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0

2001.02.08

김정일 상하이 방문… 中 환대, 美 떨떠름

中 개혁-개방정책 지지 시사… ‘北·中 단결로 미국 패권주의에 대처’ 뜻도 담겨

  • 입력2005-03-16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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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 상하이 방문… 中 환대, 美 떨떠름
    지난해 5월 중국 방문을 통해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그로부터 8개월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했다. 특히 이번에 눈길을 끈 것은 그가 ‘세계를 향한 중국대륙의 창(窓)’인 상하이(上海)를 방문했다는 점이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 대변인에 따르면 김위원장은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후 중국, 특히 상하이(上海)에서 일어난 거대한 변화들은 중국 공산당이 추구해온 개혁-개방 정책들이 정확했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김정일은 그동안 중국 지도부의 상하이 방문 권유에도 불구하고 ‘우리식 사회주의’를 주장하며 이를 거부해왔다. 따라서 김위원장의 상하이 방문은 중국 지도부의 개혁-개방 노선에 대한 지지와 함께 북한도 중국 방식을 참고해 비슷한 노선을 걷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번 방중에서 김위원장이 다시 한번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피력하고 중국이 이에 적극 동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김정일 위원장이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직전에 중국을 방문한 데는 북-중이 단결해 미국의 패권주의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도 담고 있다. 다만 주방짜오(朱邦造) 외교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해 “공동의 관심사와 국제문제를 논의했다”고만 밝혔다. 미국측에 경고는 암시하되 자극하지는 않겠다는 신중한 태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주대변인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장쩌민 주석과 김위원장이 미국의 NMD(국가미사일방어체제) 추진 계획에 어떤 입장을 취했는가”라는 질문이 이어지자 “내가 이미 조금 전에 이야기했다. 양국의 관심사와 중대문제에 대해 견해를 나누었다”고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도 “NMD와 TMD(전역미사일방어체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분명하다. 중국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유리하면 지지하지만, 불리하면 반대한다. 한국도 NMD 추진에 반대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 NMD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김위원장의 중국 방문이 중국의 요구냐, 북한의 요구냐는 ‘미묘한 질문’에 대해서도 “김정일 위원장의 비공식 중국 방문과 그 보도 문제에 관해서는 중국과 북한이 공동으로 상의했다”며 직답을 피해갔다. 물론 양국 정상회담이 공동의 이익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만, 누가 먼저 방중을 제의했는지에 따라 그 의미는 상당히 달라진다. 현재로서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의중이 실린 것이라는 분석이 더 힘을 얻고 있다.



    조-중(朝中) 관계는 흔히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비유한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이니 중국에게 북한의 존재는 외세와의 무력 충돌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오염으로부터도 막아주는 ‘완충지역’인 것이다. 주룽지 총리 등 중국 지도부가 상하이에까지 가서 김위원장을 극진하게 환대한 것도 그와 같은 북한의 역할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북미관계에서도 중국은 중요한 핵심 변수다. 지난 99년 8월 미국 국방-안보 분야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랜드(LAND) 연구소는 북한의 미래와 관련한 ‘한반도 통일 4개 시나리오’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랜드연구소는 △점진적 통합을 통한 평화적 통일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 △무력충돌을 통한 통일 △외부 개입에 의한 남북 불균형 지속으로 요약되는 이 네 가지 시나리오 중에서 경제난의 악화로 북한의 현 정권이 통제력을 상실하고 당 및 군대 내분 등으로 결국 체제 붕괴를 초래하는 두번째의 ‘붕괴 시나리오’를 가장 유력한 것으로 꼽았었다.

    그러나 그 후에 전개된 김정일의 전격적인 중국 방문 및 조-중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지난 1월 김정일의 두번째 중국 방문 및 조-중 정상회담 등 일련의 개혁-개방 움직임에 비추어 볼 때 현재로서는 오히려 네번째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는 실정이다.

    ‘외부 개입에 의한 남북 불균형 지속’ 시나리오의 핵심 요소는 중국의 개입이다. 이 시나리오는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으며 중국이 개입을 결정할 경우의 수를 다음 세가지로 상정하고 있다. 즉 △북한이 정치-경제적 지원을 조건으로 친중(親中) 의존 용의를 표명할 경우 △국경지역 불안이 중국의 장기적 국익을 위협한다고 판단할 경우 △한-미의 일방적 대북조처가 중국의 국익에 반한다고 판단할 경우이다.

    한편 랜드 시나리오에 대한 당시 통일부 입장은 “현재 북한이 경제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군부를 중심으로 통제력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조기에 붕괴할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었다. 통일부는 이와 관련한 국감 답변에서 “북한 체제의 특성상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붕괴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북한의 여러 가지 변화 가능성에 대비하는 동시에 안보를 튼튼히 하는 바탕 위에서 화해와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 변화를 유도하는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최근 리처드 아미티지 미국 국무부 부장관 내정자가 미국을 방문한 민주당 한화갑 의원 일행에게 ‘햇볕정책’(sunshine policy)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한국 정부에 건의한 것은 다소 의외다. ‘동아일보’(1월29일자)는 아미티지 내정자의 발언을 이렇게 전했다.

    “김대중 정부가 지금까지 남북관계에 정권의 운명을 걸고 있어서 (햇볕정책이) 실패했을 때의 부담이 크다. 그래서 북한의 김국방위원장에 의해 움직이는 측면이 있고 이는 미국 일본에도 영향을 준다. 부시행정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반대하지 않지만 한-미-일 3국이 대북관계에서 ‘더 나은 지위’(a better position)에 서게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상호주의(reciprocity)가 있어야 하고 북한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positive sign)이 나와야 한다.”

    물론 이와 같은 발언은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는 ‘햇볕정책’ 대신에 ‘대북 포용정책’이나 ‘대북 화해협력정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도외시한 것이다. 정부는 이미 99년부터 용어의 혼선과 오해를 막기 위해 ‘포용정책’을 정부의 대북정책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또 설령 그의 발언이 사실이더라도 용어 변경을 제기한 것이 대북정책의 변경을 요구한 것으로 해석되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한화갑 의원에 따르면 아미티지 발언의 기조는 ‘대북 포용정책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아미티지의 발언은 내정간섭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한미간 마찰을 예고한다. 그는 80년대 레이건 정권 때부터 공화당의 한반도 정책 형성에 깊이 관여해 왔으며 특히 김영삼 정부 때에는 한미 간에 정례화된 을지포커스렌스(UFL) 훈련의 일환으로 전개한 이른바 폴-밀 게임(정치-군사연습)의 미국측 고정 멤버였다. 북한의 도발에 의한 한-미 연합군의 반격 및 북진을 전제로 38선 이북 점령지역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를 한미 국방안보 전문가들이 토론하는 이 전후(戰後)단계 연습에서 아미티지와 월포위치 등 미국측 인사들은 한국측 장성 등 참가자들과 심각하게 대립했었다.

    대립의 핵심은 수복-점령지역에 대한 관할권과 청천강 이북의 ‘북방 완충지역’ 인정 문제였다. 즉 한국측은 수복지역에 대한 계엄령 선포 및 한국 정부의 통치를 주장한 반면 미국측은 한미연합사 점령지역에 대한 군정(軍政)을 주장했다. 또 한국측은 압록강 이남까지의 완전 수복을 주장한 반면 미국은 중국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청천강 이남지역까지만의 점령을 주장했다. 비록 전쟁 시나리오에 따른 도상연습이기는 했지만 최근의 아미티지 발언은 이처럼 국익을 우선하는 미국 한반도 정책의 연장선에 있다. 또 이는 미국이 한반도에 다소 긴장을 조성하더라도 북한에 요구할 것은 요구하겠다는 태도로 나올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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