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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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복원, 환경은 뒷전

사전 환경영향평가 무시한 채 노면 확보 공사…‘생태계 보고’ DMZ 너무 쉽게 처리

  • 입력2005-05-25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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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의선 복원, 환경은 뒷전
    지난 9월 정부는 경의선 철도 복원 및 4차선 포장도로 공사 기공식을 열고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경의선 철도는 광복 전 일제시대부터 있던 길이고, 포장도로는 국도 1호선의 개설공사로 기존 통일대교에서부터 비무장지대 장단까지의 구간을 가리킨다.

    경의선 포장도로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동장리의 군사분계선에서 시작해 군내면 점원리에서 현재의 1번 국도와 만난다. 군사분계선에서 남북도로가 연결되는 것이다. 공사길이는 5.5km 4차선 포장도로. 공사비는 현재 예정된 것만 총 960억원으로 이중 순수공사비가 850억원이고 나머지 110억원은 주민 보상비다.

    이 공사는 지난 9월 착공해 오는 2001년 9월 완공 예정으로 1년이 조금 못되는 360일을 공기로 잡고 있다. 청와대의 당초 구상은 경의선 포장도로를 8차선으로 건설하겠다는 것이었으나 국방부가 군사작전상의 어려움을 지적하여 4차선으로 줄였다. 그러나 이번 공사는 4차선이지만 도로 폭이 46m나 돼 장차 8차선으로 만들기 위한 전제하에 공사를 하고 있다.

    반목과 대결의 상징이었던 비무장지대 한가운데가 철길과 포장도로로 뚫린다. 획기적이고 전환적인 이 사건에 감격하지 않는 사람이 없겠지만 경의선 철도 복원과 포장도로 개설은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두달 내 환경영향평가 끝내겠다’



    현재 철도와 포장도로 공사가 진행중인 파주시 장단면과 군내면 일대를 둘러보면 공사가 상당히 빠르게 진척되고 있다. 그러나 설계를 완성하지 않고 먼저 착공에 들어간 상태에서 환경영향평가까지 하라고 하니 형식적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9월말 환경영향평가단이 구성돼 1차 생태계조사차 현장을 방문한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놀랐다. 공사 속도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이다. 1차 조사 후 10일 간격으로 현장에 다시 갔을 때 공사는 더욱 진전돼 있었다. 비무장지대 철책 앞 방어벽인 콘크리트 구조물도 폭파 후 해체돼 있었다. 현장을 확인해 보니 철도노선은 거의 윤곽을 잡았고 포장도로도 숲과 흙을 파헤쳐 노면을 확보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철도와 도로가 교차하는 비무장지대 철책 앞은 마치 야전 상황을 방불케 한다. 군용 중장비와 트럭이 쉴새 없이 오가고 수백명의 군병력이 지뢰 제거와 벌목 등을 전개하고 있다. 이들은 숲과 초지를 갈아엎고 그 위에 평평한 철도와 포장도로의 윤곽을 마련하고 있다.

    경의선 포장도로 공사일정은 무리하게 잡혀 있다는 게 도로건설 분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기존 선로를 복원하는 철도와 달리 포장도로는 신규 개설 공사이기 때문에 1년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 심지어 공사를 관리`-`감독하는 건교부 관계자조차 “우리도 죽겠다. 이런 도로건설 공사는 처음이다. 애초 포장도로 노선이 청와대에서 결정되었다. 노선 선정이나 1년이라는 공사기간 모두 위에서 결정된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집행뿐이다. 이 정도 구간에 4차선 포장도로를 개설하려면 최소 3년은 필요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 관계자는 또 “예산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통일부와 협의중이다.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결정사항을 건교부가 수정 변경하기는 어렵다. 이번 사안에 대해 건교부는 정말 힘이 없다. 그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경의선 포장도로 공사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환경영향평가는 졸속에 가깝게 처리되고 있다. 철도든 포장도로든 환경영향평가서가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 초안이 10월 말에 작성되고 11월 중순경 공청회가 열리면 12월 초순이나 되어서야 최종 환경영향평가서가 나온다. 두 달도 못 되는 짧은 기간에 조사와 검토를 모두 마치겠다는 것이다. 설계와 마찬가지로 환경영향평가도 착공 이후인 9월 말에서야 업체를 선정해 부랴부랴 진행하고 있다. 경의선 포장도로는 시공을 현대와 삼성, 대우가 맡았고 설계와 환경영향평가는 ㈜유신코퍼레이션이, 설계에서 구조물 분야는 ㈜도화엔지니어링이 담당한다.

    경의선 공사의 환경영향평가는 다른 개발사업이나 토목공사와는 그 의미가 다르다. 비무장지대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유례 없는 생태계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현행법까지 무시하며 환경영향평가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법규에도 어긋나는 환경영향평가는 환경부 관계자의 지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국방상의 군사기밀을 요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환경영향평가대상에 포함되는 사업은 국책사업이든 국가기간사업이든 반드시 사전에 환경영향평가를 거쳐야 한다. 공사를 진행하면서 환경영향을 평가할 수는 없다. 이는 명백한 위법이다. 만약 법을 어겼을 때는 환경부 장관이 공사 중지 요청을 해야 하며 관리감독 기관은 공사중지 명령을 내려야 한다. 위법 사실에 대해서는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한다.”

    경의선 공사가 진행되는 민통선과 비무장지대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불과 2.5km 떨어져 있다. 국민들에게는 제3땅굴로 잘 알려진 곳이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도라산 전망대 남쪽 바로 아래를 끼고 도는 구간이 경의선 철도와 포장도로의 공사 노선이다. 이 일대의 비무장지대 안에는 북쪽에서 시작돼 남쪽으로 흐르는 임진강 지류인 사천강이 지나간다. 이곳은 대형습지를 형성하고 있다. 경의선 현장을 다녀온 많은 학자들은 이 습지를 주목하고 있다. 우포늪이나 주남저수지에 견줄 만한 습지라는 것이다. 경의선 환경영향평가단의 단장을 맡은 서울대 김귀곤 교수는 이 습지에 대해 “국내에서 보기 힘든 대규모 습지로 연구가치가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사천강 습지는 철새들의 낙원

    지금까지 이 습지는 비무장지대 안에 있어 외부에 거의 공개되지 않았다. 습지 안에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는지 최근에야 조금 밝혀진 정도다. 도라산 전망대에서 사천강 지류의 습지를 확인한 교원대 김수일 교수는 “이곳은 습지 곳곳에서 지하수가 용출돼 겨울에도 물이 얼지 않아 두루미를 비롯한 철새들이 겨울나기를 한다. 겨울철에 조사해 보면 이 습지의 진면목을 제대로 알 수 있다”며 정밀 조사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 밖에도 비무장지대 안에 녹슬어 있는 옛 증기기관차의 잔해에 환경부에서 지정한 법적 보호동물인 구렁이가 서식하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첫날 조사에서 확인한 서울대 환경대학원의 심재한 박사는 “비무장지대의 생태계는 연구 가치가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정밀 조사를 통해 종합적인 비무장지대의 보전과 관리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경의선 환경영향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학자적 양심에 입각해 이번 공사가 환경에 미칠 영향이 어떠한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할 것이다. 필요하다면 공사기간의 연장은 물론이고 노선변경까지도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의선 환경영향평가는 워낙 중대한 사안이라 환경부가 직접 나서서 추천한 전문가들로 평가단을 구성했다. 하지만 건설 일정에 쫓기는 건교부나 업체는 무리하게 환경영향평가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경의선 철도는 정상적인 환경영향평가 대신 생태조사에 국한하고 있다. 그조차도 포장도로에서 진행중인 조사결과를 베끼다시피 해서 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려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경의선을 잇는 통일대로 사업도 일부 보수세력을 제외하고는 지지와 찬성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분단 55년 만에 이루어진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 해도 너무 서두르면 안 된다.

    시민단체와 관련 전문가들은 경의선 철도와 도로개설로 인한 환경문제가 심각함에도 이것을 알리는 데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 자칫 통일의 흐름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지금처럼 졸속공사를 계속한다면 좌시하기 어렵다. 경의선은 통일의 길로 가는 첫 시험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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