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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독 경제교류는 윈-윈게임 이었다”

西 경제적 특혜에 東 정치적 보상… 수익성에 입각한 기술이전·직접투자 등 장기 포석

  • < 정형곤 /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동-서독 경제교류는 윈-윈게임 이었다”

“동-서독 경제교류는 윈-윈게임 이었다”
동-서독의 경제교류는 통일을 하기 전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분단과정에서도 동-서독 간 경제교류는 있었으나,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무역규제정책에 따라 겨우 명맥만 유지할 정도였다.

1960년대까지 서독 정부는 동독과의 경제교류를 냉전의 도구로 활용하였고, 구소련과 동독이 베를린으로의 통행을 봉쇄할 때마다 이에 대해 경제적 조치로 맞대응하곤 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동-서독 간 경제교류는 1960년대 말까지 커다란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동독을 고립시켜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서독 정부의 목표는 1969년 사민당의 당수인 브란트가 총리가 되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브란트는 동-서독 간 관계개선을 위한 독일정책(Deutschlandspolitik)을 취했고, 그 결과 1972년에 동-서독은 기본조약을 체결하였으며, 73년에는 동-서독이 유엔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양독간 경제교류는 더 이상 냉전의 도구가 아니라, 긴장완화와 대립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이때부터 동-서독 경제교류는 각종 혜택을 통해 통일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하였다.

서독은 동독과의 경제교류에서 많은 혜택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동독에 대한 서독의 지원정책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서독이 양독간 경제교류를 위한 제도 구축과 경제협력 환경조성을 통해 동독이 스스로 경제교류에 적극 나설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물론 동독은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경협에 적극 참여했다. 서독 또한 동독에 주던 특혜에 상응하는 정치적 보상을 받았다.

서독의 대동독 경제교류 지원정책을 보면, 먼저 서독은 동-서독 간 거래를 GATT와 EC에서 민족내부거래로 인정받음으로써, 동독이 동구권 국가들과 달리 EC 회원국이 아니면서도 회원국에 준하는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 결과 동독은 서유럽 시장에 관세를 지불하지 않고 진출해 가격경쟁력을 높임으로써 상당한 경제적 이익을 얻었다. 뿐만 아니라 서독은 동독 상품이 서독 시장 내에서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통상 서독 시장 내에서 적용하는 부가가치세 14%를 적용하지 않았으며, 서독 기업들이 동독 상품을 구입하도록 장려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독은 동독에 각종 특혜를 보장하면서 서독 시장을 개척하도록 하였으며, 그 결과 서독은 동독의 가장 매력적인 시장이 되었다. 동독은 섬유, 의복, 유리, 도자기 등의 생산품 4분의 3을 서독에 공급했으며, 화학제품이나 철강 등도 50% 이상을 서독으로 반출했다.



“동-서독 경제교류는 윈-윈게임 이었다”
제도적 특혜 외에도 서독은 동독 정부에 각종 기술이전을 포함해 재원을 빌려 주었다. 동독이 대규모의 산업 설비를 서독에서 구입할 경우 서독 정부는 장기 저리의 차관 형태로 지불보증을 하였고, 서독 은행이 차관단을 구성하여 동독에 차관을 제공함으로써 설비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러한 서독 정부의 양독 교역정책에 대해 집권당 내에서도 반발이 컸다. 그러나 서독 정부는 과거 양독 교역을 동독에 대한 압박수단으로만 사용하던 정책이 더 이상 효용성이 없다는 사실을 설득하면서 동-서독 모두가 긴장완화와 협력을 위한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며 이 정책을 지속시켰다. 서독 정부는 동독에 대한 경제적 특혜를 보장하는 대신, 동독에 그 반대급부로써 상호 민간인 방문 확대, 동독 입국 제한요건 완화, 편지 및 소포 검열의 완화, 인권문제 개선 등 서독측의 정치적 요구를 들어줄 것을 강요했다.

동-서독의 경제교류에서 서독이 동독에 대해 특혜만 준 것은 아니었다. 동독이 서독 시장에서 덤핑으로 가격을 낮추거나, EC시장에 과잉공급된 품목을 공급할 경우 서독의 해당산업 보호와 고용 안정을 위해 이를 규제하기도 했다. 특히 동독 농산품의 무제한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 서독 정부는 농산물 쿼터제를 실시했다.

동-서독 기업 간 경제교류는 철저히 수익성에 입각한 교류협력이었다. 서독 기업들은 기업의 소유구조상 회장의 단독 의지로 수익성이 없는 사업에 참여할 수도 없으며, 정부 또한 대동독 투자를 강요하지 않았다. 양독 경제교류에서 서독 정부의 역할은 경제교류를 촉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인센티브를 조성하는 것에 그쳤다. 물론 동-서독에서도 금강산 관광과 같은 비슷한 사업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서독 정부가 동-서독 청소년의 교류와 협력을 증대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하여 서로 방문을 장려한 것이었다. 이 사업은 서독 정부가 양국간 긴장완화와 민족의 동질성 회복을 위해 취한 사업이지, 현대의 금강산 사업과 같이 어떤 특정 기업에 위임한 것도 아니었고, 수익성을 목표로 한 사업도 아니었다.

서독 정부는 동-서독 기업들의 경제협력을 촉진하고, 동독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1970년대부터 동독 지역에 설비 투자를 할 수 있게 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헤니스도르프(Hennigsdorf)에 제철소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이 프로젝트에는 다수의 서독 기업들이 참여하였고, 여기에 소요하는 경비는 모두 서독 정부가 조달하였다. 그밖에도 동독은 서독에서 화학공장과 같은 생산설비를 도입함으로써 가공 설비를 현대화하였고, 구소련에서 원자재를 조달 받아 이를 가공해 서독으로 반출함으로써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었다.

동-서독의 기업 간 경제교류 가운데 대표적인 또 하나의 사례는 서독의 폴크스바겐(Volkswagen) 사가 연 29만 개의 엔진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동독에 투자하고, 여기서 생산한 엔진을 다시 서독으로 반입하는 사업을 추진한 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동독도 기술이전과 외화 획득의 이익을 볼 수 있었고, 서독의 폴크스바겐도 차량의 생산단가를 낮춤으로써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서독 정부가 동독과의 교류협력을 촉진하기 위한 협정과 환경개선 및 제도적 장치 마련에 우선적으로 주력하였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전통적으로 국가가 시장에 간섭하지 않고, 시장의 환경만 조성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독일 정부의 경제원칙에서 시작하였다고 할 수 있다. 서독 정부가 동독과의 경제교류에서도 서독 기업들과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 및 투자환경 개선에 노력을 기울인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동-서독의 경제교류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은 동-서독의 경제교류 형태가 초기에는 직교역과 위탁가공 단계를 거쳐 대동독 직접투자로 전환하였다는 것이다. 서독은 동독으로의 직접투자를 유도하여 기술이전은 물론, 동독 상품의 경쟁력을 높임으로써 동독 경제회생에 크게 기여했다. 이것은 남북한의 경제력 격차가 큰 우리의 현실에 비춰볼 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한의 경제협력이 현재와 같이 북한으로의 자본유입과 기술이전 없이 단순교역만 하다가는 통일할 경우 북한 기업의 자본스톡 대부분을 폐기 처분하여 북한 산업 전반이 붕괴할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의 경제협력은 통일 이전에 북한의 자본스톡 폐기율을 낮출 수 있는 방향으로 모색하여야 하고, 이러한 이유에서도 대북한 직접투자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 상황은 우리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펴기에 유리한 상황만은 아니다. 현 정치적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남한 기업들이 대북한 직접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북한과 합의하여 어떤 방법으로 마련하는지가 남북 경제협력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01.05.10 283호 (p32~33)

< 정형곤 /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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