BK21 지원 조건에 모집단위 광역화를 포함함으로써 강제 아닌 강제를 했던 것이다. BK21에 선정된 대학은 당연히 학부 통폐합과 정원 감축 등의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호서대는 일찌감치 과감한 학부제 시행과 벤처 분야 특성화 추진으로 지난 99년 BK21에서 벤처특화대학으로 선정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작용도 많았다. 예술학부의 한 교수는 “음악과 미술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를 예술학부로 강제 통합시킨다고 해서 학문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여기에 예술학부 교수들과 협의도 없이 문화기획 전공을 신설한다고 하니 도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호서대 김정석 기획처장(신소재공학 전공 교수)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BK21 대학은 정부 정책을 열심히 따라갈 수밖에 없다. 서울대조차 끌려가는 실정”이라며 구조조정 차원에서 폐과가 불가피했음을 토로했다.

현재 호서대 철학과 학생들은 학교측이 학부를 배정할 때 어문계열 학과와 기초학문계열인 철학을 똑같은 학부에 배정하는 행정적 잘못으로 철학과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또 대안으로 제시한 문화기획학과가 철학과 학문의 동질성-연속성을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그러나 철학을 학과로 독립시키지 않는 한 어떤 식으로 학부를 배정하든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학교측의 설명이다. “원래 국민윤리교육과로 출발해 지난 90년 철학과로 명칭을 바꿨고, 98년 학부제 실시와 함께 ‘대중문화와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기도 했다. 커리큘럼도 ‘기의 세계’ ‘공자와 논어’ ‘도의 세계’와 같은 흥미를 끌 수 있는 제목을 내걸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1학년 때 철학에 흥미를 느낀 학생들조차 부모의 반대로 다른 전공을 택하는 실정이다. 이럴 바에야 그냥 ‘철학’으로 하자고 해서 올해부터 다시 전공명칭을 바꿨다”(김교빈 교수).

호서대 철학과의 슬픈 현실은 철학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미 다음 차례는 물리다 수학이다 해서 캠퍼스 전체가 뒤숭숭하다. 비교적 잘 나가는 전공학과 교수들은 학생들을 더 모으기 위해 야단이고, 폐과 위기에 놓인 교수들은 학생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볼썽사나운 경쟁이 벌어진다.

철학의 弔鐘은 울리는가
이번 폐과 결정은 다른 대학에서도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사실 다른 대학이라고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강대 인문학부 2학년생 160명의 전공 신청 현황을 보면 국문 65명, 사학 52명, 철학 13명, 종교 4명이었다. 이화여대도 인문학부 2학년 178명 중 국문 133명, 사학 35명, 철학 10명이 신청했다. 철학은 어디에서나 인기가 없다. 서울대조차 전공별로 20%까지 전과를 허용하자 전과생이 급증하면서 일부 인기 전공에 학생들이 몰린다. 특히 인문대와 농생대, 사범대 학생들의 이동이 잦고, 이들은 전과가 안 될 경우 자퇴 후 재입학하는 길을 택한다. 철학 전공의 경우 지난 99년 1명이 경영대로 옮겼고, 2000년에는 전과자가 없다가 2001년에 4명이 경영과 영문으로 전공을 바꿨다.

“철학은 대학의 영혼”이라고 주장하는 동국대 홍윤기 교수(철학)는 이번 호서대 사태에 대해 “어떤 학문보다 연계성과 포괄성이 뛰어난 철학을 포기하고, 전혀 다른 전공을 설치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만약 공학분야라면 기술 발전의 가변성 때문에 얼마든지 폐과가 가능하다고 본다. 시대에 뒤떨어진 기술을 배울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철학은 다르다. 어떤 학문이 생기더라도 그 학문의 영혼은 철학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돈이 안 된다고 철학을 없애는 것은 대학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광주 인제대 명예교수(대학사 연구회 회장)는 ‘전환의 시대 대학은 무엇인가’(한길사)에서 시대의 흐름은 이미 철학에서 공학 쪽으로 이행했음을 인정하면서도 대학의 위기를 경고했다.

“지난날 크리스트교적 중세에서 신학부가, 교양 제일주의를 이념으로 한 근대대학에서 철학부가 중심학부였듯이, 오늘날 대학의 중추신경은 산업-공학부다. 이런 현대 대학의 출발에 앞장선 것은 세계 최대의 테크놀로지 사회인 미국이었다. …그러나 산업국가에서 정부와 대기업의 자기 중심적 전략에 따르는 ‘사업화’ 과학의 편중은 학부와 학부 간, 학문과 학문 간의 불균형을, 그리고 그것을 넘어 연구와 교육의 불협화음을 낳아 대학의 본질을 위협한다.”

하지만 이런 경고조차도 대학에서 철학이 주도권을 되찾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김교빈 교수는 “철학과 교수가 교무처장으로 있으면서 어떻게 폐과라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고 갔느냐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교수가 저 살자고 오기 싫은 아이들을 억지로 철학과에 붙들어 놓으려는 것 같아 자괴감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끝으로 “철학이 수준 낮은 학문이어서도 아니고, 우리 사회의 풍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폐과를 결정했지만 다시 태어나 학문을 하라 해도 철학을 할 것”이라는 김교수의 단호한 어조 속에는 철학의 쇠퇴를 바라보아야 하는 학자의 안타까움이 묻어나왔다.



주간동아 2001.05.10 283호 (p72~73)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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