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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숨쉴 ‘바보산수의 美學’

운보 김기창의 작품세계… 동-서양화 넘나들며 독보적 화풍 구축

영원히 숨쉴 ‘바보산수의 美學’

영원히 숨쉴 ‘바보산수의 美學’
설을 하루 앞둔 1월23일, 청주 외곽의 한적한 시골에 자리잡은 ‘운보의 집’에서 김기창 화백이 별세했다는 소식은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운보 김기창은 한국화단의 거목이자, 세계 미술계에서도 인정받는 거장이다. 파리의 유네스코 본부에는 피카소, 헨리 무어, 살바도르 달리의 걸작들과 나란히 운보 김기창의 ‘무락도’(無樂圖)가 상설 전시되어 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와 동시대를 살면서 그의 일상적인 삶과 예술적인 성과물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고 즐거움이었다. 그가 떠나고 없는 빈자리는 그래서 더 크고 허전하다.

전 국립박물관장 최순우씨의 말대로 김기창은 “의지의 작가요 정열의 뭉치”였다. 베토벤과 고흐는 말년에 청력을 잃었지만 그는 불과 여섯 살 때 청력을 잃었다. 그 후 먹과의 대화를 통해 수십 년 동안 예술작업을 해오면서 그는 또 하나의 귀를 얻었다. 그 귀는 위대한 예술의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운보만의 귀였다.

‘전통의 현대적 접목’ 위대한 화가

영원히 숨쉴 ‘바보산수의 美學’
운보의 예술적인 표현은 어느 하나로 집약할 수 없으리만치 다채롭다. 2만∼3만 점에 이르는 방대한 작업량과 화조화, 영모화, 신선도, 미인도, 문인화, 수묵산수, 성화, 반추상, 추상, 민속화, 청록산수, 바보산수, 문자도 등을 넘나드는 광범위한 작품세계 속에서 그는 한국 현대미술사의 빛나는 성취를 이뤄냈다. 소박하고 힘찬 화풍을 특징으로 동양화와 서양화의 기법을 혼합함으로써 독보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그를 두고 뉴욕문화센터의 학예관이었던 알프레도 발렌테는 “손과 영혼으로 이룩할 수 있는 최고의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고 말했다.



운보의 끊임없는 모색과 실험은 한국화를 고루한 형식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궤도에 올려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국화의 현대화된 모습은 50년대 초반 ‘구멍가게’ ‘타작마당’ ‘복덕방’ 등의 작품에서 드러나고, 그 후에도 해체와 종합을 시도해 50년대 후반에는 ‘군마’ ‘투우’ 시리즈를 통해 폭발하는 내면의 에너지와 거대한 힘의 소용돌이를 응결해 ‘힘’의 미학을 선보였다.

70년대 초에 나타난 ‘바보산수’ ‘바보화조’는 조선시대의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전통 계승의 가장 큰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일련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해학 넘치는 내용과 치기만만한 건강한 미의식은 우리 고유의 소박한 미의 전형을 현대적으로 재창출함으로써 그의 예술세계 중 절정을 이룬다. 경희대 최병식 교수(미술평론가)는 “운보의 ‘바보산수’에는 평소 그가 꿈꾸어오던 일탈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으며, 우리 현대미술사에서 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전통의 현대적 접목’이라는 가치가 살아 있다”고 말한다.

불멸의 예술혼을 불태우는 한편 따스한 정감과 인정으로 세상을 대했던 그를 두고 지인들은 ‘천연기념물적인 바보같은 인간’으로 기억한다. 이제 그의 너털웃음은 볼 수 없지만 바보산수의 화폭에서는 여전히 힘찬 생명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

영원히 숨쉴 ‘바보산수의 美學’




주간동아 2001.02.08 270호 (p6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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