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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국 ‘그리운 얼굴 찾기’ 무료캠페인 두번째 사연

25년 恨 녹아내린 큰딸의 반가운 목소리

팔순 박복덕할머니 미네아 폴리스 거주 김화수씨 찾아… 5월이나 9월 중 방한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25년 恨 녹아내린 큰딸의 반가운 목소리

25년 恨 녹아내린 큰딸의 반가운 목소리
만약 ‘주간동아’를 보지 않았더라면…. 보았다 한들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편지를 쓰지 않았다면…. 김수용씨(56)는 2월20일 미국에 있는 누님 김화수씨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고 먼저 아내 박연옥씨(52)에게 몇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주간동아’ 정기구독자인 김씨는 한국-미국 ‘그리운 얼굴 찾기’ 캠페인 기사를 읽었지만 정말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기에 사연을 보낼 생각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아내 박씨는 “누님을 찾아준다는 편지 한 장 못 쓰느냐”고 채근하더니 아예 편지 초안을 잡아와 내밀었다.



죽은 줄 알았는데… 기쁨의 눈물

25년 恨 녹아내린 큰딸의 반가운 목소리
아내의 성화에 못이기는 체 김씨는 편지를 고쳐 써서 ‘주간동아’ 앞으로 팩스를 넣었다. 편지를 보낸 뒤 ‘주간동아’로부터 사연을 접수했다는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감감무소식이자 “역시 안 되는 일”이라며 포기했다.



미국 시카고의 강효흔씨로부터 김화수씨를 찾았다는 소식(이메일)이 도착한 것은 2월20일 아침. 먼저 강효흔씨가 알려준 번호로 미국 미네아폴리스에 살고 있는 김화수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화수씨는 일터에서 막 돌아온 듯 피곤한 목소리였지만 서울로부터의 전화에 반가워하며 가족이 살고 있는 성남이 어디쯤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군인인 남편을 따라 독일로 갔다가 78년 다시 미국 미네소타로 돌아왔는데 그때 강도를 만나 가방을 뺏기는 바람에 한국 연락처를 잃어버렸어요. 생각나는 주소로 수차례 편지를 띄웠지만 반송돼 왔고 그 후로는 연락할 길이 없었습니다.”

화수씨가 미국으로 떠난 뒤 서울 사당동에 살았던 수용씨네도 성남으로 이사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화수씨는 미국으로 가자마자 남편과 이혼하고 4남매(딸 1, 아들 3)를 혼자 키우며 힘겹게 사느라 25년 동안 한국에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큰딸 캐럴이 얼마 전 아들을 낳았고 마이클, 데롤드, 래리 주니어 모두 학교를 졸업한 뒤 직장에 다니고 있어 김씨의 고생도 끝난 듯했다.

일단 김화수씨와 전화통화에 성공하고 다시 이 소식을 성남 김씨 댁에 알리기 위해 전화를 걸자 어머니 박복덕씨(81)가 받았다. 박할머니는 “큰딸 김화수씨를 찾았다”는 기자의 말을 얼른 알아듣지 못했다. 연로한 어머니가 큰딸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부풀었다가 크게 낙심할까봐 자식들은 ‘주간동아’에 사연을 보낸 것 자체를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박할머니는 액자에 소중하게 넣어두었던 큰딸의 사진이 누렇게 바래는 것을 보고 무슨 변고가 생긴 모양이라고 애태웠는데, 드디어 큰딸을 찾았다는 소식이 믿어지지 않는 듯 “정말 화수가 살아있느냐”고 거듭 물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 첫 통화가 이루어지는 날. 미국의 화수씨가 일터에서 돌아오는 새벽 3~5시에 맞춰 한국시간 저녁 6시께 김수용씨 집으로 향했다. 김씨의 작은 집은 첫 통화를 위해 몰려든 형제들로 잔칫집 분이기였다. 장녀인 김화수씨 밑으로 재순(60·딸) 수용(56·이하 아들) 희진(53) 선희(48) 광희(46) 권희씨(43) 등 7남매의 다복한 집안이지만, 화수씨와 연락이 끊긴 뒤 명절 때만 되면 오히려 집안 분위기가 우울해졌다고 한다. 온식구가 모여 앉아 귀를 쫑긋 세운 가운데 박할머니와 화수씨의 첫 통화.

“이게 어쩐 일이냐. 꿈만 같다. 내가 살았을 때 한번 오니라. 나 얼마 못 산다.”(박할머니) 수화기를 넘겨받은 둘째 재순씨는 “죽은 줄 알았는데…”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엉엉 울기만 했고, 희진씨는 “옛날에 제일 속 많이 썩인 동생 희진이야, 기억해?”라며 여유를 부렸다. 모두의 관심은 화수씨의 건강이었다. 미국으로 가기 전 콩팥이 안 좋아 수술을 받고 아물지도 않은 몸으로 비행기에 올랐던 터였다. 미국에서 한 번 더 수술받았지만 이제 건강하다는 화수씨의 말에 안심하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돌아가며 한 차례씩 전화를 한 뒤 수화기는 다시 수용씨에게 건내졌다. 화수씨의 큰딸 캐럴과의 짧은 통화. 캐럴은 초등학교 1학년까지 한국에서 다닌 덕분에 떠듬떠듬하는 한국말로 이모부에게 “보고 싶어”라는 인사를 전했다. 김화수씨는 5월이나 9월 중 휴가를 내서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눈물로 보낸 25년의 한이 한순간 씻겨 내려간 하루였다.



주간동아 2001.03.08 274호 (p54~55)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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