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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한국의 ‘신귀족’

돈 벌려면 귀족들을 잡아라

상류층 겨냥한 ‘귀족 마케팅’ 활기… 백화점, 외제차 수입사 등 ‘특별한 대우’로 차별화

  • < 신을진 기자 happyend@donga.com >

돈 벌려면 귀족들을 잡아라

돈 벌려면 귀족들을 잡아라
“어, 그게 뭐죠?” 여름옷을 구입하기 위해 모처럼 백화점 나들이에 나선 주부 김모씨는 주변의 쇼핑객들이 들고 있는 쿠폰을 보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쿠폰에는 일정 금액 이상을 구입하면 상품권을 준다고 쓰여 있었다. ‘왜 우리집엔 안 왔지?’ 고객상담실을 찾아가 문의하자 직원은 백화점 카드를 보여달라고 했고, 컴퓨터로 뭔가 조회하더니 “자격이 되지 않아 쿠폰이 발송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쿠폰은 ‘구매실적이 우수한’ 고객들에게만 발행하는 VIP용이었던 것이다. 이날 김씨는 수십만원 어치의 물건을 구입했지만, 1만원짜리 상품권 하나 받지 못했다.

회사원 이모씨는 스커트를 사기 위해 평소 즐겨 찾는 국내 브랜드의 매장에 들렀다. 마음에 드는 옷을 골라 가격표를 보니 스커트 하나가 30만원선. 평소 10만원 내외였던 가격이 2배가 넘게 뛰어오른 것이다. 매장 직원에게 물어보니 100% 수입 원단을 쓴 ‘블랙 라벨’이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옷 뒤의 상표가 흰색에서 검정색으로 바뀌었다. 매장 직원은 “값이 비싸도 블랙 라벨을 찾는 고객이 많다”고 덧붙였다.

백화점들의 ‘VIP고객 초청행사’와 패션업체의 고급 브랜드 전략 등은 모두 ‘귀족 마케팅’의 일환이다. ‘20%의 구매자가 80%를 소비한다’는 원칙에 따라 최근 국내에 본격적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귀족 마케팅은 자동차나 고급 의류, 콘도 및 골프회원권 등에서 시작해 백화점, 아파트, 제조업, 금융권을 망라하며 전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백화점들은 월 평균 구입액이 수백만원에 달하는 고객을 대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따로 구축해 이들만을 대상으로 한 패션쇼를 개최한다. 시간 제한 없이 언제나 주차할 수 있는 무료 주차권을 발급하거나 생일에 케이크와 와인을 보내는 마케팅도 펼친다.

롯데백화점의 경우 작년 200만 명의 카드회원 가운데 1만여 명의 VIP고객을 따로 선별해 10일 안에 3000만원어치를 사면 150만원짜리 상품권을 주는 파격적인 마케팅을 실시하면서 사회적인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서민 고객을 무시한 행위’라는 일반의 비난을 의식한 듯 백화점 홍보실의 구성호 부장은 “지금은 그런 DM을 따로 발송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민 정서상 대외적으로 ‘내놓고’ 할 수는 없지만, 백화점 관계자들은 “대형 할인점에 밀려 일반 소비시장에서 기득권을 상실한 대형 백화점이 살아 남기 위해서는 마진이 높은 명품 마케팅에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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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입장에서 ‘돈이 되는’ 부자 고객을 떠받들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갤러리아백화점 기획실의 추은영 대리는 “이전에는 불특정 다수 고객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마케팅을 펼쳐왔지만, 이는 비용도 많이 들고 효율성도 떨어진다. 고객을 성향과 구매 패턴별로 세분화해 차별화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마케팅 기법을 도입하고 있다”고 말한다.

추씨가 설명한 이른바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 고객관계경영)은 유통 및 제조업체들이 최근 들어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마케팅 기법이다.

제품의 ‘희소성’을 강조하는 것도 귀족고객들을 노리는 마케팅 기법의 하나. 앞서 나온 ‘블랙 라벨’ 의상들은 한 디자인에 최소 5∼6벌만 만들어 최고급 백화점 매장에만 들여놓는다. 올 3월 런칭해 갤러리아백화점 한 곳에만 입점한 ‘랄프 로렌 블랙 라벨’의 경우, 한 디자인이 10벌을 넘지 않는 옷이 많다. 20∼40대 고소득층 여성을 타깃으로 한 이 브랜드의 정장 한 벌은 200만원선.

이런 제품들은 떠들썩한 광고나 홍보 대신 ‘구전 효과’를 노린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특별한’ 사람들이 보는 매체에만 선별적으로 광고를 하는 것. 제품 문의가 쇄도하면 ‘대기자 명단’에 올려주고, 빨리 사고 싶은 사람은 제품가격 외에 ‘급행료’를 따로 지불해야 한다.

외국 명품 브랜드를 홍보하는 회사의 한 관계자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잡지나 대중적인 장소에는 되도록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특급 호텔이나, 고급 스포츠센터, 골프장, 청담동 일대 레스토랑 등 소수의 장소에 이미지 컷을 걸거나 프로모션을 벌여 ‘특별한 당신을 위한 물건’이라는 느낌을 전하게 한다”고 말한다.

수입 자동차 업체들도 ‘비싼’ 고객 접대로 늘 바쁘다. 국내 차가 단순히 차를 파는 데 목적을 둔 반면, 수입업체들은 각종 문화, 스포츠행사를 지원하고 고객과의 직접 접촉을 통한 친밀한 마케팅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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렉서스를 판매하는 도요타코리아자동차는 국내 판매를 시작하면서 스키장에서 스키 지도 행사를 곁들인 전시 및 시승행사를 벌였고, BMW 볼보자동차 등은 신차 발표회를 미술관이나 예술의전당 등에서 열어 문화적 이미지를 높였다. 구체적인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수입자동차 업체들은 저마다 VIP에 해당하는 고객 명단을 확보하고 있어 이들을 대상으로 매달 뉴스레터를 발행한다. 골프대회, ‘고객의 날’ 행사 초대 등의 집중 관리는 물론이다. 벤츠, 크라이슬러 등을 홍보하는 뉴스컴의 김지희씨는 “이들은 행사에 가장 먼저 초대되고, 시승을 원하면 딜러가 직접 집이나 회사로 찾아가 한나절씩 시승토록 한 후 차를 가지고 돌아오기도 한다”고 말한다. VIP고객 200명을 초청하는 벤츠의 골프대회는 4월중 리츠칼튼 호텔 컨트리클럽에서 열릴 예정. 이들은 대부분 50, 60대의 기업 CEO나 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재벌 총수 부인들과 강남의 부유한 주부 컬렉터들을 상대하던 화랑가에는 요즘 들어 컬렉터들과 젊은 마니아들의 발길이 잦다. 예전엔 작가 초청 아카데미를 개최하거나 아트 컨설팅 등을 통해 고급 고객을 유치했지만, 최근에는 경매, 인터넷 등으로 저변 확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편. 지난 4월13일에 끝난 한국미술품 경매에서는 수십만원에서부터 수천만원짜리 작품도 팔려 나갔다.

떠들썩한 행사나 모임을 싫어하는 미술애호가와 컬렉터들을 위한 전시도 ‘따로’ 열린다. 갤러리 현대가 4월26일부터 개최하는 ‘Collectors’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작품을 바꾸거나 위탁판매하고 싶은 사람들을 초청해 여는 ‘그들만의 전시’로 보도자료 한 장만 내고 ‘조용히’ 치를 계획이다. 이곳에서는 작품을 사는 즉시, 가져갈 수 있고 할부 구입도 가능하다고 미술관측은 설명한다.

앞서 살펴본 사회 곳곳의 ‘귀족 마케팅’은 건강하게 열심히 살아가려는 대다수 시민들의 마음을 허탈하게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의 경제현상의 하나이므로 이를 부정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다만 ‘신귀족’들의 소비자금이 법망을 피한 불로소득이거나 탈세로 인한 것으로써 과소비로 연결되는 것은 문제.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려는 사람들의 왜곡된 의식이 이런 현상을 부추긴다”면서 “부유층의 과소비를 규제할 수 있는 보다 엄격한 조세정책이 필요하고 국가 차원에서 광범위한 소득 재분배 작업과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주간동아 2001.04.26 281호 (p38~39)

< 신을진 기자 happyend@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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