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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공동체 문화의 싹을 키우자

공동체 문화의 싹을 키우자

공동체 문화의 싹을 키우자
이른바 ‘자동차 대중화’(motorization) 시대가 질주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굴러다니는 차량이 1000만 대를 넘어선다고 하니, 자동차에 대한 높은 의존도는 비단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전반에 걸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보다 편리하게 살기 위해 발명한 자동차가 교통사고라든지 환경오염 등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은 별로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요사이 우리나라 자동차 문화는 한국사회의 병리현상 하나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씁쓸하기 짝이 없다. 자동차가 ‘끼리끼리’ 문화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여느 외국에 비해 우리 나라에는 ‘멤버십’(?) 자동차가 유난히 많아 보인다. 개인이나 가족 단위에서 주로 사용하는 자가용도 아니고, 익명의 다중(多衆)이 보편적으로 이용하는 대중교통 수단도 아닌 이러한 종류의 자동차는 대개 특정한 승객의 제한적 목적에 봉사한다. 예컨대 느지막한 아침에는 동네 유치원이나 유아 영어학원 차량들이 아파트 정문 앞에 도열해 있고, 방과 후 무렵이 되면 미술 학원, 웅변 학원, 태권도 학원, 피아노 학원, 속셈 학원 따위들이 운영하는 미니 버스가 주택가를 분주히 드나든다. 어디 이뿐인가. 해질녘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 무슨 식당, 무슨 가든, 혹은 무슨 회관이라고 이름붙인 승합차들이 직장인을 태우고 회사와 음식점 사이를 자주 왕복한다. 그리고 늦은 밤 중-고등학교 교문 앞은 각종 입시학원과 독서실 차량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주말이면 종교단체가 소유한 대형 버스들이 제 몫의 신자들을 찾아 거리를 달린다.

생각해 보면 이 얼마나 간편하고 편안한 제도인가. 직접 차를 운전해야 한다는 부담도 없이, 그리고 서로 잘 아는 사람끼리의 프라이버시도 보장받으며 목적지 사이를 신속하게 이동한다는 것은 커다란 매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멤버십’ 자동차 이용 문화가 부지불식간에 우리 사회의 보편적 공동체 의식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좁은 범위의 폐쇄적 또는 배타적 인간 관계를 초월하여 익명의 보편적 타인들과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적 기회가 그만큼 제약받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것은 혈연이나 지연, 학연 등 각종 연고주의의 현대 교통문명적 외연에 해당한다.

역사사회학자 넬슨 (B. Nelson)에 의하면 근대사회의 중요한 특징은 ‘윤리적 보편주의’의 확립에 있다. 예컨대 자본주의는 연줄이나 안면, 친분 등을 차별하지 않는 수평적 시장 공동체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 경제의 행위자들은 원칙적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타인이 되어야 하고, 경제 외적 친소(親疎) 관계는 시장상황의 중립성을 왜곡한다.

끼리끼리’ 부족주의적 형제애로는 미래 없어



민주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한 사회의 집단적 가치를 생산하고 집합적 의사를 결정하는 과정이 상호 등가(等價)의 이방인들에 의한 ‘수(數)의 정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 공동체란 패거리 문화나 연고망, 혹은 수직적 줄서기와 쉽게 공존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사회는 ‘끼리끼리’ 자동차 문화까지 기승을 부리며 보편적 근대 공동체의 형성이 심각하게 제약당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나라는 ‘보편적 타인주의’(universal otherhood)를 한번도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채 아직도 ‘부족주의적 형제애’(tribal brotherhood)에 갇혀 있는 셈이다. 그런데 보다 심각한 문제는 바로 이와 같은 ‘근대성 없는 근대화’가 미래조차 기약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요즘처럼 어릴 때부터 대중교통과 격리되는 추세에 익명의 넓고 큰 세상에 수없이 존재하는 무상(無償)한 타인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나고 사귈 것인가. 당장에 편안한 자가용이나 당장에 편리한 멤버십 자동차가 결코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언제까지나 끼리끼리 산다는 것은 소중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우선 아이들에게서부터 보편적 공동체 문화의 싹을 키우자.



주간동아 2001.01.11 267호 (p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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