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3

2001.05.10

금강산관광, 차라리 배를 세워라

화려한 출범 2년여 만에 골칫덩어리 전락… 적자 투성이에 대북사업 상징성도 퇴색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

    입력2005-01-24 15:2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금강산관광, 차라리 배를 세워라
    지난해 12월부터 끌어온 금강산 관광 대가금 조정건을 협의하기 위해 지난 4월24일 방북한 현대 정몽헌 회장 일행이 처음 예정한 일정을 앞당겨 베이징으로 돌아온 것은 4월26일. 담당 부서인 통일부 교류협력국 관계자들은 이날 다른 어느 때보다도 현대의 방북 협상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금강산 관광사업이 표류하는 바람에 이 사업의 중단 여부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당장 다음날인 4월27일 국회 남북관계발전지원특위가 열릴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행정부를 감시-견제하는 국회의 일반 상임위와는 성격이 다른, 말 그대로 ‘남북관계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설치한 특위’라지만 초미의 현안인 금강산 관광사업에 의원들의 질의가 쏟아질 것이 뻔했다.

    이날 통일부 관계자들 못지않게 현대 소식을 애타게 기다린 사람들은 한국토지공사 북한사업단 관계자들이었다. 그러나 교류협력국 관계자들이나 북한사업단 관계자들 모두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정몽헌 회장이 서울행 대신 도쿄행 비행기를 탔기 때문이다. 그를 수행하고 서울로 돌아온 김윤규 사장이 “북쪽과 금강 산 관광에 대해 심도있게 협의했다”고 밝힌 것 이 전부였다. 북한사업단의 한 관계자는 “정 회장 일행이 북한측과 개성공단 문제도 협의하기를 기대했는데 개성공단의 ‘개’자(字)도 꺼내지 못한 것으로 안다”며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현대 송금 중단으로 사실상 계약 파기 상태

    토지공사는 현대아산과 함께 개성공단 개발사업의 공동 시행자이다. 그런데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이 갈피를 못 잡고 표류하는 바람에 개성공단 개발사업마저 현대(금강산사업)에 발목이 잡혀 답보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28쪽 관련기사 참조). 2년 반 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상징으로 온 국민의 박수 속에 화려하게 남북 교류협력의 물꼬를 튼 금강산 관광사업이 이제는 정부의 다른 대북사업마저 가로막는 골칫덩어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금강산 유람선을 세우라’는 주장이 터져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금강산 뱃길이 이쯤에서 끊어진다면 이는 햇볕정책의 실패일까. 금강산 관광사업이 관광객 숫자 감소와 대가금 인하 협상의 난항으로 적자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지난 4월26일 대가금 협상에서 별다른 성과 없이 북한에서 돌아온 정몽헌 회장의 귀국 이후, 현대의 금강산 사업 중단 여부는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라리 배를 세우라는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사업이 첫째, 경제적으로 수익성이 없고 둘째, 경제적 손실이 있음에도 이를 보상받을 수 있는 대북 투자사업이 진전되지 않는데다 셋째, 대북정책의 상징이라는 이 사업의 가치가 김대중 정부 초기와 달리 크게 퇴색하였기 때문이다. 배를 세운다고 해서 남북 경협사업이 모두 중단되는 상황이 오리라는 ‘가공할 시나리오’에서도 깨어날 필요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금강산 사업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현대와 북한측의 협상을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배를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남북경협이라는 커다란 틀에서 금강산 관광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따지기 위해서는 이런 계산방식을 택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1999년 북한의 수출 총액은 5억2000만달러 수준이다. 그러나 수출 총액이란 것이 북한의 순수한 수입으로 잡히는 것은 아니다. 원자재 값이 들어가고 제품 생산에 따른 인건비가 들어가니까 5억2000만달러의 수출 총액 중 북한이 현금으로 챙기는 돈은 극히 제한된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북한실 관계자는 “5% 정도의 수출 마진율을 적용하면 대략 북한이 한해에 2500만달러 정도의 외화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현대가 지금 북한에 보내는 월 1200만달러의 대가금을 1년치로 환산하면 1억4400만달러. 현대는 지난 99년 한해에만 북한에 1억7100만달러의 현금을 송금했다. 이 금액은 북한이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 수입의 7배에 이르는 금액이다. 물론 북한은 제3세계에 대한 무기나 마약 수출 등을 통해 적지 않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는 어떤 북한 전문가들도 추정하기 어려운 만큼 일단 제외할 수밖에 없다.

    북한경제 전문가들은 북한이 지난 90~98년까지 9년간 내리 마이너스 성장으로 일관하다 99년부터 6.2%나 되는 플러스 성장으로 갑자기 돌아선 데는 98년 말부터 현대가 제공한 자금이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말하자면 북한으로서도 현대가 금강산 사업과 2005년까지 약속한 송금을 중단하는 상황, 즉 금강산 유람선이 서고 계약을 파기하는 상황을 결코 원치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사실 현대가 송금을 중단함으로써 현대와 북한측의 계약은 이미 파기상태에 놓여 있다.

    금강산관광, 차라리 배를 세워라
    현재 현대측이 사실상 관광 대가금을 임의로 삭감한 채 송금을 중단하였음에도 북한이 선뜻 입항 불허 조치를 내리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배경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도 금강산 관광 초기에는 문영미씨 억류사건에서 보듯 무리한 트집을 잡아 관광사업을 중단시킨 일이 있었다. 그러나 북한측이 송금 중단과 관련해 현대측의 계약 파기를 문제삼으려는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아직까지 사업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현대측 관계자도 비슷한 설명을 한다. 다음은 현대아산 관계자의 설명이다.

    “북한측이 사업 중단을 원한다면 어쩔 수 없이 중단하겠지만 대가금을 적게 들여보내는데도 사업이 유지되는 것을 보면 그런 상황은 아니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냥 가는 것이다. 컨소시엄이나 다른 기업이 떠맡는 방안도 나오지만 수익성이 없는데 어떤 기업이 들어오겠는가.?br>

    이미 정부 내에서는 적자투성이인 금강산 사업을 현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대기업 컨소시엄 구성안과 다른 기업이 승계하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기업 승계방안과 관련해서는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풍부한 롯데, 삼성 등의 이름을 거론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 역시 애초부터 불공정 계약방식으로 출발한 금강산 사업의 수익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현대 역시 수익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적자투성이 사업을 끌어가려는 데에는 경제적 잣대 이상의 노림수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노림수는 무엇일까.

    첫째, 김대중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햇볕정책을 현대라는 기업이 꿋꿋이 짊어졌다는 점을 안팎에 알리는 선전 효과일 것이다. 그러나 사업성이 없음에도 정부 시책을 충실히 뒷받침하였다는 정부 차원의 후한 평점을 받을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채권단 등 이해 관계자에게서 얻는 평점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둘째, 금강산 사업에서 적자를 보더라도 현대건설 등을 동원해 경의선 복원사업이나 개성공단 조성사업에서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복안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현대건설의 출자전환 등으로 인해 현대건설조차도 사실상 공기업화한 마당에 대북 투자사업 활성화가 현대측의 이익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멀어진 형편이다.

    이와 관련해 금강산 사업 시작 당시 주무장관으로 정부 창구 역할을 맡았던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은 “당시 현대는 서해안 공단을 포함해 선박 수리공장, 전동차 조립공장 등 12개의 대북 프로젝트를 함께 제출했고, 이를 계속 해나가면 금강산 사업의 적자를 만회할 수 있다는 구상이었으나 관광객 숫자에 연동하기로 합의 단계까지 갔던 대가금 협상에서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상황이 악화했다”고 지적했다. 대가금 협상을 관광객 숫자와 연동하지 않는 일시불 송금(lump sum) 방식으로 결정하면서 현대가 구상한 두 가지 전제 중 하나가 무너졌고, 개성공단 등 여타 대북 투자사업을 지체하면서 두 번째 전제마저 희미해졌다.

    강 전 장관은 “럼프 섬 방식 역시 처음에는 관광객 숫자 대비 지급으로 합의한 상황을 북한이 뒤집으면서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당시 모든 대기업들에 적용한‘부채비율 200%’라는 가이드라인 때문에 현대측이 럼프 섬 방식을 채택하지 말도록 권유했다는 것.

    금강산관광, 차라리 배를 세워라
    이것은 임동원 당시 외교안보수석의 발언과도 다르지 않다. 임동원 통일부 장관은 지난 4월27일 금강산 사업의 회생 가능성과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금강산 사업이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트는 데 크게 기여했고, 국민도 이 사업이 잘 되길 원한다. 또 IMF 위기에, 98년 금창리 핵사찰 및 대포동 발사건으로 안보 위기까지 중첩한 상황에서 뜬 금강산 관광선은 전 세계에 안보 위기 해소를 전파해 미국 보수강경파의 예방공격 목소리를 잠재우고,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문제는 관광비용과 대가 지급방식, 그리고 수익성 판단의 오류에 있다. 당시 정부는 일단 사업을 승인하며 몇 가지를 추가 협상하라고 권장했다. 첫째, 관광객 수에 의한 대가금 책정을 권장했다. 이것은 북한에 시장경제를 교육하는 효과도 있다. 둘째, 현금보다는 물자로 대가를 지급할 것을 권장했다. 그런데 현대는 북측과의 협상과정에서‘일괄 현금으로 지급하되 나중에 고치자’는 쪽으로 합의하였다.”

    물론 정부는 금강산 사업이 진행중인 상황에서도 현대측에 계속 현금이 아닌 현물 지급방식으로 계약을 변경할 것을 권유했다. 이는 금강산 사업이 적자구조를 벗어나지 않으면 결국 그 부담이 정부에 돌아올 것이라는 판단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지난 99년 8월 북한의 미그기(40대) 도입건을 계기로 관광 대가금의 군사비 전용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현대의‘럼프 섬’에 의한 전액 현금 송금방식은 2년 반도 안 되어 밑천을 드러내고 사업 자체를 중단 위기로 몰아넣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사업의 중단은 현대와 북한 당국이라는 양자간 문제를 떠나 좀더 복잡한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다. 여기에는 애당초 정부의 잘못도 크다. 정부가 금강산 관광사업을 햇볕정책의 큰 성과로 과시하는 바람에 발목이 잡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에 빠진 것이다.

    민간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관광사업 자체의 중단에는 신중한 견해를 보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LG경제연구원 양문수 부연구위원은 “별다른 돌파구를 찾기 힘든 상황에서 모종의 결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고 전제한 뒤 “그럼에도 정부가 햇볕정책의 기조를 유지하는 한 배를 세우는 것은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면 금강산 관광사업은 정부의 햇볕정책 성과인 동시에 금강산 지역에 고향을 둔 ‘정주영’이라는 사업가가 햇볕정책이라는 유리한 환경을 배경으로 북한 당국과 협상을 통해 따낸 투자사업이다. 정부의 대북정책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면 상징성이라는 가치가 남을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성도 6·15 정상회담과 장관급 회담, 그리고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논의 등으로 인해 많이 퇴색한 것이 사실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한 전문가는 “지금쯤 금강산 유람선을 세우더라도 앞으로 북한과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손해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미국이 대북정책 검토를 끝내면 이에 따라 관광선 사업을 재개할 수도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 자체로 수지를 맞추려면 매달 6만 명 정도의 관광객이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 현대측의 분석. 그러나 금강산 관광객은 지난해 10월의 2만8000명을 정점으로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해 4월 한 달은 관광 성수기임에도 5분의 1 수준인 5000명 정도로 예상한다. 따라서 현대상선측은 이미 5월1~15일까지 예정했던 20회의 배편 중 60%에 해당하는 12편을 취소했다. 관광객 부족이 유일한 이유이다. 굳이 배를 세우려 하지 않아도 더 이상 배가 출항하기 어려운 국면을 조성하였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결국 현대의 ‘자충수’가 부른 부정적 결과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