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0

2001.02.08

노래로 환생한 통기타의 가객

  • 입력2005-03-17 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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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로 환생한 통기타의 가객
    한 명의 대중음악가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는 무엇일까. 최고의 음반판매량? 연말이면 방송사에서 너도나도 뽑는 이른바 가수왕? 엄연한 시장의 상품인 대중음악의 속성상 이와 같은 전리품이 매혹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동료, 후배 뮤지션들로부터 자신의 음악을 기리는 헌정(tribute) 앨범을 선사받는 것만큼 근사하고 가슴 뿌듯한 일이 있을까.

    지난 90년대 서구의 대중음악계에서 갖가지 헌정앨범이 봇물처럼 쏟아졌지만 한국에서 헌정앨범의 영예를 차지한 것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인데, 신중현과 산울림, 고(故)유재하가 그러하다. 이들이 우리의 음악사에 끼친 공헌은 이미 숱하게 인구에 회자됐거니와 지난 연말엔 역시 타계한 김현식과 김광석의 음악에 헌정하는 두 앨범이 발표돼 다시금 옷깃을 여미게 했다.

    그중에서 90년대 포크음악과 소극장 라이브 콘서트의 황태자였던 김광석의 헌정앨범은 각별하다. 1984년 한국 모던 포크의 비조 김민기가 결집했던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대학가 노래운동에서 ‘녹두꽃의 가수’로 비제도권 대중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고, 1988년에는 포크록 밴드 동물원의 리드 보컬리스트로 참여해 ‘거리에서’와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같은 서정성 짙은 명곡을 자신의 목소리로 소화했다.

    그리고 90년대의 개막에 즈음하여 솔로로 전향, 4장의 정규 앨범과 아직도 우리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2장의 ‘다시 부르기’시리즈를 남긴 채 서른 두 살의 젊은 나이로 불귀의 객이 됐다.

    비록 그가 김민기 정태춘 조동진 같은 불세출의 명장에 견줄 만한 뛰어난 싱어송라이터는 아니었지만, 그에겐 달랑 통기타 한대만으로 대극장의 관객들을 뭉클하게 만드는 가객의 마법이 있었다.



    박학기 안치환 권진원, 이소라 김건모 윤도현 동물원 여행스케치 등 그의 동료 후배들이 참여한 이 앨범의 특색은 여느 헌정 음반처럼 한 곡씩 맡아 새롭게 녹음하지 않고 마치 나탈리 콜이 자신의 아버지인 고(故)냇킹 콜과 같이 불렀던 ‘unforgettable’처럼 대개의 트랙을 이미 망자가 된 김광석의 오리지널 목소리와 어울려 같이 부르는 효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는 데 있다. 이 기법을 너무 방만하게 채용하고 있는 것이 이 앨범의 약점이기도 하지만, 자기만 잘나면 된다는 풍조가 만연한 작금의 상황에서 음악가 공동체 정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포크 음악의 이념을 가장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의 향기는 참으로 애틋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헌정앨범은 시장에서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다만 당시 톱 프로듀서였던 김현철이 전곡을 장악하여 자칫 실종되기 쉬운 헌정앨범의 음악적 통일성을 구현했던 유재하 헌정앨범만이 50만장 넘게 판매됐을 뿐이다.

    ‘이등병의 편지’가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주제가로 사용되면서 다시 일고 있는 김광석 추모 열기 속에 발표된 소중한 이 앨범으로 통기타의 가객이 좀더 오래 우리의 뇌리 속에 각인되는 것은, 쉬이 끓고 쉬이 사라지는 이윤동기의 복마전에서 참으로 행복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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