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0

2001.02.08

열려라! 사이버 세상

  • 입력2005-03-17 1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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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려라! 사이버 세상
    96년 일본에서 만들어진 세계 최초의 사이버 가수 다테 교코, 이듬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남자가수 아담, 98년에는 류시아와 사이다가 잇따라 탄생했다. 사이버 캐릭터는 연예인만 있는 게 아니다. 숙명여대의 가상 캐릭터 스노우(98년), 사이버 기자 한경제(98년)도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며 등장했다. 그러나 황상민 교수(연세대·발달심리학)의 ‘사이버공간에 또다른 내가 있다’를 읽으면서 비로소 그들이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졌음을 깨달을 만큼, 지난 1~2년 동안 사이버 캐릭터들은 잊혀 버렸다.

    10억여원의 엄청난 개발비를 투입해 탄생시킨 다테 교코의 웹사이트는 찾는 이가 없어 유령 사이트로 변해버렸고 팬클럽 홈페이지의 웹마스터는 끝내 “더 이상 업데이트하지 않겠다”는 고별사를 남겼다. 가장 나중에 출현한 사이다마저 지난해 2월 활동을 끝으로 새로운 뉴스가 업데이트되지 않고 있다. 사이버 캐릭터들이 미키마우스처럼 생명력을 갖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기획자들이 현실과 다른 사이버 공간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이버 캐릭터를 개발했기 때문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사람들은 가상의 캐릭터를 만들고 사회를 구성하며 마치 창조자가 된 듯한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런데 다테 교코나 아담과 같은 사이버 캐릭터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완벽한 존재여서 소비자들이 자신의 마음을 투사하고 전이할 여지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사생활이 모두 까발려 신비감이 전혀 없다는 점도 매력을 감소시킨 요인으로 작용했다.

    사람들은 수억원을 들여 정교하게 개발한 입체영상보다 레고블록처럼 끊임없이 새로운 형체를 만들어내는 행위 자체를 좋아한다. 자신의 모습을 닮은 캐릭터 ‘아바타’(avatar·힌두어로 화신이라는 뜻)가 성공을 거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분신을 만드는 데에서 나아가 디지털 인공생명을 키우고, 사이버 캐릭터들이 역할놀이를 펼치는 머드게임을 통해 생명을 자유자재로 만들고 죽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이런 놀이는 사이버 공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사이버 공간에 또다른 내가 있다’는 인터넷 세상이 만들어낸 사이버공간에서의 새로운 인간행동법칙과 원리를 소개한 책이다. 현실에서는 수줍고 얌전한 사람이 사이버 공간에서는 완전히 딴 사람처럼 행동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이 책에 답이 있다. 현실 공간과 사이버 공간에서 극단적인 대비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행동체증 현상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신고전파 경제학의 ‘한계수익체감’ 또는 ‘효용체감의 법칙’이 작용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선 의미가 없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오히려 하면 할수록 그 행동의 효용가치가 증가하는 ‘행동체증’ 현상이 나타난다. 중독성이 강한 전자우편이나 온라인 게임이 그 예다.



    황상민 교수는 ‘현실과 유사한 활동을 하기 위해, 또는 현실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일을 하기 위해 사이버 공간의 활동에 참여하려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즉 사이버 공간에서 인간의 심리적 특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분석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인 온라인 공간을 기획하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열려라! 사이버 세상
    황교수가 사이버 공간에서 펼쳐지는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인간의 심리적 특성을 재미있게 분석했다면, ‘사이버 문화’의 저자 피에르 레비 교수(퀘벡대·사회커뮤니케이션학)는 디지털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이 어떤 문화적 의미를 지니는지 개념적으로 접근한다.

    레비에 따르면 인터넷은 “말 그대로 초현실주의적인 의사소통의 장”이다. 이미 온라인 상으로 사상과 정보, 서비스가 교환되고 인간은 끊임없이 가상세계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머지않아 인류는 누구나 자신의 사이트를 갖고 몇 년 내에 일종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레비 교수의 주장 중 특징적인 것이 사이버 공간에서의 공동지적재산(Collective Intelligence)과 지식 공동체 구성이다. 그는 인터넷이라는 초현실적인 커뮤니케이션 공간을 통해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배제와 소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 시사평론가 플로리안 뢰처가 쓴 ‘거대기계지식’도 사이버 공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인터넷을 계몽주의 백과전서파가 이룩하지 못한 꿈을 이뤄줄 거대한 지식의 보고로 본다는 점에서 뢰처는 피에르 레비와 입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뢰처는 ‘거대기계지식’의 꿈을 가로막는 요소로 지적소유권 문제에 주목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같은 거대기업이 첨단기술과 지적소유권을 이용해 지식을 독점하려 하고 있다는 경고와 함께 이에 대항하는 활동으로 자유소프트웨어와 공개소스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을 빼놓고 미래사회를 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 현실에서 세 권의 책 모두 필독할 가치가 있는 사이버 공간에 대한 지침서다.

    사이버공간에 또다른 내가 있다/ 황상민 지음/ 김영사 펴냄/ 337쪽/ 1만900원

    사이버문화/ 피에르 레비 지음/ 김동윤 조준형 옮김/ 문예출판사 펴냄/ 347쪽/ 1만3000원

    거대기계지식/ 플로리안 뢰처 지음/ 박진희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372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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