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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여! 남편에게 항복하라”

美 로라 도일의 ‘항복한 아내’ 서점가 강타… ‘아내 순종은 행복한 가정의 조건’ 메시지

“아내여! 남편에게 항복하라”

“아내여! 남편에게 항복하라”
도발적인 제목의 책 한 권이 정초부터 미국 서점가에 심상치 않은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책의 제목은 ‘항복한 아내’(The Surrendered Wife)로 ‘열정, 신뢰를 잃지 않고 남편과 평화롭게 사는 방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지은이는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서른 두 살의 카피라이터 로라 도일로 물론 여자다.

‘항복한 아내’는 지난해 12월 출간된 이래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종합 판매순위 20, 30위 권을 오르내리고 있다. 대중소설이나 돈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실용서적도 아닌, 결혼생활에 대한 말랑말랑한 지침서치고는 상당한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항복한 아내’가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모든 아내들이여, 행복한 가정생활을 원한다면 당신의 남편에게 순종하라. 아니, 아예 남편에게 항복! 하고 선언해 버려라”는 것이다. 책에는 19세기에나 통했을 법한 고리타분한 주장이 때로는 따분하게, 또 때로는 꽤 설득력 있게 그려져 있다.

도일은 10년 간에 걸친 자신의 결혼생활을 바탕으로 ‘항복한 아내’를 썼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도일 부부가 일상에서 겪었던 갖가지 경험들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도일은 스물 두 살에 컴퓨터 엔지니어인 현재의 남편 존과 결혼했다. 열렬한 연애 끝에 이루어진 결혼인 만큼 첫 2, 3 년은 더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사랑의 불길이 시들고 나자 그들의 결혼생활은 삐걱대며 잡음을 내기 시작했다. 도일은 점차 자신의 결혼생활이 불행해져가고 있음을 자각했고 그 이유를 심각하게 따져보았다. 그녀가 도달한 결론은 자신이 남편 존을 지나치게 ‘컨트롤’하려고 했다는 점이었다. 존은 항상 잔소리를 하는 아내가 불만이었고 둘의 갈등은 점점 팽팽해져 갔다.

도일은 어느 순간, 남편에게 항복해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서 도일은 자신의 ‘항복’(Surrender)이 ‘굴종’(Submission)과는 다른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다. 강제적이고 체념적인 굴종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아내들아, 너희 남편에게 순종하라’의 의미와 비슷한 자발적 순종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결혼 생활 그대로 담아

“아내여! 남편에게 항복하라”
도일이 제시한 항복의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남편에게 지시하기를 완전히 포기하고 무엇이든 남편이 하는 대로 놔둔다. 중요한 일의 결정은 반드시 남편에게 맡긴다. 때로 남편이 네다섯 시간씩 TV만 보고 있더라도 그대로 둔다 등등.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책 속에 소개된 구체적인 사례를 보자. 첫째, 남편이 운전할 때는 입을 꼭 다물고(심지어는 눈까지 감고!)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 아내가 “저쪽 길로 가면 더 빠른데”라든가 “왜 이렇게 급정거를 하는 거예요?”와 같은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남편은 목적지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둘째, 남편의 옷가지를 사지 않는다. 대부분의 남편들은 속옷까지 아내가 사준 것으로만 입지만 아내가 이러한 행동을 그만두면 남편은 자신의 취향대로 옷을 입게끔 될 것이다.

“남편의 행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대신 입을 다물고 있자니 처음에는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왼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에게 모든 결정을 맡길수록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끔 옛날 생각이 날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모든 상황을 내가 컨트롤하는 것과 행복한 결혼생활, 둘 중에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지?’ 그러자 저절로 답이 나왔다. 나는 서서히 ‘항복’이라는 단어에 길들여졌다….”

책 속에서 도일은 자신의 주장을 사교댄스의 원리에 대입하기도 한다.

“뛰어난 댄서들을 보라. 예외없이 한 사람이 리드하고 다른 한 사람이 따라간다. 물론 두 사람의 댄서는 똑같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나는 지금껏 여성이 리드하는 댄스 커플을 한 번도 본 일이 없다.”

도일이 남편을 좌지우지하기를 포기하자 두 사람의 관계는 ‘마술처럼’ 변화하기 시작했다. 존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되었고 연애시절의 부드럽고 따뜻한 관계가 되살아났다. 도일은 다시금 사랑스러운 아내가 된 것이다. 그 대가로 가정에서의 주도권을 포기해야 했지만 가정의 평화를 찾고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라면 뭐 그리 대수랴. 거기에 더해 남편에게 항복한 아내들은 항복하기 전보다 용돈도 많아지고 성생활까지 만족스러워진다!

“아내여! 남편에게 항복하라”
당연하게도 ‘항복한 아내’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여성운동가인 주디스 실즈는 이 책이 전하는 “행복해지기 위해 모든 권리를 포기하라”라는 식의 극단적인 메시지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결혼생활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된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보십니까? 이러한 방식으로는 아내뿐만이 아니라 남편까지도 불행해지고 말 것입니다.”

실즈는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도일의 주장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페미니스트들의 입장에 비하면 ‘항복한 아내’에 대한 일반 독자들의 평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을 안내하는 책”과 같은 독설에서부터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책”이라는 찬사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남성들이 오히려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 반면 결혼생활을 오래한 주부들일수록 이 책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도일의 조언이 실제 결혼생활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볼 수 있다.

아무튼 눈에 띄는 제목 덕분인지, 아니면 엉뚱한 내용 덕인지 ‘항복한 아내’는 일단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데에는 성공했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언뜻 시대착오적이고 고리타분해 보인다. 그러나 미국사회의 내면을 알고 나면 도일의 주장이 그리 새로운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 부부관계 상담서의 스테디셀러로 꼽히는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은 책 역시 “남자는 여자보다 공격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보수주의적 사고를 전파하고 있다. 다만 도일의 책이 보다 도발적이고 상업적인 냄새가 나는 제목과 홍보전략을 사용했을 뿐이다.

출근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운동화를 신고 도심을 달리거나 결혼보다 일을 중요시하는 직장 여성, 대기업의 CEO로 스카우트되는 커리어 우먼 등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미국 여성들의 모습은 사실 몇몇 대도시에서 일하는 소수의 고학력 여성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 여성들 삶은 그런 화려함과는 동떨어져 있다. 평범한 미국의 여성들은 결혼과 함께 서너 명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데에 헌신하며 가정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서 일생을 보내는 길을 택한다.

잠재된 보수성향에 호소 ‘적중’

그런 면에서 볼 때 ‘항복한 아내’의 등장은 결코 페미니즘의 방향전환도, 보수주의의 새삼스러운 등장도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뉴프런티어 정신 뒤에 숨겨진 미국인들의 끈질긴 보수 성향, 특히 결혼한 여성에 대한 이중적인 사고방식을 드러내고 있다.

남자들이 기혼, 미혼을 가리지 않고 미스터(Mr.)로 통하는 데 반해 여성은 결혼 여부에 따라 미스와 미세스로 구분하는 것을 거부하며 1970년대 시작된 미즈(Ms)운동이 최근 들어 퇴조하고 있는 것도 미국사회의 보수성향을 드러내는 좋은 예다. 이유는 미즈가 남성들에게 도전인 이미지를 주고 여성에게는 방어적인 느낌을 준다는 것.

미즈운동을 이끈 70년대의 대표적인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지난해 66세의 황혼결혼을 해서 세상을 놀라게 했다. “결혼은 여성을 반쪽짜리 인생으로 전락시킨다”며 결혼제도를 반대했던 것과는 180도 달라진 태도였다. 그는 자신의 결혼에 대해 변명처럼 “페미니즘은 인생의 순간마다 옳은 것을 선택하는 능력”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결국 살아 보니 ‘결혼’이 최선이었다는 말일까.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퍼스트레이디는 매력 만점의 재클린 케네디나 능력 있는 변호사 힐러리 클린턴이 아닌, 흰 머리의 할머니 바버라 부시라고 한다. 또 미국인들은 전직 교사 출신으로 결혼 후 남편을 내조하는 데에만 전념해 온 전업주부 로라 부시가 새로운 퍼스트레이디로 등장한 데에 은근한 만족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항상 세련되고 빈틈없는 모습을 보여온 힐러리에 비하면 약간은 촌스러운 텍사스 아낙네 로라에게서는 순종적인 아내의 모습이 역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1월20일 성대하게 치러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취임식에는 텍사스의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가 새로운 패션으로 등장했다.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는 도전과 진취성을 상징하는 것일까. 천만의 말씀! 그 속에 숨어 있는 진정한 메시지는 공화당의 전통적 슬로건인 ‘강력한 국가와 안정된 중산층 가정’이다. 거대한 나라 미국을 지탱하는 가장 큰 가치관, 그것은 역시 청교도 정신에 뿌리박은 보수성이다.





주간동아 2001.02.08 270호 (p6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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