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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술기행 | 안동 소주

카리스마 느껴지는 ‘將帥의 술’

카리스마 느껴지는 ‘將帥의 술’

카리스마 느껴지는 ‘將帥의 술’
제비원 석불은 안동의 수문장이다. 고려 때에 만들어졌는데, 민속신앙과 결부되어 있어, 성주굿을 할 때면 성주(집을 지키는 신령)님의 본향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나는 안동에 가면 반드시 이 석불과 눈을 맞추고 온다. 바쁠 때는 길가에서 한번 올려다보고 오지만, 보통은 절 쪽으로 올라가 석불을 내려다본다. 가까이서 보는 제비원 석불의 옆모습은 황홀하다. 미간에서 콧등을 타고 뻗어 내린 날렵한 사선과 눈에서 빰을 타고 턱 끝에 맺히는 유려한 곡선은 숨막히게 아름답다.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그 얼굴선을 오래 보고 있으면 마음이 텅 비워지고 명상은 저절로 이뤄진다. 이쯤 되면 석불의 이마와 사모(紗帽)에 핀 돌이끼는 꽃이나 진배없다. 안동의 축복이다.

이 제비원을 상호로 쓴 소주가 있다.

원래 제비원은 조선시대 말을 바꿔 타는 마방과 주막이 있던 동네다. 그래서 원(院)이라는 글자가 붙었다. 주막의 이미지를 딴 것인지 석불의 이미지를 딴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지만, 참사(정 9품 벼슬)를 지낸 권태연씨가 1920년대에 안동 남문동에서 제비원 소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권씨는 자연균으로 만든 전통 누룩 대신 배양균을 이식하는 일본식 흑국을 사용하여 대량 생산했다. 전통 방식을 변용한 것이긴 하지만, 그때부터 제비원 소주는 안동 소주의 상징이 되었다.

그나마도 1964년 12월에 곡류 사용 금지령으로 사라져버렸는데, 1990년에 들어서 비로소 부활하게 되었다. 그 첫 주자가 경북 무형문화재로 지정받는 조옥화씨다. 그녀는 1920년대 이래로 맥이 끊긴, 전통 누룩으로 빚은 안동 소주를 재현해냈다. 안동 소주는 안동 지방에서 전해내려오는 소주라는 의미인데, 우리 소주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맨 윗자리에 그 안동 소주가 나온다.



우리 소주는 몽골로부터 전래되었다.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하면서 아랍으로부터 알코올 증류법을 배웠고, 그것을 전파하여 중국과 고려의 소주 시대를 열었다. 당시 고려에서는 몽골군의 기지가 있던 개성, 안동, 제주를 중심으로 소주가 많이 빚어졌다. 그 역사적 흔적은 술 이름에도 남아 있다. 안동에서는 소주를 내리고 난 술지게미를 아래기라고 부른다. 전라도 여수나 보성 지방에서는 소주를 아래기라 부르고, 개성에서는 아락주라고 부르고, 제주도에서는 아랭주라고 부른다. 모두가 아랍어인 아락(araq)에서 유래된 말이다. 영어로는 아락(arak)으로 표기하는데, 감미로운 액체라는 뜻으로 증류주를 의미한다.

카리스마 느껴지는 ‘將帥의 술’
현재 안동 소주를 빚는 공장은 세 곳이 있다. 조옥화씨가 빚는 민속주 안동 소주(054-858-4541)가 있고, 안동 웅부영농조합법인에서 빚는 안동 소주(054-856-6900)가 있고, 금복주에서 빚는 안동 소주(053-580-3171)가 있다. 금복주에서는 앞서 말한 제비원 소주의 상표권을 이어받아서 빚어 내고 있다. 상품이란 모름지기 경쟁을 하고 봐야 한다. 민속주 시장에서 한 종의 술이 세 군데 이상의 회사에서 생산되는 것은 진도 홍주와 안동 소주뿐이다. 그만큼 치열한 경쟁력이 안동 소주를 한국을 대표할 만한 술로 키워냈다. 물론 안동 소주의 옛 명성이 베푼 혜택도 있긴 하지만….

안동시 수상동에 있는 민속주 안동 소주 제조장을 찾아가 보았다. 제조장은 관공서를 연상케 하는 너른 마당을 거느린 반듯한 2층 건물이었다. 전국의 어떤 민속주 제조장보다 규모가 크면서도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조옥화씨(80)는 마침 안동시에서 하는 행사의 음식상을 준비하느라 출타중이었다. 경주 교동법주의 기능보유자 배영신씨가 경주 음식을 잘 만드는 상징적인 존재라면, 조옥화씨는 안동 음식을 잘 만드는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녀는 1999년에 영국 여왕이 안동 하회마을을 찾았을 때 생일상을 손수 차리기도 했다.

그의 아들인 김연박씨가 사업장을 안내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누룩 잡는 방이 있었다. 문을 여니 후끈한 열기 속에 발효되는 둥근 누룩이 가득 쌓여 있었다. 복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술밥을 찌는 작업장이 나왔다. 커다란 솥에서 퍼낸 고두밥 때문에 김이 자욱했다. 안쪽에는 증류기가 있었다. 2층 높이의 증류기를 살피며 계단을 내려오니 아래층은 박물관과 연결되어 있었다.

카리스마 느껴지는 ‘將帥의 술’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안동 소주 박물관에는 전통 음식이 660점이나 소개되어 있다. 소주에 관한 유물도 200점이 있고, 안동 소주를 직접 빚어볼 수 있는 체험장도 있었다. 사무실로 돌아온 김연박씨는 그의 아내이자 안동 소주 제조 기능보유자 후보인 배경화씨가 쓴 ‘안동 소주의 전래 과정에 관한 문헌적 고찰’이라는 논문을 꺼내 보였다. 어머니가 구전으로 손끝으로 배운 기술을, 며느리가 학술적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조옥화씨는 친정에서 술 내리는 법을 배웠다. 그녀가 배운 음식 솜씨 안에 술 빚는 요령이 곁다리로 끼여 있었다. 우리 문화에서 술은 음식의 한 가지일 뿐이다. 조옥화씨는 시집와서도 명절이나 제사 때 술을 꾸준히 빚은 덕에 오늘날 민속주 기능 보유자가 될 수 있었다.

카리스마 느껴지는 ‘將帥의 술’
민속주 안동 소주는 밀누룩과 멥쌀과 물로 만든다. 재료는 지극히 간단하다. 제조 방법은 우선 멥쌀 고두밥을 찐다. 이를 잘 식힌 뒤 누룩과 버무려서 항아리에 담고 물을 잡는다. 술독에서 15일 정도 숙성시키면 노리끼리하면서도 감칠맛나는 술이 된다. 증류하기 전 단계의 술이 되는데 이를 전술이라고 부른다. 전술을 증류기에 넣고 가열하여 45도 술을 받아낸다. 그러면 안동 소주가 된다.

안동 소주의 향은 방금 뿌린 향수처럼 강렬하다. 필자가 여태껏 맛본 민속주 중에서 가장 깊고 진한 향을 풍겼다. 안동 소주는 기질도 강하고 성격도 캉캉해 보인다. 장수가 전장터에 나가기 직전 비장하게 들이키는 한잔 술 같다. 서늘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제비원 석불의 얼굴 윤곽처럼.

45도 높은 도수인데, 혀끝에 단맛이 감돌 뿐 쓴맛은 없다. 입안에 머금고 있을 만한데, 혓바닥과 입천장이 소금에 절여진 듯 얼얼하다. 카아! 술 한 잔에 속이 타고, 세상 모든 게 탄다. 술 약한 사람은 속이 놀라 딸꾹질을 하기도 한다. 이건 온화한 안동 선비의 술이 아니다. 칼 다루는 무인의 술이다. 몽골족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민속주 안동 소주의 힘은 무엇일까. 단순한 재료에도 불구하고, 어디에서 그런 강렬함이 발산되는 것일까. 그 비결은 독특한 누룩에 있어 보인다. 민속주를 만드는 이들의 가장 큰 고충거리는 누룩이다. 누룩 만들기는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많이 걸리기에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아무 때나 만들 수도 없다. 더운 여름에 만들기 시작해 추석 찬바람이 돌 때 끝이 난다. 아니면 그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옛날 어른들도 누룩을 만들어두면 술은 다 만든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마치 고추장이나 된장을 담고 난 주부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번거로움 때문에 대개는 곡자 공장에서 누룩을 사서 쓴다. 하지만 조옥화씨는 누룩을 손수 띄워 쓴다. 원반 모양의 누룩은 둘레가 두텁고 안쪽이 얇아 힘차게 생겼다. 이 누룩이 민속주 안동 소주의 향을 지배한다.

안동 웅부영농조합법인의 안동 소주와 금복주의 제비원 소주는 다음에 맛보기로 하자. 그들의 경쟁이 안동 소주를 풍성하게 하고 술꾼들을 행복케 하리라.



주간동아 2001.01.11 267호 (p9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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