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3

2001.05.10

정보의 바다는 ‘음란 마니아’ 세상

에로·폰팅 등 음란 동호회 우후죽순… 회원들 쇼킹 자료 올리기 경쟁 ‘온통 핑크빛’

  •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

    입력2005-01-25 11: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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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의 바다는 ‘음란 마니아’ 세상
    ‘안녕하세요. 에로 비됴(비디오) 운영자입니다. 열심히 야한 걸 보시는 분들? 오셔서 마음껏 코피(?)를 흘리세엽… 휴지는 필수고요-.,-; 며칠마다 자료를 업그레이드해 모든 회원에게 만족감을 드립니다. 정회원 되기도 쉽구여!!… 자, 어서 어서 오세엽.’

    지난 4월8일 한 인터넷 동호회에서 보내온 ‘가입 환영’ e-메일이다. 취재차 가입한 이 동호회는 에로영화 마니아의 온라인 모임을 자처한다. 하지만 이곳에선 끊임없이 올라오는 갖가지 ‘야사’(야한 사진)와 ‘야동’(야한 동영상)이 에로비디오 수를 압도한다.

    웹 공간이 ‘핑크빛’에 물들고 있다. 최근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이른바 ‘음란 동호회’들이 노골적으로 네티즌의 퇴폐를 부추기는 것. 이 신종 동호회는 프리챌, 네띠앙 등 커뮤니티 사이트마다 예외 없이 존재하지만 가장 광범하게 분포한 곳은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다음’(www.daum.net). 58만 개 카페와 2100만 명의 카페 회원(4월22일 현재)을 둔 이 사이트엔 수많은 음란 카페가 상존한다.

    지난 4월25일과 26일 살펴본 상당수 ‘다음’ 카페(동호회)의 음란성은 심각했다. 기자는 이중 ‘누드사진나라’ ‘캠야사 119’ 등 10개 카페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맨 먼저 ‘셀프-포토방.’ 지난 4월7일 오픈한 이 카페의 회원은 4월26일 현재 1487명. 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불식을 위해 회원 간 자작(自作) 누드 사진을 돌려보자는 게 본래의 개설 취지. 하지만 이곳 자료실은 ‘포르노 천국’이었다. 다른 사이트에서 ‘퍼온’ 야릇한 포즈의 한국-일본 여성 나체사진, 화상채팅 도중 가슴이나 알몸을 보여준 상대 여성의 모습을 몰래 캡처 한 일명 ‘캠 사진’, 성행위를 담은 몰카 등이 뒤범벅되어 있는 것. 일부 회원은 직접 찍었음을 강조하려 자신과 성관계를 가진 여성의 알몸 옆에 국산 담배나 국내 경제신문, 월간지 등 ‘소품’을 놓아둔 치밀한(?) 사진까지 올려놓았다.



    ‘훔쳐보기’ 심리에 편승하긴 지난 3월29일 개설한 카페 ‘자작사진 올리기’도 마찬가지. 치부를 노출한 여성 사진을 곳곳에 게시한 이 카페는 아예 정식 회원을 △본인의 ‘물건’ 사진을 보낸 남성 △섹시한 포즈의 본인 사진을 보낸 여성 △카페 홍보나 자료 게시활동에 열성적인 사람으로 한정하면서까지 네티즌의 말초신경을 자극한다.

    ‘야사’나 ‘야동’만 음란카페의 ‘콘텐츠’는 아니다. 불건전한 폰팅을 조장하는 ‘1004 폰팅클럽’은 남성회원에게 본인의 성 경험담 공개를 요구한다. ‘야설’(야한 소설)을 주요 콘텐츠로 ‘특화’한 ‘야설나라’ 역시 근친상간 등 충격적 내용을 다룬 소설과 함께 ‘이해할 수 없는 새 엄마의 행동’ ‘옆집 누나방에 들어갔다가…’ 따위의 성고민 상담내용을 ‘퍼온 글’로 게시하는 등 음란성이 농후하다. 개설 나흘 만인 지난 4월26일 이 카페 회원은 이미 2800명을 넘어섰다.

    이런 음란카페의 등장은 ‘B양 비디오’ 사건 후 이를 유포한 불법 사이트(와레즈)에 대해 이뤄진 당국의 대대적 단속과 무관하지 않다. 아무나 접속함으로써 쉽게 ‘감시’에 노출되는 와레즈사이트보다 적극적으로 음란물을 찾는 네티즌을 겨냥한 동호회가 은밀한 운영에 더 적합하다는 사실을 운영자들이 눈치채면서 음란 카페가 갑작스레 확산되었다는 게 네티즌의 중론. 이를 방증하듯 카페 개설은 대부분 올 2~4월에 집중되어 있다.

    정보의 바다는 ‘음란 마니아’ 세상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컴퓨터 음란물 대응운동을 펴는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 소장(35)은 “회원을 통해 손쉽게 음란물을 수집할 수 있다는 게 그 첫째다. 또 그 자료들을 언제든 금전적 이익을 낼 만한 콘텐츠로 활용 가능하다는 이점이 두 번째 이유”라고 분석한다. 그는 “운영자들이 등급상향 요건 중 하나로 회원 신상정보를 요구하는 것도 정보를 공개하는 ‘충성’ 회원과 이를 거부하는 잠재적 ‘내부 고발자’를 가려 단속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라고 덧붙인다.

    그의 말처럼 음란 카페는 회원자격을 철저히 등급화한다. 갓 가입한 회원은 ‘준회원’으로 분류해 ‘강도 약한’ 자료만 ‘맛보기’로 볼 수 있다. 고급(?) 콘텐츠를 게시한 특별 자료실을 열람하려면 정회원이나 우수(특별)회원으로 등급이 올라야 하는데, 운영자들은 새 자료를 꾸준히 올린 회원에게만 자격을 준다. 때문에 음란 카페엔 ‘등급 업(up)을 시켜달라’는 준회원들의 호소(?)와 이들이 업로드한 ‘쇼킹’한 자료들이 빗발친다.

    음란 카페의 급속한 확산은 느슨한 카페 개설 및 회원가입 절차에도 간접 원인이 있다. 대개 음란 카페들은 ‘자작사진’ ‘누드사진’ ‘화상(畵像) 캠’ 등 몇몇 특정 검색어만 ‘카페 찾기’ 메뉴에서 쳐보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자료 열람을 위해선 회원가입을 해야 하지만 ‘다음’(www.daum.net)의 ‘한메일’ 계정만 있으면 개인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메일 ID나 닉네임 정도만 공개하고 약관에 동의하는 것으로 절차는 끝난다. 또 만 18세 이상의 ‘다음’ 회원이면 누구나 별도 인증절차 없이 카페 개설이 가능하다. 인터넷의 익명성과 비대면성에 길들여지고 디지털 카메라와 PC캠 사용에 능숙한 N세대들에게 사실상 ‘가입 장벽’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 몇몇 음란 카페의 ‘회원 명부’를 검색한 결과 회원 대다수가 20, 30대 남녀였고, 대학생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음란 카페 문제는 넷상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례로 카페 ‘성에 관한 모든 것’의 게시판엔 ‘화끈하고 열정적인 만남’을 주선한다는 700서비스 번호와 유료 성인 사이트 광고, 성인용품 쇼핑몰 안내, 섹스 상대를 구한다는 정보가 널려 있다. 온-오프 라인의 음란정보가 칡덩굴처럼 얽혀 퇴폐의 군락을 이루는 것.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이하 정통윤) 홍순철 유해정보팀장은 “여러 사이트에 같은 운영자의 음란 동호회를 동시 개설한 경우가 많아 원칙적으로 사이트 운영업체의 자정 노력이 가장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정통윤 불건전정보신고센터가 지난 1월부터 3월까지 자체 인지와 신고를 통해 적발해 국내 인터넷업체에 시정을 요구한 불건전정보 사례는 828건. 이중 30% 이상(271건)이 ‘다음’과 관련한 것들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다음’측의 자체 단속은 역부족이다. ‘다음’의 불법-음란 카페 단속 직원은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해 10여 명. 카페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하는 ‘다음지기’(회원) 70명이 별도로 활동중이지만 날마다 4000∼5000개씩 생기는 카페들의 음란성 여부를 제대로 점검하기란 불가능한 실정.

    “단속을 강화하였지만 워낙 카페 수가 많은데다 찾아내 강제 폐쇄해도 운영자들은 곧 명칭만 다른 음란 카페를 만든다.” ‘다음’ 관계자는 “또 운영자들이 적발에 대비해 다른 사이트에 미리 만든 동호회와 링크하는 게릴라 작전을 쓰고 있어 단속이 어렵다”고 털어놨다. ‘다음’이 지난 3월12일부터 4월17일까지 운영한 ‘사이버 포도청’에 신고한 불법-음란 카페 수는 하루 평균 250개. 운영 전보다 신고 건수가 2.5배 늘었다. 이는 뒤집어보면 그만큼 최근 들어 음란 카페가 부쩍 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다음’측은 지난 4월26일 ‘주간동아’의 취재 직후 기자가 가입한 10개의 카페 중 3개를 서둘러 폐쇄했다.

    하지만 또 다른 맹점은 있다. 보통 커뮤니티 사이트는 공개 동호회 외에 검색어로 검색되지 않는 폐쇄적 소모임인 비공개 동호회(운영자 초청이 없으면 가입 불가능) 서비스를 제공한다. 음란 카페 운영자가 단속을 당해도 ‘맹렬 회원’을 이끌고 비공개 동호회로 ‘잠수’하면 사이트업체를 제외하고는 일절 외부의 감시가 미칠 수 없는 것. ‘다음’의 경우 비공개 카페가 공개 카페의 10분의 1에 달한다. ‘다음’의 한 음란 카페는 ‘며칠 뒤 카페를 비방(비공개 카페)으로 전환하니 얼른 가입하라’는 공지를 띄워놓았다. 음란 카페들이 ‘숨바꼭질’해 가며 끊임없이 ‘부활’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마련한 셈이다.

    커뮤니티 공간의 주인인 인터넷 기업의 자정 노력과 네티즌의 성숙한 윤리의식을 담보하지 않는 한 ‘클린 사이트’의 바람은 한낱 ‘꿈’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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