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3

2001.05.10

더 짧게, 더 간단히… 英 신세대 영어 파괴

통신, 문자 메시지에 속어·약어 대유행… 일상 대화에도 사용, 기성세대와 의사소통 불능

  • < 이정화/ 런던 통신원 pyrfd@csv.warwick.ac.uk >

    입력2005-01-25 13: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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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짧게, 더 간단히… 英 신세대 영어 파괴
    부모와 자녀 세대간 대화 단절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른들은 언제나 ‘요즘 젊은애들…’을 우려해 왔고, 신세대들은 기성세대의 답답함에 숨막혔다. 영국도 물론 예외는 아니어서 세대간 의사소통 불능은 계층-지역 간 대화 단절 못지않은 문제로 지적된다.

    대학에 보낸 자식들이 방학이 되어 돌아오면, 부모는 겨우 몇 달 사이에 자식들이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데에 황망해진다. 무슨 얘기냐고 물으면 “You haven’t got a scoobie-do what your offspring are talking about”(엄마는 자식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몰라요! - scoobie-do는 만화-영화 주인공. 여기서는 단서를 뜻하는 clue로 쓰였음)라고 받아 치는 아이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부모들은 새로운 어휘를 익혀야 한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우리 편’으로 끼워주지 않는 까닭에, 같은 젊은이들 사이에도 새 유행 언어를 익히는 것은 새 유행 패션을 입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한국에서 3년간 영어를 가르치다 얼마 전에 영국으로 돌아온 웨인(28)에게 속어사전은 정통사전보다 더 손이 자주 가는 재정착 필수품이다. 그렇지만 그가 친구들과 교류하는 데 보탬이 되는 것은 이제 속어사전보다도 SMS(Short Message Service) 약어사전이다.

    문자 언어세계의 초보자들을 위한 이동전화 메시지 약어사전 ‘wan2tlk?’(want to talk?)은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 직전의 베스트셀러 경주에서 ‘해리 포터’를 누르고 일등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고, 오는 6월 미국과 영국에서 개정 증보판의 동시 출간을 앞두고 있다. 폭발적인 문자 통신의 유행 덕분이다.

    영국 젊은이들을 휩쓰는 문자 교신의 유행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높은 이동전화 사용률에 기인한다. 공중전화 한 통화가 20p(400원 정도)인데 비해 이동전화 문자통신 사용료는 10p에서 25p 정도로 저렴한 편이고, 가입비와 사용료만 물면 이동전화기를 무료로 얻거나 대여할 수도 있어, 이동전화는 특히 학생층에 쉽게 전파될 수 있었다. 어른들의 엿보기와 끼여들기를 봉쇄하고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은밀한 교신암호를 쓰고 싶어하는 젊은 세대의 욕구 또한 문자통신의 유행에 불을 지폈다.



    예전에는 그래도 부모와 자식은 같은 말을 썼다.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 으르렁거리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망정, 사용하는 문법과 문자는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문자통신의 유행은 그나마의 보루마저 무너뜨렸다. 그들의 표기법은 기성세대의 영어표기법이 아니다.

    ‘How r u? Wot u up2? I’m goin2 cinema l8er if u wana cum.’ (How are you? What are you up to? I’m going to cinema later if you want to come.)

    이 메시지 해독에 별 문제가 없이 즉각 같은 형식의 답신을 날릴 수 있다면, 하루에 100만 건, 한 달에 10억 건 이상의 문자통신을 주고받는 영국 젊은이들과의 문자 대화권 진입을 위한 기본기는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같은 젊은이들끼리의 문자 메시지도 서로 조금씩 차이가 있음이 드러난다. 앞에서 인용한 것은 10대의 컴퓨터 통신에서 따온 문장이고, 왼쪽 상자 안의 내용은 20대의 이동전화 메시지를 인용한 것이다. 명문 사립고등학교 여고생의 컴퓨터 메시지는 띄어쓰기를 그래도 따르는 편이지만, 학교를 벗어난 20대의 이동전화 메시지는 언어의 미니멀리즘이 왕도다.

    이쯤 되면 따로 문자 메시지용 구절을 외워야 할 판이다. 영국 기성 세대는 미국이 영어를 망치고 있다고 개탄했지만, 영어의 파괴는 영국 젊은이들과 언제나 함께 다니는 작은 기계를 통해 유례없는 속도로 진척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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