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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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마음속의 독선이 무섭다”

자신의 죄 고백해야 진정한 화해 가능 ··· 역사 인식 상대성 앞세워 비판의 눈 가리고 무시

  • < 도이 류이치 / 일본 중의원 외무위원장 >

    입력2005-02-28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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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인 마음속의 독선이 무섭다”
    한국에서 온 김영진(金泳鎭) 의원은 지금 일본 국회 제2의원 회관 앞에 앉아 단식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오늘(4월13일) 오후 9시면 4 일째를 넘기지만 아직 활력이 넘칩니다. 청년운동이나 농민활동으로 단련한 그의 신체와 정신력은 경이스러울 정도입니다.

    김의원은 10일 다른 3명의 국회의원과 함께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 교과서 문제에 항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에토(衛藤) 외무성 부장관 을 만났지만 냉담하고 형식적인 답변만 들었습니다. 다음날 외무위 원장인 저에게 찾아왔습니다. 그것 역시 형식적이지 않을 수 없었습 니다. 바로 여기에 교과서 문제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제의 역사 교과서 8종은 이미 검정을 끝내고 합격되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제 지방의 교육위원회가 채택할 것인지의 단계만 남았습니다.

    김의원 일행은 저와 면담을 마친 후 국회 주변에서 데모 행진을 하 겠다고 말했습니다. 국회 주변은 여러 가지 까다로운 제한이 있지 만, 데모 인원은 4명에 지나지 않고, 무언(無言)의 항의라고 하는 만큼 통행인처럼 걸어간다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국회 정 문에 도착하자 김의원 이외의 다른 국회의원 3명은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김의원은 잠시 기도를 하고 싶다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 다.

    “일본인 마음속의 독선이 무섭다”
    이것은 국회 경비담당자들에게는 중대한 일이었습니다. 경찰도 철수 를 요구해 현장은 긴박감이 돌았습니다.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는 것 입니다. 3시간쯤 지났습니다. 교섭 끝에 의원 회관 앞이라면 괜찮다 는 결론을 내리고(원래 이것도 법률로는 인정되지 않습니다만), 그 곳으로 이동해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의원 회관 앞은 국민들 의 시위장소로 여러 집회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걱정이 되었지 만 고베(神戶)에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겨 서둘러 한밤중에 도쿄에 돌 아온 뒤 김의원과 새벽 2시까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항상 냉정했습니다. 게다가 자신의 행위가 불러올 정치적 영향 을 생각해 말을 아꼈습니다. 침묵은 일본인 스스로 연좌농성의 의미 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뜻하고, 단식행동은 이웃 나라 국민이 얼 마나 분노하고 있는지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연좌농성 이후 다시 한번 교과서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 와 우리 정치가들이 해온 일 등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교과서는 먼저 도저히 합 격할 수 없는 ‘한국합병’이나 ‘강제노동’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위안부’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위안부 존재를 무시한 것인지,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기를 회피한 것 인지 아직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정부가 검정과정에서 137항목의 수 정을 요구하자 항의도 하지 않고, 아주 쉽게 이를 받아들여 자신들 의 교과서를 합격시켰습니다.

    그들이 의도하는 이번 교과서는 실은 내용보다는 어떻게 해서든지 교과서를 만든다는 것, 사회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목표를 두 고 있습니다. 나중에 이를 디딤돌로 이용해 장대한 국민운동을 일으 켜 내용을 조금씩 바꿔간다는 전술입니다. 교과서 판매라는 상업적 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이런 수단을 취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이것이 팔리지 않으면 회사는 도산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는 이미 7개의 교과서 회사가 있고 점유율을 나눠 갖고 있습니다. 거기에 여덟 번 째 회사가 끼여들어가도 돈을 벌 리가 없습니다. 그들은 교과서와는 별도로 2권의 방대한 서적 ‘국민의 역사’ ‘국민의 도덕’을 출판 하고 전국에 뿌려왔습니다. 이 모임이 출간한 ‘교과서 문제 핸드북 ’ 등도 얼마나 균형이 잡히지 않았는지, 종교관계 서적으로 생각할 정도입니다. 이 모임은 이제 채택에 힘을 쏟으며 교육위원회에 압력 을 넣기 위해 먼저 지방의회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교과서 채택에 중립적이어야 하는 위원회를 설득해 모임 교과서를 채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일본인 마음속의 독선이 무섭다”
    이는 모두 합법적으로 진행한 것입니다. 그것은 이 교과서 채택은 정당하고 국가로서도 절차상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김의원의 이 번 행동제기는 바로 이 점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 기에는 합법적으로 보이는 것, 그 자체가 큰 허점이라는 것을 합법 적으로 반대할 수 있는 방법을 잃어버린 일본 정치가에게, 국민에 게, 몸을 손상시켜서라도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인 것입니 다. 우리 일본인의 마음속에 스며 있는 독선적-배타적인 생각은 역 사인식의 상대성을 이용해 비판의 눈을 가리고, 근린조항을 무시하 며, 내정 간섭론이나 언론의 자유를 내세워 무시해 왔습니다. 그러 면서 정부의 대폭적인 수정에 응해 역사 교과서를 합격시켰습니다. 내정 간섭 등이라고 주장하는 뻔뻔스러움과 수정을 아주 간단히 받 아들이는 절조가 없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무섭다고 생각합니다.

    동아시아의 일각에 사는 일본은 이웃 나라, 특히 한국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3년 전부터 ‘일-한 기독의원 연맹’을 결성해 교류해 왔습니다. 결성 이유는 아직 소원한 일-한 관계를 진정한 신뢰에 근거한 관계로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진정한 교류를 이루어 나가고 신뢰감을 얻기 위해서는 기독교의 원리인 화 해를 키워드로 해서 기독의원들끼리 일-한 관계를 다시 생각하자는 것입니다.

    신과 인간의 거리가 멀어진 것은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 수는 신과 인간과의 중개자로 죄를 사해 주고, 사람이 처음으로 신 과 화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화해는 일방적인 사죄가 아니라 원 칙적으로 양쪽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상호이 해는 그것을 통해 성립하는 것입니다. 김의원과 나는 크리스천이 아 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형식적인 교류는 있었겠지요. 그러 나 그것은 단지 국익이나 사익을 얻기 위한 가면(假面)의 교류였을 것입니다.

    “일본인 마음속의 독선이 무섭다”
    저는 한국의 크리스천 국회의원이 결성한 ‘국가조찬기도회’에 처 음으로 출석해 봤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무거워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식민지의 자식이었기 때문입 니다. 부친이 조선총독부에 근무했기 때문에 나는 조선에서 태어났 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만주로 옮겨 거기에서 일본 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이런 이유로 한국행은 무거운 짐이었습니다.

    어쨌든 중개자인 예수를 믿고 한국에 가서 교류를 시작하자고 마음 먹었습니다. 김의원의 부친은 일본에 강제연행되어 귀에 장애를 입 고 귀국하셨다고 합니다. 그 때문에 김의원의 부친은 가난 속에서도 결코 일본인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러나 김의원은 저의 사죄를 받아주셨고,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죄의 사면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김의원의 외로운 단식농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김의원은 4 월16일 단식농성을 중단했으나 도이 류이치중의원이 본지에 기고한 시점에는 농성중이었음-편집자). 오늘은 예수의 수난일입니다. 그는 예수의 수난과 가장 친근한 형태로, 십자가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습니다. 그의 신앙, 그의 정치가로서의 감성은 더욱 빛나고 있습 니다. 그는 지금도 변함없는 민중에 대한 애정을 보이면서 앉아 있 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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