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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한국의 ‘신귀족’

귀족이라고 다 똑같나

귀족사이트 직원이 말하는 ‘귀족 중의 귀족’… 몸에 밴 매너 - 품위, 돈자랑 졸부와는 큰 차이

  •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

귀족이라고 다 똑같나

귀족이라고 다 똑같나
귀족이라고 다 같은 귀족일까. 귀족 중에도 엄연히 등급이 존재한다. 대중의 편입 기회가 전혀 허용되지 않는 한국 사회의 톱 클래스, 이른바 ‘귀족 중 귀족’인 재벌들은 어떤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어떤 행태를 보일까.

어느 한 사례로만 예단하긴 어렵지만, ‘주간동아’는 최근 재벌급 귀족모임의 한 멤버와 접촉을 가진 모 귀족사이트 마케팅 직원 이종진씨(가명)에게서 ‘그들만의 모임’의 이모저모를 제한적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이씨는 그가 만난 재벌 2세의 구체적 신상을 알려주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취재에 응했다.

“사치스런 생활 좇기보다 사회의 리드 역할 원해”

이씨는 재벌 2세인 40대 초반의 남진석씨(가명)를 올해 초 서울 청담동에서 만났다(구체적 일시와 장소 역시 밝히지 않았다). 직업상 VIP 고객관리를 위해 상류계층의 진면목을 알 필요가 있던 이씨는 VIP 비즈니스에 대한 조언을 얻기 위해 한 고객의 소개로 그를 만나 3시간 동안 얘기를 나눴다고 했다.

“첫 인상은 보통사람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무척 인텔리하게 느껴졌다. 대화내용에 무게감과 품위가 있었고 매너 또한 절도가 있었다. 아마 세심한 교육에서 비롯한 박식함과 부유함에서 우러나온 여유 덕분이 아닐까.” 이씨는 “남씨는 귀족사이트 회원은 아니다. 그러나 노출되길 꺼리는 회원들의 특성 때문에 자세한 신상명세를 물어보지 않을 뿐, 사이트 내에도 재벌 자녀들이 일부 가입해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씨에 따르면 남씨가 속한 ‘귀족모임’의 회원은 30대 후반~40대 초반의 재벌 2, 3세. 인원은 10명 미만의 한정된 소수로 모두 기혼자(남씨도 기혼)이며, 모임 내에서도 유학시의 인연이나 학연에 따라 소모임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 “모임 성격은 비즈니스만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좀더 포괄적이다. 정보교환과 친목 목적이 반반쯤이라 보면 된다.” 이씨는 “재벌 모임의 또 다른 특징은 대물림된 경우가 많다는 점”이라고 덧붙인다.

이들은 모임에서 무엇을 할까. “가족 단위로 모이는 경우가 많다. 주로 남의 눈에 안 띄는 서로의 별장을 오가며 이뤄진다. 대개 수도권 외곽 지역이다. 가끔 디너파티도 즐기지만 시간 여유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평상시엔 술이나 시가 등이 대화의 수단으로 애용된다.”

이씨에 의하면 이들 대화의 주된 화제는 단연 경제 파트. 국내외 경제상황에 대한 정보 및 의견 교환을 통해 자신의 경영(혹은 경영수업)에 도움을 얻는다는 것. 또 클래식이나 재즈 감상토론도 곧잘 이뤄진다고 한다.

이씨는 의외로 “이들이 모임에서 골프치는 경우는 없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즐길진 모르지만 가족모임이 잦다 보니 오히려 테니스가 인기라는 것.

이들의 모임에서는 또 흔히 여러 모임에서 ‘물 관리’ 목적으로 행하는 ‘왕따’는 전혀 없다고 한다. 성공해서 만난 사이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명예와 재력, 교양 등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상태에서 만난 사이라 오히려 상호간 시너지를 발휘할 방안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재벌 2세들은 과연 그들보다 이른바 ‘등급’이 한 단계 낮다고 평할 수 있는 귀족사이트를 어떻게 생각할까. 또 빈부격차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떨까.

“그들은 귀족이란 외부의 호칭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생각보다는 그들만의 울타리를 크게 고집하지도 않는다. 단지 귀족사이트들이 사치를 좇는 사이트가 아니라 사회를 리드해나가는 역할을 맡기를 기대하는 듯했다.”

“그들은 부의 메커니즘을 안다. 때문에 돈 문제로 남들의 입에 오르는 일이 없도록 절제하는 성향이 강하다. 돈자랑에 탐닉하는 부류는 그들보다 하위그룹이다.” 이씨는 만났을 당시 남씨가 뉴그랜저를 직접 운전했다고 한다. 외제차도 갖고 있지만 ‘의전용’ 정도로만 생각하더라는 것.

이씨는 “남씨를 만난 후 ‘재벌 귀족’에 대한 선입관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 가지가 궁금하다. 이씨와 그가, 애써 ‘그’가 누구인지를 밝히지 않으려는 건 우리 사회의 미성숙 때문인가, ‘그들’만의 여전한 폐쇄성 때문인가.



주간동아 2001.04.26 281호 (p40~40)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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