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4

2001.03.08

‘한국’을 수출브랜드 No.1으로

국가 마케팅은 무한경쟁의 승부수 … 한국의 이미지 자체가 상품

  • 입력2005-02-15 13: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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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수출브랜드 No.1으로
    일본에서 발행되는 월간지 ‘니케이 트렌디’는 지난해 12월호 특집기사에서 ‘2000년 30대 히트상품’을 선정하면서 21위에 ‘한국’을 선정했다. 한국 이외에 이 잡지가 선정한 나머지 히트상품은 대부분 일본 내에서 소비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어린이용 완구, 기능성 화장품, 식기 세척기 같은 물품들이었다. 생활용품이나 식품이 아닌 히트상품은 고작해야 쿠바를 무대로 한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영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정도였다.

    이 잡지는 ‘한국’을 히트상품으로 선정하면서, 한국에 대한 여행자가 급증하며 친근감이 높아져 음악 영화 등의 각 분야에서 한국 붐이 조성되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120만달러라는 금액으로 일본에 수출된 영화 ‘쉬리’는 일본 관객을 상대로도 빅히트했다. 한-일 양국 가수가 함께 참여한 그룹 Y2K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양국 청소년팬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런 문화상품들이 한국을 히트상품으로 만드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불고 있는 ‘한류’(韓流) 열풍도 중국에서 ‘한국산 제품’이 아닌 ‘한국’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히트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미 ‘신신인류’(新新人類)로 불리는 중국의 신세대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베이징 시내 대형공원에는 한국의 인기그룹 ‘H.O.T’의 머리모양을 그대로 흉내낸 베이징 청소년들이 자주 눈에 띄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대중가요 그룹이 ‘전지훈련차’ 한국을 방문해 한국 인기그룹의 댄스를 그대로 배워가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의 소비자들, 그것도 ‘밑 터진 지갑’이라고 불리는 10대 소비자들이 ‘한국’이라는 ‘상품’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브랜드 자체가 해외에서 히트상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 열풍은 의식적인 캠페인을 벌인 것도, 정부에서 주도한 것도 아니다. 단지 국내 히트상품들이 자연스레 해외 시장을 파고들어가 ‘한국’이라는 히트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든든한 원군(援軍) 역할을 한 사례들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한국’이 글로벌 경쟁의 무대에서 승부하는 길은 바로 이러한 국가 마케팅(Marketing of the nation)밖에는 없다. 게다가 최근 들어 북한이 개방정책으로 선회하면서 구미 국가들을 포함해 한반도 전체에 쏠리는 외부의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북한을 포함한 대중국, 대러시아 진출의 교두보로서 ‘한국’이 갖는 세계적 상품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호기(好機)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 비즈니스를 하고자 하는 기업인에게는 한국이 금융과 물류 인프라를 제공하는 전초기지의 역할을 할 수 있고 나아가서 대북한, 대중국 진출의 ‘코디네이션 센터’(coordination center)의 기능을 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상품이 품질만 좋다고 팔려나가는 것이 아니듯, 한국 역시 이러한 지경학적 이점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아무런 상승 효과도 누릴 수 없다. 시장 상황에 맞는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이러한 ‘대외적’ 마케팅을 담당할 만한 준비와 인력은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형편. 한국산 상품에서도 그렇고 한국이라는 상품에서도 마찬가지다

    산업연구원 심영섭 선임연구위원은 “한국 상품은 아직도 싸구려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 여성들이 왜 일본차를 선호하고 있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산 소비재 상품이 진출할 때는 ‘맥도널드’ 브랜드를 앞세우고 일본이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앞세워 자국 상품을 홍보하면 훨씬 잘 먹혀든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 상품이 디지털 시대에 맞는 고급 이미지를 갖고 세계 시장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제품 자체의 경쟁력만 갖고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 이러한 역할은 기업의 몫보다는 정부의 몫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다.

    정부는 오는 4월 재정경제부와 외교통상부 한국은행 등 각 부처들이 참여하는 한국경제 해외설명회를 미국 뉴욕 등 4대 도시에서 연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해외경제설명회는 98년 9월 외환위기 상황에서 ‘코리아포럼’을 개최한 이후 3년 만에 처음 열리는 것이다. 특히 이번 설명회는 외자유치 등 현안이 걸려 있지 않은 ‘논딜 로드쇼’(Nondeal Roadshow)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상시적으로 한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들의 신뢰를 제고할 수 있는 마케팅 전략에 착수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산업자원부 역시 지난해 11월 무역투자진흥대책회의 당시 이러한 국가 마케팅 개념을 내놓은 바 있다. 이른바 ‘새로운 한국’ 프로젝트(TNK·Totally New Korea Project). 한국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를 획기적으로 제고시켜 수출상품의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수출국의 국가 이미지가 높아지면 수출상품 부가가치의 10% 정도를 제고시키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80년대 우리 자동차 메이커들이 해외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를 굳이 숨겨야만 잘 팔렸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러한 국가 이미지 마케팅에 적극적이다. 제품 자체의 품질 개선이나 비용 절감을 하지 않고도 국가 이미지 개선만으로 엄청난 ‘플러스 알파’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무역전쟁의 현장에서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 삼성의 한 관계자는 “해외시장에서 ‘삼성’ 브랜드를 잘 아는 바이어들이 이것이 한국 기업임을 설명하면 아직도 눈이 휘둥그레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전했다.

    최근 여론조사기관인 갤럽과 마케팅회사인 보젤사가 19개국 2만명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국별 소비자 상품인지도’에서는 단연 일본제품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독일이 2위, 미국이 3위를 차지한 이 조사에서 한국 제품은 11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국가 이미지를 좌우하는 한국 대표상품의 이미지 역시 선진국들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세계 1위의 경쟁력을 가진 제품 숫자는 모두 55개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669개, 미국은 618개, 중국도 306개나 된다. 산자부는 TNK 프로젝트를 통해 이 숫자를 오는 2003년까지 70개, 2005년까지는 100개까지 늘려가겠다는 구상이다.

    ‘TNK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산자부 무역정책과 관계자는 “부품산업의 아웃소싱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일본의 구매 담당자들을 초청해 한국의 부품산업 현장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국내에서 열리는 각종 컨벤션 회의에 참석하는 해외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국가 IR’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단체나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도 구상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가마케팅 전략은 이처럼 일부 부처 차원에서만 실시할 수 있는 성질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과거 산자부 등 일부 부처에서 ‘개방형 신통상국가’ 모델 등을 내놓았을 때에도 구체적 시행 방안에 이르면 대부분 산자부에서 추진하기에는 벅찬 것들이어서 구호만으로 그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경우 총리 산하에 ‘국가이미지위원회’를 만들어 전세계를 상대로 ‘프랑스 이미지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작게는 해외 공관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의 명함에까지 프랑스 이미지 캠페인 로고를 새겨 홍보하고 있다. 지금은 국무부로 통합되었지만 세계 각국에 퍼져 있는 미국공보원(USIA)도 미국 외교정책 수립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USIA의 해외홍보 전략은 지금도 홍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하나의 교과서로 회자되고 있다.

    해외홍보원 파견 19개국 불과 … 국가적 지혜 모아야

    우리나라 역시 과거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홍보협의회 형식의 범정부적 기구가 설치된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 유명무실한 상태가 유지되다가 정부조직 간소화를 위한 각종 위원회 축소 여론에 밀려 그나마 명맥이 끊겨 버렸다. 현재 국정홍보처 산하 해외홍보원이 이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예산은 연간 115억원에 불과하고 인력도 부족한 형편이다. 정부 차원의 해외홍보 요원이 나가 있는 나라는 모두 19개국에 불과하다. 그나마 해외문화원 등 해외홍보 유관 부서의 소속 기관마저 국정홍보처와 문화관광부로 나뉘어 혼선을 빚는 경우도 있다. 현재 10개소의 해외문화원 중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도쿄, 파리의 한국문화원은 문화관광부 산하 조직이고 나머지 6개는 국정홍보처 소속이다.

    해외 홍보 전략과 관련해서도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국정홍보처 산하 기구가 해외 언론 홍보를 맡다 보니 미디어와의 관계만 신경쓸 뿐 경제, 문화상품, 언론 등을 포괄하는 종합적 이미지 홍보 전략이 없다는 것이다. 민관의 유기적 협조체계가 구축되는 사례 역시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구매사업을 둘러싼 로비의혹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나 프랑스 등 수출국가들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을 앞세워 범국가적 마케팅 활동에 나서고 있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숙명여대 안보섭 교수(언론학)는 “정부조직 내에 국가 이미지 홍보에 관한 전문가가 없는 만큼 국제적 홍보대행사를 고용하는 것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70∼80년대의 해외 홍보와 국가 이미지 전략은 주로 체제홍보에 치중해왔고 90년대 이후에도 전통문화와 민주화 등 정치문화적 의제에 머물러 왔다. 그러나 이제는 외환위기 극복을 통해 형성된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경제 통상 홍보 쪽으로 돌리는 데 국가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최근 국가이미지 제고에 효자노릇을 했다고 정부가 자평하는 김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이나 아셈(ASEM) 개최 등은 양념에 불과할 뿐이다. 적절한 양념을 갖고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요리사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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