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3

2001.03.01

갈팡질팡 재경부 … ‘냉탕’ ‘온탕’ 오간다

증시 부양 등 경기 회복 노력에도 효과는 별로 … 섣부른 낙관론 발표했다 빈축 사기도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5-02-14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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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팡질팡 재경부 … ‘냉탕’ ‘온탕’ 오간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누구의 머리 위에 이글… 탁!” 순간 ‘내 나라 내 겨레’를 노래하던 녹음기가 멈춰서고 곧바로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희망의 노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습니다. 지나친 좌절과 두려움이 경제를 더 어렵게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감입니다. 자신감이 경제를 바꿉니다. 경제는 마음입니다.”

    지난 2월3일부터 텔레비전 화면을 타고 안방에 방영되고 있는 국정홍보처의 정부광고 중 한 장면이다. 장면은 곧바로 건전지를 갈아끼우고 ‘VOLUME’이라는 글자 대신 ‘자신감’이라고 쓰여 있는 단추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는 것으로 바뀐다. 그러자 이내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는 노래가사가 힘차게 울려퍼지고 한국 경제는 가파른 상승 그래프를 그려나가는 것으로 광고는 끝을 맺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성우는 ‘경제는 마음입니다’라고 비장하게 선언한다.

    과연 경제는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정부 역시 자신감만 회복하고 마음만 바꾸면 침체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소비 지출이 늘어서 경기가 회복되리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경기 침체의 원인을 필요 이상의 소비 심리 위축에서 찾고 있다는 증거는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갈팡질팡 재경부 … ‘냉탕’ ‘온탕’ 오간다
    얼마 전 ‘2분기 경제회복론’을 주장한 자료를 내놓으면서 촉발되었던 정부와 민간 경제학자들 간의 경기논쟁도 사실은 재경부의 이런 인식 때문에 벌어진 셈. 재경부는 실물 지표 등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데도 ‘2분기부터 경기가 회복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는 자료를 내놓는 바람에 많은 경제전문가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진념 부총리가 이 자료를 만든 관계자들을 사후에 질책했다는 후문이지만 시장에 낙관적 시나리오를 제시함으로써 소비 심리를 진작해 보겠다는 재경부의 히든카드는 노출되고 만 셈이 되어버렸다. 이 자료가 나오기 불과 사흘 전만 해도 진념 부총리는 미국 경제의 2% 이하 경착륙을 전제로 우리 경제 성장률이 당초 예상과 달리 4%대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면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까지 수립해 놓았다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언론들도 미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에 대해 우왕좌왕하는 보도로 일관함으로써 혼란을 부추겼다. 미국 경제조사전문기관인 컨퍼런스 보드가 ‘미국 경제가 이미 회복 국면에 들어갔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자 너도나도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경기낙관론에 대한 정책당국의 안이함을 꼬집던 때와는 상반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또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상원 증언에서 ‘미국 경제의 둔화세가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고 발언한 것을 놓고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지표나 경기 내용은 달라진 것이 없는데 1, 2월 두 달 사이 경기 판단은 몇 번씩이나 뒤집힌 것이다. 이렇게 정부와 언론이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하는 사이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은 싸늘하게 나타났다.

    그나마 긍정적인 신호 중 하나는 자금시장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가 실제로 시행되면서 자금시장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고 채권시장 마비 현상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그동안 거래되지 않던 BBB급 회사채가 유통되기 시작한 것을 들어 자금시장의 선순환 구조를 예견하고 있다. 실제 지난 1월 국내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규모는 2조4000억원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 이를 한 달 전인 지난해 12월의 1조7000억원대와 비교하더라도 40% 이상 증가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똑같은 ‘현상’을 두고도 그 ‘배경’에 대해서는 정부와 민간 전문가들 사이에 적지 않은 견해차가 존재한다. 상명대 백웅기 교수(경제학)는 “회사채가 유통되기 시작한 것은 기업의 내용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단순히 투자 이익을 노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자금시장 흐름만을 보고 경기 회복에 낙관론을 내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자금시장의 청신호가 기업 실적 증대나 소비 투자 증가로 이어질 조짐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우리나라 가계의 부채가 거시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국내 최초로 분석했다. 연구 결과 지난해 가계 부문에서 이자비용으로 지불한 금액은 모두 43조3000억원으로 가구당 307만원 수준. 한 가구당 소득의 12.7%를 부채 상환에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4.4%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이며 가계 부채가 높기로 유명한 미국의 13.7%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이다.

    갈팡질팡 재경부 … ‘냉탕’ ‘온탕’ 오간다
    이렇게 부채가 높은데다 주식시장이 깨어날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 보니 자산가격은 폭락하고 당연히 부채의 비중이 높아져 사람들은 부채에 대한 부담 때문에 소비를 꺼리게 된다는 결론이다. IMF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소비의 증가가 부채를 증가시키는 모습이 나타났지만 최근 들어서는 부채가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부담으로 오히려 소비를 급격히 줄이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가계 부채의 증가가 소비를 억제하고 경기 회복을 지연해 장기 불황으로 갈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로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이러한 소비 침체 요인을 무시한 채 단순히 경제 주체들의 소비 심리 위축에서 실물 경기 부진의 원인을 찾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인식이라는 지적이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선임연구원은 “소비 심리 위축의 가장 큰 요인은 무엇보다도 지난해 8, 9월의 국제유가 급등과 반도체 가격 하락 등 거시 분야의 충격에서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거시 분야의 악재들이 자금경색과 신용경색을 낳으면서 ‘제2위기론’으로 이어졌다는 것.

    한편 최근 경기논쟁을 놓고 조금 다른 분석을 내놓는 전문가들도 있다. 서강대 김준원 교수(경제학)는 “생산 측면에서 보면 매출은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증가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긍정적으로 해석하면’이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이런 현상을 두고 산업분야에서의 비용절감 효과 등 일종의 신경제적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김교수 역시 재경부에서 내세웠던 ‘저점통과론’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나타냈다.

    문제는 정부가 말로는 경기부양에 돌입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이 직접 증권사 사장들을 불러모은 자리에서 연기금 투입 방침을 밝히는 등 부양책 쪽으로 선회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많은 국민들은 정부가 내세우는 ‘제한적 경기 조절’과 ‘경기 부양’이 어떻게 다른 것인지에 대해 의아해하고 있다. ‘상시적 구조조정’이 곧 경기부양으로 돌아서겠다는 것인지도 헷갈려 한다. 게다가 재정의 70%를 조기 집행하면 그 결과가 2∼4개월의 시차를 두고 발생할 것이라는 정부 설명에도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 재정 조기 집행 방식의 부양책이야말로 과거 경기 사이클이 논란에 오를 때마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단골 메뉴에 다름 아니다. 상반기에 끌어다 쓰면 하반기 경기가 그만큼 위축될 것은 뻔한 사실. 결국 이러한 방식은 재정 규모 자체를 확대할 수 없는 이상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경기논쟁에서 벗어나고 소비심리를 진작하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에 드리워져 있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주는 방법밖에 없다. 이렇게 하면 우리 경제는 건전지를 갈아 끼우지 않아도 자연스레 상승 곡선을 그려갈 것이다. 경제는 ‘마음’이 아니라 ‘투명성’, 아니면 ‘예측가능성’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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