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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에서 권력 나온다?… 허리 휘는 ‘밥값’

총리 등 업무추진비 절반 이상 지출…밥 안 사는 의원은 지구당 활동도 어려워

‘밥’에서 권력 나온다?… 허리 휘는 ‘밥값’

‘밥’에서 권력 나온다?… 허리 휘는 ‘밥값’
한국 정치는 밥에서 시작해 밥으로 끝난다’. 99년도 집행된 총리 업무추진비 8억60만원 중 식사비용이 5억5000만원이다. 국무총리가 올 상반기 사용한 식사비만도 2억4800만원. 총리실은 ‘밥값’을 대기 위해 배정된 업무추진비도 모자라 예비비에서 2억2000만원을 끌어다 쓰고 7400만원의 특정 업무비까지 원용했다. 한마디로 ‘밥’은 돈과 인맥으로 움직이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

업무추진비 대부분을 밥값으로 지출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대구참여연대가 지난 5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문희갑 대구시장은 99년 사용한 업무추진비(1억6994만원) 가운데 43%인 7306만원을 간담회와 오찬 등에 사용했다. 대구시의회는 99년 업무추진비 2억4571만원 중 무려 86%를 밥 먹는 데 사용했다. 부산시도 마찬가지다.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가 지난해 2·4분기 부산시장 판공비를 분석한 결과 1억405만원의 업무추진비 중 61%인 6351만원이 식비 등 접대성 경비로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인맥관리’ 한국 정치의 자화상

그렇다면 국회의원들은 어떨까. 민주당 한 재선 의원의 측근은 밥값으로 인한 고충을 이렇게 토로했다.

“경험으로 볼 때 국회의원들이 1년에 쓰는 돈이 평균 3억원 정도 된다. 이 가운데 50%는 밥값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지구당을 관리하려면 밥값을 쓰지 않고는 어림도 없다. 유권자들은 정치인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의 하나로 밥값을 얼마나 잘 대는지를 살피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정치의 고비용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밥 정치’는 없어지기 힘들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모 인사의 경우 장관시절 카드 6개를 갖고 한달에 3000만원을 밥값과 술값으로 썼다”는 놀라운 얘기를 들려줬다. 밥값을 대느라 카드 사용한도를 넘겨 어려움을 겪었다는 의원들 얘기도 의원회관에서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다.

한나라당 소속 3선 의원 A씨. 그는 한달에 300만원 가량을 밥값으로 지출하고 있다. 지구당 행사가 있을 때, 서울에서 인맥관리 차원에서 사람들을 만날 때 주로 밥값이 많이 든다고 한다. A씨의 측근은 “밥값을 많이 쓰는 정치인들은 당직을 맡고 있는 사람이거나 ‘기자 관리’를 하는 경우 등 두 부류다. 이럴 경우 한달에 밥값으로 거의 1000만원 가까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초선 의원이라고 해도 정치적 야심이 큰 사람일수록 밥값에 대한 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민주당 서영훈 대표는 “대표가 됐을 때 한끼 2만, 3만원짜리 식사만 하려 했는데 요즘에는 63 빌딩에 있는 고급 음식점에도 가게 됐다”며 고충을 토로한 적이 있다. 서대표는 “좀더 검소한 정치문화 풍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한 말”이라고 설명했다. 서대표의 공식적인 한달 판공비는 2500만원 정도. 물론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밥값이다.

행정부처와 정치인들은 누구를 상대로 ‘밥값’(술값 포함)을 쓰는 것일까. 환경부(장관 김명자)가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에게 제출한 장관 업무추진비 명세를 훑어보면 대략 흐름을 읽을 수 있다.

1999년 6월부터 올 7월말까지 명세를 분석한 결과 명확하게 확인된 140여건 가운데 언론사 관련 부분이 67건(41%)이다. 그 다음을 차지하는 것이 국정원이나 기획예산처 등 정부 부처와 청와대 수석 등과 오-만찬을 가진 경우다. 25건으로 전체의 18%에 해당한다. 식사가 이루어진 장소도 호텔 등 고급 음식점이 대부분이다. 물론 환경부의 경우를 모든 부처에 일반화시킬 수는 없지만 업무추진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행정부처에서 이런 식으로 업무추진비를 쓰는 것은 기획예산처 지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기획예산처는 올 1월 각 부처에 ‘2000년도 세출예산 집행지침’이라는 지침서를 내려보냈다. 이 지침서에는 각 부처 업무추진비와 관련, ‘경비지급기준’이라는 항목이 있다. 이에 따르면 외빈을 초청해 접대할 경우 연회비는 3만원 이내, 선물비는 8만원 이내로 하도록 돼 있다. ‘오-만찬시 참석 인원을 최소화하고 고급 업소 이용을 최대한 자제하며 경비지급기준을 준수하여 집행하도록 한다’는 세부 집행지침도 나와 있다. 그러나 기획예산처가 내려보낸 이 지침을 지키는 부처는 거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고급음식점이 정치인들에게 주는 매력은 무엇일까. △보안 유지가 가능해 은밀한 대화를 즐기는 정치인들의 속성에 적합하다는 사실 △식사뿐 아니라 장시간 대화가 가능한 편리성 △만나는 손님의 격에 맞춰야 한다는 부담감 등등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밥값 부담이 정치인들의 활동을 위축시키거나 로비의 대상이 되게 하는 경우도 있다. 현정부 들어 장관을 지낸 B씨는 15대 국회 당시 주로 의원회관에서 밥을 해결하곤 했다. 당시 B씨의 측근은 “B씨가 밥살 돈이 없어 사람 만나기를 꺼린다”고 말할 정도였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국회의원들의 밥값을 대신 내주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인카드를 국회의원들에게 줘 한도 안에서 마음껏 쓰도록 한다는 것. 돈 대신 카드를 뇌물로 주는 셈이다.

‘밥값’의 대부분은 ‘술값’이라는 것이 사정을 아는 사람들의 말이다. 진짜로 돈이 들어가는 것은 밥을 먹고 장소를 옮겨 진행되는 2차 술잔치 때라는 것. 때문에 정치인들이 드나드는 강남 고급유흥주점들은 별도의 ‘특별관리자 리스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동교동계 인사는 “술집의 경우 음식점과 달리 사정 당국의 감시를 피해 자주 단골을 바꾸는 것이 정치인들의 특징”이라고 전했다. 강남에 있는 술집을 단골로 드나들던 한 동교동계 인사는 “강남 고급 룸살롱에 드나든다”는 투서가 청와대에 올라가 한동안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다. 이 인사는 보란듯이 청와대와 사정당국 인사들을 이 술집으로 초대, 고급 술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고급 음식점이나 고급 술집을 이용하는 국회의원들이 예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다. 이는 초-재선 의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생긴 정치문화의 변화. ‘계보정치’로 일컬어지는 돈 중심의 정치 결사체가 점차 소멸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실명제 실시로 돈의 흐름이 투명해진 것도 정치인들이 함부로 고급 음식점에 출입할 수 없게 하는 강제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때문에 최근 고급음식점에 출입하는 국회의원들은 주로 중진의원들이라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소장파 의원들 고급 음식점 출입 줄어

간담회 등과 관련해 호텔 대신 국회 안 귀빈식당을 이용하는 의원들도 크게 늘었다. 30, 40대 소장파 의원들은 으레 조찬모임마저도 호텔이 아닌 국회에서 갖는다. 국회 담당자는 “15대 때와 비교해 두 배 이상 이용률이 늘었다. 평상시는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젊은 의원들이 늘어나며 생긴 변화다.





주간동아 2000.11.09 258호 (p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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