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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 베르테르

‘사랑의 열병’ 가득한 서정적 무대

‘사랑의 열병’ 가득한 서정적 무대

‘사랑의 열병’ 가득한 서정적 무대
계절 탓일까. 올 가을에는 소설‘구고하꽃 향기‘에서 연속극‘가을동화‘에 이르기까지 슬픈 사랑 얘기가 유난히 눈에 띄더니 이제 괴테 원작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까지 무대에 올랐다. 고선웅 각색, 김광보 연출의 무지컬 ‘베르테르‘(11월10일~12월3일 연강홀)는 서간체 소설의 백미라고 일컬어지는 괴테의 원작에 34개의 곡을 붙여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접할 수 있는 멜로드라마로 탈바꿈했다.

1774년 발표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사랑의 열병으로 고뇌하는 한 젊은이의 편지를 통해 봉건 사회 규범에 저항하고 절대적 자유를 회구하던 질풍노도 시대(1760년대 중반부터 1780년대 말까지 감정과 감각, 자유의 가치를 강조하던 시대)의 세계관과 감성을 대변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원작이 지닌 폴넓은 스펙트럼을 ‘사랑‘이라는 하나의 초점으로 모았다.

스토리라인과 등장인물의 구성 역시 서정적 뮤지컬에 맞게 단순화 했다. 시골 마을 무도회에서 만난 아름다운 처녀 롯데(이혜경 분)에게 첫눈에 반해 가슴앓이하는 감성적 예술혼의 소유자 베르테르(서영주 분), 이성과 현실로 무장한 롯데의 약혼자 알베르트(김법래 분). 금지된 사랑의 유혹과 약혼자 사이에서 방황하고 괴로워하는 롯데. 이들 세 주역이 주도하는 장면 사이사이에 주막집 여주인과 베르테르의 하인 카인즈, 그리고 동료들의 코러스가 사랑의 질곡을 각자의 형식으로 변주해 나간다.

음악은 모두 라이브 연주로 진행되었다. 사실 뮤지컬 공연은 모두 그래야만 마땅하겠지만 녹음과 믹싱으로 처리해온 우리 뮤지컬 관행에 비추어 볼 때 반가운 시도가 아닐 수 없다. 무대 왼쪽에 오케스트라 박스를 마련한 5인조 실내악단은 바이올린과 피아노, 첼로, 오보에, 신시사이저로 구성되어 또 하나의 살아 있는 무대를 선사한다. 서곡 ‘금단의 꽃‘이 라이트모티브를 이루며 엮어나간 발라드 풍의 선율은 요란한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차별되는 서정성을 지니고 있다. 가끔 지나친 센티멘탈리즘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음악 안에서 드라마를 살려 이야기를 끌어내는 기량이 엿보인다.

공연 전 4일간의 시연회를 미리 거친 덕분에 연주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었고 주역들의 뛰어난 가창력과 분명한 가사전달도 돋보였다. 그러나 베르테르의 감미롭고 부드러운 창법은 광적인 사랑에 불타는 성격을 표현하기에는 극적 힘이 약했다. 오히려 개성있는 눈빛과 자신감있는 동작으로 무대를 휘어잡은 알베르트가 상대역 이상의 매력을 발산해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 들기도.



배우들의 동작과 연기의 범주는 비교적 제한적이었고, 지나치리만치 단순하게 설정된 인물구도는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감도 있다. 특히 베르테르와 롯데의 관계는 일방적인 짝사랑으로 묘사되어 싱겁게 느껴진다. 베르테르의 사랑과 정열에 부채질하는 것은 다름아닌 롯데이다. 그의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뜨거운 교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흰 드레스에 붉은 레이스 가운으로 처리된 롯데의 의상은 흰 눈처럼 깨끗하고 흑장미처럼 고혹적인 롯데의 양면적 이미지를 시사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연기로 연결되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당황스럽게 피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베르테르의 팔에 쓰러지는 롯데의 내적 갈등도, 소나기 대리는 창가에서 뜨거운 눈물로 시어를 나누는 극적인 만남도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다. 사랑의 뮤지컬이라면 기본이라 할 사랑의 듀엣이 눈에 띄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아쉬웠다.

비교적 평이한 스타일로 갔던 연출라인은 마지막 장면세어 숨어 있던 개성을 발휘한다. 우울한 블루로 조명된 어둠 속을 길게 가르는 다리, 그 다리의 난간에 서있는 베르테르의 실루엤, 서서히 오른손을 올리고 이어 울리는 총성, 그 소리와 함께 번지는 핏빛노을 속에서의 긴 침묵. 한 폭의 낭만적 풍경화를 방불케 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죽음은 포기가 아니라 또 다른 자유일 수 있다고.



주간동아 2000.11.23 260호 (p9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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