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3

2001.05.10

“청장님, 시위현장에 경찰배치 마세요”

386세대 경찰 간부 공개서한 파문 … “보호 명목 습관적 배치는 월권”

  •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

    입력2005-01-24 1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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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장님, 시위현장에 경찰배치 마세요”
    한386세대 경찰 간부가 경찰 총수에게 실명으로 보낸 공개서한을 둘러싼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 서한의 주인공은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실장 이동환 경감(37). 이경감은 지난 4월28일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www.ohmy-news.co.kr)에 올린 ‘이무영 경찰청장님께’란 장문의 서한을 통해 헌법과 현행 집시법 조항들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경찰이 ‘보호’ 명목으로 각종 집회시위에 습관적으로 배치해 온 관행은 잘못한 것이며, “신고를 접수하고 금지통고를 하지 않은 모든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직 경찰간부가 공개적으로 이런 주장을 펼친 건 이번이 처음. 이 서한은 이튿날 경찰청 홈페이지 ‘경찰 발전 제언’ 코너에도 올랐다.

    “불법 대비한 최소한의 채증요원만 필요”

    대우자동차 과잉진압과 관련, 가뜩이나 민감한 경찰 내부에서 이런 파격 주장을 제기한 까닭은 무엇인가. 이경감은 이에 대해 ‘(경찰의 집회시위 대처방식에 대한 고민 때문에) 이 글만큼은 꼭 써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의 서한 요지는 국민의 집회시위에 관한 ‘권리’를 헌법규정에 의거해 인권 차원에서 먼저 보장하는 방식으로 경찰력을 운영해야 하며, 경찰이 그 어떤 집회시위를 사전적 판단에서 ‘보호’하거나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 때문에 집회시위 현장은 집회 주최자와 주최측이 정한 질서유지인이 자율통제해야 하며, 보호든 다중범죄 예방 차원에서든, 집회시위 현장에 경찰관을 배치하는 것은 ‘월권’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사정의 대립 현장에서도 경찰력 투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서한의 골자다. 이경감은 또 “다만 시위현장 정보 수집을 위해 배치한 최소한의 경찰 채증요원을 방해하거나 폭행할 경우 이는 법이 보장한 집회시위가 아님을 명백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즉 불법 집회시위라는 것이다. 이경감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차형근 변호사는 “법에 따르면 이경감의 주장은 어긋난 점이 없지만 그동안 경찰의 경찰력 동원은 법과 괴리하는 부분이 많았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경감의 글은 지난 4월30일 오후 3시 현재 140여 개의 리플(독자의견)이 뒤따를 만큼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좋은 의견이다. 시위현장에 경찰이 없으면 불법과 무질서가 대폭 줄어들 것이다’ ‘충정은 이해하나, 우리가 아니면 누가 시위현장을 지킨단 말인가’ ‘제발 우리(전경)를 시위진압에 투입하지 말고 본래 임무인 대간첩작전에만 충실하게 해달라.’

    “청장님, 시위현장에 경찰배치 마세요”
    그의 주장에 대한 찬성 못지않게, ‘가까스로 잠잠해질만 하니까 경찰대 출신이 또 한번 언론에 기삿거리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영국, 미국 등 민주주의를 일찍 시작한 국가 모두 집회현장에 반드시 경찰관을 배치한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 전에 경찰조직 의사통로인 경찰청 홈페이지나 폴네티앙에 먼저 올리는 것이 순서 아니냐’ 등 일선 경찰관들의 ‘유감’도 잇달았다.

    이무영 청장에 대한 이경감의 ‘건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지난 4월30일 ‘주간동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2년 전 이청장이 서울지방경찰청장에 부임했을 때 경찰의 인터넷 활용 확대방안 등 건의사항을 서신으로 보낸 일이 있고 그 내용이 대부분 받아들여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상사들에게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칠 우려가 있어 자세한 답변을 할 수 없다”며 더 이상의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경찰에 대해) 할말이 많지만 나중에 얘기하겠다”는 말로 여운을 남겼다.

    이경감은 대구 N고 출신으로 경찰대 4기 졸업생. 14년 전 임관했으며 서울시경 기획계에 근무하다 올해 초 과학수사실장으로 옮겼다. 그와 경찰대 동기인 한 경찰간부는 “이경감은 문학에 관심이 많으면서도 의외로 현실을 직시하는 이성적 면이 강하다”며 “일각에서처럼 그를 소영웅주의로 매도할 게 아니라 현직 경찰관 상당수가 공감하는 부분을 용기를 내어 공론화한 소신있는 행동으로 봐야 할 것”이라 말했다.

    지난해 6월부터 ‘오마이뉴스’ 기자회원으로 활동하며 인권과 경찰개혁 관련기사를 써온 이경감은 같은 해 11월 ‘인권연대’ 소식지에 ‘민주주의 교사, 인권 지킴이로서의 경찰의 역할’ 이란 글을 싣기도 했다.

    이경감의 이번 서한을 바라보는 경찰의 입장은 단호하다. 경찰청 관계자는 “개인 의견 표출에까지 일일이 대응할 생각은 없다”며 “경찰의 기존 시위 대처방식엔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혁은 파격을 전제로 한다. 법의 날이자 근로자의 날인 5월1일을 앞두고 보인 한 경찰간부의 파격이 바른 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디딤돌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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