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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정선카지노 그 후

자나깨나 베팅!… ‘카지노 중독’

통제력 상실 게임에 빠져 정상적 사회생활 포기… 올 11명 카지노장 출입금지 조치

  • < 정선=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

자나깨나 베팅!… ‘카지노 중독’

자나깨나 베팅!… ‘카지노 중독’
황모씨(여·28)의 눈은 ‘복수심’에 가득 찬 듯 이글이글 타올랐다. 지난 4월25일 0시, 강원랜드 일반 카지노에서 그녀는 이미 200만원을 잃은 상태. 서울에서 함께 온 남자친구가 말렸지만 그녀는 호텔 로비의 현금 자동인출기로 달려가 1회 최대 인출액 70만원을 빼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입구에서 카지노 안전 요원들이 입장을 제지했다. 그녀는 너무 초조한 상태여서 출입증`-`신분증도 챙기지 않고 온 것이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 카지노장에 들어온 그녀는 ‘블랙잭 게임 테이블’에 70만원을 뿌렸다. 일반 카지노장에서 손님들은 현금다발을 칩으로 바꿔달라며 테이블 위로 휙 던진다. 그러면 딜러는 1만원권 지폐들을 부챗살처럼 테이블 위에 쫙 펴서 ‘카운팅’ 한다. 이는 보는 사람들을 충동하는 효과를 내는 것 같았다. 테이블 여기저기서 현금 다발이 날아다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액수의 단위가 70만원인 경우가 많았다. 황씨처럼 지갑에 넣어 온 돈을 다 써버린 뒤 현금 자동인출기에서 1회 최대한도로 돈을 뽑자마자 그 돈을 테이블 위로 던지는 것이다.

황씨는 조심스럽게 3만원, 5만원 단위로 베팅을 했다. 그러나 언제 그녀가 절제심을 잃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의 경우 방문 횟수가 잦은 편은 아니지만 문제는 베팅 액수였다. “직장생활하면서 수개월 동안 모은 돈을 몇 시간 만에 다 날리고 말았어요. 그러나 이번만큼은 꼭 본전을 찾아야겠어요”(황씨).

밤새 도박하는 사람, 판돈을 자꾸 올리는 사람, 도박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 도박을 못하면 초조하고 불안한 사람, 가족 친지에게 도박사실을 숨기는 사람, 거짓말로 남의 돈을 빌리면서까지 도박하는 사람, 도박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 등은 병적인 도박중독증세에 걸렸을 확률이 높다고 한다(미국 정신과학회 자료). 이 기준에 따르면 황씨는 도박중독을 의심할 만한 행동을 하는 셈이다.

강원랜드가 개장한 지 6개월이 지난 지금 당초 우려한 대로 내국인들 사이에서 ‘카지노 중독’이 확산되었다. 실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조사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대다수 카지노 이용자들과 관련 전문가, 강원랜드측은 카지노 중독의 폐해가 나타나고 있다는 데 이구동성으로 동의한다.



20대 후반의 한 여성 딜러는 지난 6개월 동안 강원랜드 일반 카지노장의 여러 게임 테이블을 돌면서 손님들의 성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기자가 “카지노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느냐”고 묻자 그녀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녀는 그 근거로 “일반 카지노장엔 하루 평균 2200여 명이 찾는데 그중 3분의 1은 날마다 오다시피 하는 사람들이어서 거의 얼굴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랜드는 전문가들을 라스베이거스로 보내 연수를 받는 등 카지노 중독자를 위한 예방 프로그램을 마련중이다.

카지노 중독자들은 우선 카지노 게임 자체에 강한 매력을 느끼면서 점차 통제력을 잃고, 결국은 자신의 처지보다 훨씬 과도한 규모로 카지노놀이에 돈을 쓴다. 지난 4월25일 새벽 2시 한 블랙잭 테이블의 게임 진행상황은 카지노에 심취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블랙잭은 딜러와 손님이 1 대 1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다. 카드 숫자의 합이 21을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손님 카드의 숫자 합이 딜러보다 높게 나오면 베팅한 액수만큼 받고 반대의 경우엔 딜러에게 베팅한 돈을 주어야 한다. 베팅한 10명의 손님은 딜러의 마지막 카드가 펼쳐지기를 숨을 죽이며 기다렸다. 텐(10)카드가 나와 딜러카드의 합은 22가 되어 버렸다. 이길 확률이 없다며 체념하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올렸다. 블랙잭은 간단명료한 게임방식, 고액의 베팅, 이론상 절반의 승률, 빠르게 진행하는 스피드가 어우러져 손님들에게 팽팽한 긴장감을 던져주었다. 이 테이블의 손님들은 해가 뜰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은 채 게임에 몰두했다.

많은 사람들은 새벽에 카지노장을 나오면서 지난 밤을 후회한다. 그러나 다음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한때 67개에 이른 강원랜드 주변 전당포가 지금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23개가 성업중이다. 한 전당포 앞 마당엔 담보로 잡은 외지인의 승용차가 10여 대 주차해 있었다. 강원랜드 호텔측은 손님들이 ‘체크인’할 때 선불로 숙박비를 받거나 손님의 신용 카드를 미리 열어둔다. 손님이 카지노에 빠져 ‘거덜’이 나더라도 숙박비를 떼이지 않기 위한 조치다. 임모씨(25·인천)는 날마다 카지노로 ‘출근’하다 지난 2월18일 출입금지 조치를 당했다. 보다 못한 임씨의 부모가 강원랜드측에 출금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남편이 게임에 빠져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부인의 하소연도 접수되었다. 올 들어 11명이 부인이나 부모 등 직계가족의 요청에 따라 카지노 출입을 금지하였다.

카지노는 게임 진행 사이클이 경마나 경륜 등 다른 도박 게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중독에 빠졌을 경우 위험성이 더 크다. 특히 중산층이나 서민들 사이에선 카지노 중독으로 심각한 경제적 위기를 맞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고한읍의 한식집 남도회관에서 밥을 대놓고 먹은 40대 중반의 남자는 읍내 여관에 월세로 방을 얻어 살면서 일주일째 카지노에 몰입하고 있다. 그의 하루 밑천은 500만~1000만원. 생업도 중단한 상태라는 그는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스스로 중독에 빠졌음을 인정했다. 식당주인은 “단체로 야유회 간다고 가족들에게 거짓말한 뒤 카지노장을 찾은 등산복 차림의 중년 여성 5명이 우리집에서 밥을 먹고 갔다. 그런데 카지노에서 돈을 다 잃었다며 3인분만 시키더라. 소문으로만 듣던 중독자들을 실제로 확인하여 놀라웠다”고 말했다.

도박중독 예방프로그램 실무위원 원기준씨는 “카지노 중독은 일차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라고 단정했다. 따라서 해법은 잃어버린 자기 절제력을 회복하는 개인 차원의 접근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게 원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강원랜드의 태생적 한계 역시 중독자를 양산하는 구조적 원인이라는 지적이 있다. 강원랜드 카지노는 수요가 엄청날 것이라는 예상이 있음에도 이를 충족할 충분한 시설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기 개장했다. 어떤 이유에서 개장 시기를 앞당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 카지노 건물은 급조되다 보니 턱없이 비좁다.

이 때문에 일반 카지노장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손님들은 전날 저녁에 실시하는 추첨에 당첨되어야 다음날 테이블 게임을 위한 자리를 얻을 수 있다. 정상적으로 테이블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1박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막상 게임을 시작한 뒤 자리를 오래 비워두면 다른 대기자가 차지한다. 카지노 손님 유모씨(38·서울)는 “과잉 베팅은 극심한 자리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떻게 얻은 자리인데 ‘미니멈 베팅’(5000원)이나 하고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5000원짜리 칩을 만지작거리다간 눈총을 받아 자리에 앉아 있지도 못하는 분위기다. 테이블 게임이 꾼들의 차지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유모씨).

슬롯머신이나 룰렛에서도 손님들은 당첨 확률은 낮지만 배당률이 높은 곳으로 몰린다. 100원짜리 동전을 넣는 슬롯머신 기계는 출입구 쪽 한 켠으로 밀려났고, 대부분의 기계는 한 판에 500원짜리 동전 3개를 동시에 넣는 최고액 베팅 위주로 운영하였다. 이런 환경에선 애초 강원랜드의 설립 취지였던 카지노를 통한 건전 놀이문화 정착은 어렵지 않느냐는 게 이용자들의 생각이다. 유씨는 “공간의 협소함이 한탕주의를 부추긴다. 카지노가 도박 중독자들의 놀이터가 되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강원랜드측이 내세우는 해답은 메인 카지노 개장이다. 카지노 공간이 지금보다 3배로 커지면 손님들이 베팅 액수에 관계없이 여유 있게 카지노를 즐기고 카지노 문화도 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새로운 카지노가 들어서는 것은 결사 반대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앞으로 1년 반 정도 남았다. 그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1.05.10 283호 (p44~46)

< 정선=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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