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8

2000.11.09

“남북관계 과속이다” “어허, 무슨 말씀”

이회창-이인제 대북정책 논쟁…상반된 통일·대북관 차기 대선 정국 변수로 작용할 듯

  • 입력2005-05-18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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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지만, 가장 희망하는 대통령 감은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이라는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 발표(10월18일)된 적이 있다. 한국대학신문이 전국 20개 대학생 9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여론조사는 차기 대통령을 이회창(22.8%) 이인제(7.9%) 노무현(1.4%)의 순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희망하는 대통령 감은 이인제(6.9%) 이회창(6.7%) 노무현(4.9%)의 순서였다.

    이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나듯 차기 대통령 선거 하면 유권자들은 일단 이회창 총재와 이인제 최고위원을 떠올리고 있는 듯하다. 물론 대통령 후보로 이총재가 거의 상수(常數)가 된 야당과 달리 여당의 후보 결정 과정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단계다. 야당도 대선 주자로서 이총재를 확정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보다는 덜하겠지만 한나라당 또한 대통령 후보를 확정하기까지는 많은 변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정치권 인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단계에서 가장 앞서 있는 사람은 역시 이총재와 이최고위원이다.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것이 정치권의 입지지만 현재로서는 선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선점 효과는 지난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993만표, 이인제 후보가 492만표를 얻었다는 현실적인 결과에서 출발한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바로 이런 선점 효과가 대세론으로 이어지는 시초 단계”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총재 안정·안보 앞세운 현실론에 바탕

    이런 차원에서 이인제 최고위원이 최근 이회창 총재의 남북관련 발언에 대해 정면으로 공박하고 나선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옹호하는 동시에, 차기 대선 경쟁을 다자(多者) 구도가 아닌 양자(兩者) 구도로 좁히는 효과를 가져오는 ‘순발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회창 총재는 10월24일 대전 서구청장 보선 지원연설과 고려대 행정대학원 특강을 통해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높은 단계 연방제의 전단계이며, 높은 단계의 연방제는 고려연방제로 김정일`-`김일성이 절대 수령지위 아래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 “북한이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하자고 하니까 청와대도 좋은 생각이라며 환영했지만 우리는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총재는 또 “남북관계는 과속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총재의 이 발언이 나오자 청와대는 25일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하기로 합의한 적이 없다”면서 “(이총재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묘하게도 청와대의 반박 논리를 좀 더 보강하고 구체화한 것은 이인제 최고위원이었다.

    이위원은 25일 전남대 행정대학원 초청 특강과 27일 한국여성경영자총협회 초청 특강에서 “남북관계만큼 시급한 내치가 어디 있느냐”면서 “현재의 남북관계 진전은 결코 과속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위원 논리에 따르면 그동안의 남북 대치와 긴장이 우리 국민에게 많은 부담과 경제 발전의 제약을 줬기 때문에 남북한이 서로 이익을 보는 ‘윈-윈 정책’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내치라는 것. 이위원은 북한에 왜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느냐는 주장에 대해서도 “가령 우리가 60만t의 쌀을 북한에 주면 북한 주민이 이를 다 알게 되고 남한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가면서 우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이를 통해 남북 긴장이 해소되면 외국인 투자와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돼 결과적으로 손해볼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위원은 “전향적 대안도 없이 편협된 시각을 갖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이총재를 직접 겨냥했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총재와 이위원의 이런 대립 양상은 사실 3년여 전의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벌였던 공방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2년 후의 텔레비전 토론회를 미리 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북문제에 대한 두 사람의 관점은 97년 대선 때나 지금이나 별로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대로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3년여 전에도 이총재의 대북관은 매우 보수적이었다. 이총재는 대북지원이나 대북경협 및 투자 등에서 “북한의 변화 여부에 따라서”란 ‘조건부 정책’을 항상 주장했다. “북한이 변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의 변화는 한계가 있다” “남북한간의 경제협력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은 좋지만 남북간 문제는 항상 현실을 봐야 한다” 등등 안정과 안보를 앞세운 기존의 현실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는 이총재 자신의 보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나라당 자체가 보수 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존립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총재가 최근 잇따라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쟁점으로 떠올리며 공격에 나선 것도 현재의 남북관계 진전에 대해 이총재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고 있다는 당내 보수세력이나 영남권 시선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 실제로 최근 이총재와 조찬이나 오찬을 가졌던 한나라당 중진 인사들은 이총재에게 보다 선명한 보수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최근 금융권의 혼란 등 내치 문제가 김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여론으로 전이돼가고 있는 사정도 이총재의 공격을 부추긴 요인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이인제 최고위원의 전향적 태도는 자신이야말로 김대통령의 통일정책을 계승할 적임자임을 과시하는 성격이 짙다. 이위원의 한 측근은 “97년 대선에서도 이인제 후보가 가장 적극적인 통일정책을 내놓지 않았느냐”면서 “이위원의 대북정책 기조는 김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다. 이위원 자신부터도 “대북정책의 기본 방향과 통일을 향한 리더십이 김대통령 당대에 종료돼선 안 되며 대북포용정책이 차기 지도자에게도 계승, 발전돼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대북정책 계승론’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확실히 당내 다른 예비주자들에 비해 한 걸음 앞선 느낌이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이회창 총재와 이인제 최고위원의 지지계층은 극명하게 엇갈린다(상자기사 참조). 그만큼 두 사람의 개성도 다르며 통일정책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상반된 대북관이나 통일정책이 앞으로의 대선 정국에서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자못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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