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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패스워드 (원제 : Antitrust)

컴퓨터 천재의 죽음을 파헤쳐라

  • < 전찬일/ 영화평론가 chanilj@orgio.net >

컴퓨터 천재의 죽음을 파헤쳐라

컴퓨터 천재의 죽음을 파헤쳐라
마일로(라이언 필립)는 제2의 빌 게이츠를 꿈꾸는, 스탠퍼드 출신의 컴퓨터 천재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회사를 설립해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참이다. 때마침 그는 그의 천재적 능력을 주목하고 있던 컴퓨터 업계의 실력자 게리 윈스턴(팀 로빈스)에게서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는다.

고민 끝에 게리의 왕국 ‘너브’ (NURV) 에 입사한 마일로는 인터넷-텔레비전-라디오-전화 등 전 세계의 온갖 커뮤니케이션 장치들을 결합해 모든 정보를 단일 공급원으로 통합하려는 너브사의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 프로젝트에 투입된다. 그런 와중에 그는 자신 못지 않은 재능을 지닌 친구 테디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비운의 소식을 듣는다.



컴퓨터 천재의 죽음을 파헤쳐라
그는 곧 게리와 너브사가 살인과 관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단서를 발견한다. ‘패스워드’는 바로 그 살인사건의 음모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스릴러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좋은 스릴러물이라면 의당 갖춰야 할 긴박감 넘치는 플롯의 A급 작품은 아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드러나는 의외의 사실이나 반전 등이 눈길을 끌긴 하지만 적지 않은 허점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애당초 범인들이 누구일지부터가 명약관화해 스릴러로서의 극적 흥미가 반감된다. 범인들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긴장감이 없기 때문. 따라서 영화는 거의 전적으로 마일로가 ‘어떻게’ 범인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그 ‘어떻게’가 충분한 흥미를 유발하고 지속시키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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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핵심 사건인 살인이 최첨단 프로그래밍 테크놀로지 개발을 향한 무분별한 과욕으로 인해 빚어지는 만큼 영화를 좀더 치밀하게 구성해야 했다. 게다가 작품 배경을 고려하면 액션 활극보다는 두뇌 플레이를 펼치는 쪽으로 향해야 했건만, 정작 영화는 정반대의 노선으로 달린다. 그토록 쟁쟁한 적들이 마일로를 포진하고 있는데도 그가 별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사건의 핵심 속으로 차근차근 나아간다는 건 아무래도 극적인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인공 마일로의 캐릭터도 지나치게 평면적이어서,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나 배경 등과 부조화를 이룬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와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등을 통해 할리우드를 이끌 차세대 청춘 스타로 발돋움중인 라이언 필립의 연기 또한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특히 표정 연기가 받쳐주지 못한다. ‘때로 그는 자신이 무슨 대사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더라’는 서구 어느 평론가의 신랄한 비판이 그다지 과장된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영화에 대해 지나치게 절대적인 평가에서 비롯한 것이 사실이다. 1년에 수백 편씩 쏟아지는 여느 할리우드 졸작들과 비교해 볼 때 영화는 나름대로 즐길 만한 범작쯤은 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소재의 시의성이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하다. 영화 내내 게리의 입을 통해 줄곧 터져 나오지만 오로지 ‘0’과 ‘1’뿐인 이진수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생존 게임과 무한 경쟁이라는 소재는 시의적절하고 현실적인 것이다. 인터넷 열풍이 세계적 수준인 우리네 관객들의 눈에는 특히 그렇다.

컴퓨터 천재의 죽음을 파헤쳐라
더욱이 눈길을 마일로에서 게리로 바꾸면 영화는 한층 더 흥미진진하다. 자신은 빌이 아니라고 하지만, 게리가 빌 게이츠를 모델로 했으리라는 건 짐작하고도 남는다. 너브사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참조해 형상화한 것임이 틀림없다. 바야흐로 마이크로소프트사와 미국 당국 사이에서는 독점 여부를 둘러싼 열띤 싸움이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영화의 가장 큰 재미는 결국 현실적 설득력에서 연유하는 셈이다.

마일로와 달리 게리의 캐릭터는 무척 입체적`-`다면적이어서, 그 점에서는 영화를 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그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숱한 기업가들을 대변하는 전형적 인물. 그러기에 그의 악마성에 고개를 절로 내저으면서도 동시에 그 카리스마와 파워에 매혹당한다. 물론 그건 팀 로빈스의 열정적이면서도 지적인 연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마일로의 애인과 회사 동료로 분한 클레어 폴라니(‘더 록’, ‘조블랙의 사랑’)와 레리첼 리 쿡(‘겟 카터’)의 연기도 팀 로빈스 정도는 아니어도 인상적이다. 특히 그들의 정체를 둘러싼 비밀은 영화를 꽤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극적 흥미를 더한다.



주간동아 2001.04.26 281호 (p86~86)

< 전찬일/ 영화평론가 chanilj@orgio.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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