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4

2001.03.08

영혼 울리는 ‘참 소리꾼’

  • <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authodox@orgio.net >

    입력2005-02-15 16: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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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혼 울리는 ‘참 소리꾼’
    1996년 6월의 서울대 대강당, 63년 만에 대중음악 검열 철폐를 기념하는 제1회 자유 공연이 열렸을 때, 3일 공연 중 첫날의 무대를 나는 아직 기억한다. 당시 연출을 맡은 나는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젊은 기획 스태프의 갸웃거리는 표정을 애써 무시하며 당시로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장사익과 임동창을 초청했다. 윤도현밴드와 강산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과 그 공연의 주인공 정태춘-박은옥 부부, 그리고 안치환과 양희은.

    입추의 여지없이 객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은 정태춘-박은옥 부부의 차례가 끝나고 난 뒤 무대에 덩그라니 그랜드 피아노 한 대만으로 등장한 장사익과 임동창 커플을 낯설게 맞이했다. 그도 그럴 것이 록 밴드의 사운드가 난무하는 가운데 두루마기를 입은 중년의 가객이 그 넓은 대극장 무대 중앙에 섰으니 이상할 만도 하지 않은가.

    콘솔에 자리한 나는 저도 모르게 손바닥에 땀이 고였다. 썰렁하면 어쩌지? 그러나 무려 10분이 넘는 ‘하늘 가는 길’이 마악 끝났을 때, 대극장은 바늘이 떨어져도 들릴 정도로 순간적인 정적이 감돌았고 약 1초 후 지붕을 들썩이는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다. 그것은 노래가 끝나면 나오는 의례적인 응답이 아니라 충일한 감동만이 빚어낼 수 있는 그런 환호였고 박수였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아쉽게도 이 두 사람은 첫 앨범을 마지막으로 결별했지만 이들의 공연과 음반에서는 여전히 ‘진짜 가객’만이 형성할 수 있는 예술혼의 기백이 느껴진다. 이제 지천명(知天命)을 넘긴 소리꾼 장사익은 지난 2000년 늦가을에 세번째 앨범을 발표했고 세종문화회관에서의 큰 공연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의 지음(知音)인 피아니스트 임동창과 함께하지 못했던 두번째 앨범에서는 다소 난맥을 보였지만 ‘허허바다’를 앞세운 이번 신작을 통해 그는 기타리스트 김광석과 트럼펫의 달인 최선배 등과 함께 그만의 자유롭고 대범한 음악적 발상들을 너무나 천연덕스럽고도 자연스럽게 뱉어낸다. 장사익은 ‘소리’가 실종되고 ‘음향’만이 난무하는 이 소돔의 아수라장에서 대중음악과 전통음악, 동양과 서양 사이로 어지러이 그어진 모든 경계들을 허물고 우리로부터 유배되었던 참소리의 근원을 일깨워 준다.



    그는 곡을 쓰지만 스스로 작곡가라 하지 않으며, 훌륭한 무대에서 관객들을 매료시키지만 스스로 ‘뒤풀이 가수’라 낮추고,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아 왔지만 그저 ‘풍류인’에 불과하다고 웃어 넘긴다. 나는 그의 무대와 음반에서 제스처를 제거해 버린 자유와, 이마의 주름살을 단숨에 지워 버리는 젊음을 본다.

    그리고 지금도 어느 산속에 홀로 박혀 우리의 대표적인 아악 ‘수제천’을 바탕으로 필생의 대곡을 피아노로 완성하고 있을 임동창의 용맹한 타건을 떠올려 본다. 서로가 다른 길을 가고 있지만 이 두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만들어 가고 있는 음악의 오솔길이야말로 기만과 협잡으로 가득찬 우리의 시대가 경배해야 할 대상이 아닐까. 물론 이 기인들은 ‘됐시유…’하고 가볍게 손사래를 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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