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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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지 않아도 고운 평양 여성들

수수한 옷차림 순박한 자연미인 활보…머플러 나부끼는 버버리코트 ‘멋쟁이’ 눈길

  • 입력2005-05-18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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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꾸미지 않아도 고운 평양 여성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같은 언어를 쓰는 것만큼 친근감을 갖게 하는 요소를 찾기는 드물다. 55년 동안 남북이 서로 갈라져 사는 동안 언어의 동질성이 사라졌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으나 평양에서 7박8일 동안 체류하면서 아직도 남북한은 ‘같은 언어’를 쓰고 있음을 확인했다. 호상(상호) 발족(족발)처럼 뜻은 같으나 음절이 바뀐 단어도 있고, 오징어(낙지) 낙지(오징어)처럼 뜻이 서로 뒤바뀐 단어도 있으나 뜻과 음이 서로 통하지 않는 경우는 생각처럼 많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반가운 것은 남남북녀라는 한자말이었다. 북한에서는 한자말을 잘 쓰지 않지만 이 말은 널리 통용되는 것처럼 보였다. ‘남남’인 기자가 북쪽 사람들로부터 이런 말을 듣는 것 자체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평양에서 만난 호기심 많은 여성들은 대개 “남쪽 남성들은 다 기자 선생님처럼 잘 생겼냐”고 분에 넘치는 인사말을 건네곤 했다. 그런 ‘호감’ 덕분에 일상생활에 대한 대화는 자연스레 남자들보다는 여성들과 나눌 기회가 더 많았다.

    익히 아는 바이지만 북쪽 남자들은 남한 남자에 비해 까무잡잡한 얼굴이 더 많아 보였다. 도회지보다는 농촌에 피부가 검게 그을린 사람이 많은 것이나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 반대였다. 북한 여성들이 남한의 도시 여성보다 더 백옥처럼 하얗게 보이는 것은 아마도 화장을 안해 피부가 살아 숨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안내·해설원 ‘여성은 꽃이라네’ 노래가사 실감

    북한에는 ‘일 잘하는 처녀가 제일 곱대요’라는 노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유행하는 노래는 ‘여성은 꽃이라네’였다. 예로부터 평양에는 미인이 많다고 했는데 곁눈질로 언뜻 보기에도 ‘꽃보다 더 귀한 여인’들이 적지 않았다. 입성은 가꾸거나 꾸미지 않은 평상복 차림이든 치마 길이가 발목 위로 껑충 올라오는 개량한복 차림이든, 모두 수수하고 표정이 맑아 보였다. 인상적인 것은 머플러를 두른 버버리코트 차림의 멋쟁이 여성이 예상보다 더 많았다는 점이다.



    평양에는 수많은 기념비적 건물이 있지만 그런 건물을 둘러보거나 참관할 때마다 만나는 이가 바로 여성 안내원이나 해설원들이다. 대개는 대학을 나온 듯한 인텔리 기혼 여성인데 교양 있는 말씨에 일사천리로 나오는 해설이 무척 인상적이다. 김일성 주석의 생가인 만경대에서 만난 50대 초반의 해설원, 개선문에서 만난 키 작은 40대 해설원,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을 안내한 20대 후반의 안내원 등이 모두 그랬다.

    이들 대부분은 한복 입성이었고 추운 날에는 살짝 코트를 걸치기도 했으나 주체사상탑 해설원만은 머플러가 나부끼는 버버리코트 차림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북에서는 보기 드물게 안경을 낀, 차가운 느낌을 주는 인상이면서도 부드러운 미소가 지성미를 풍겼다. 해설 경력을 묻자 “주체탑 완공과 함께 시작했다”고 한다. 완공 시점이 그쪽 연도로 ‘주체 71년’(1982년)이니 19년 동안 한 곳에서 안내와 해설을 해온 셈이다.

    그런 경력에 걸맞게 그녀는 지난 8월 당시 박지원 문화부 장관과 언론사 사장단을 안내했다고 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인사가 누구냐고 묻자 선뜻 박지원 장관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종합대(김일성종합대)에서 조선문학을 전공한 이 인텔리 여성은 몽양 여운형 선생의 손녀딸이었다.

    평양에서 승용차로 두 시간 거리인 묘향산(향산이라고도 함)의 국제친선전람관 안내원 중에는 순박한 자연 미인들이 더 많았다. 기자를 안내한 리종임 안내원(28)에 따르면,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외국에서 받은 선물을 전시해 놓은 이 전람관의 여성 안내원은 30명쯤 된다고 했다. 김일성 주석의 밀랍상이 안치된 곳이어서 그런지 안내원들은 절도가 있어 보였고 일이 없는 안내원들은 건물 한쪽에 다소곳이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역시 지난 8월 언론사 방북 대표단을 안내한 리종임 해설원은 이곳이 일제 강점기부터 금광으로 유명했던 곳이나 김주석이 ‘금과 인민의 휴식을 바꿀 수 없다’며 금광 개발을 반대하고 인민의 휴양지로 가꿀 것을 지시해 국제친선전람관도 여기에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수십만 점의 진귀한 선물이 전시된 전람관을 대충 관람한 뒤 안내원이 “통일을 위해 좋은 글을 남겨 달라”며 감상문을 청했다. 그래서 김주석이 이곳에 와 남긴 ‘묘향산 가을날에’라는 시구를 흉내내 ‘향산 가을날에’라는 제목으로 짧은 글을 남겼다.

    만수대를 찾기 전에 ‘대동강 꽃상점’에 들렀다. 북쪽에서는 생화보다는 조화가 더 흔해 보였다. 생화가 드문 이유를 묻자 수줍음을 무척이나 많이 타는 김금순-리현희 판매원은 기념일을 앞두고는 생화를 많이 찾지만 평시에는 조화를 많이 찾는다고 했다. 평양 남자들은 애인에게 생화를 선물로 주는데 결혼을 앞둔 연인에게는 주로 순백색의 화관(조화)을 건네준다고 한다. 한복을 입은 이곳 신부들이 부케 대신에 흰꽃 화관을 머리에 얹고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이란다 .

    김주석의 동상이 서 있는 만수대 언덕은 온통 신랑신부 천지였다. 안내원에 따르면 평양 시민들은 결혼식을 올릴 때 이곳에 와서 헌화와 절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나이는 신랑이 25~27세쯤이고 신부는 23~25세쯤인데 남한보다 조혼이지만 대개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였다. 더러는 학교 공부를 마친 학생들이 동상 앞에서 절을 하며 ‘어버이’한테 감사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만수대의 김일성 동상은 평양 시민들에게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장소였다.

    평양에는 신호등이 없다. 대신 여성 교통안전원이 ‘인간신호등’ 역할을 한다. 평양 남성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교통안전원은 ‘평양의 명물’이지만 사진을 찍기는 힘들었다. 교차로의 한복판에 서 있는 데다 차들이 다가올 때마다 고개를 좌우전후로 돌리는 바람에 승용차를 타고 가면서는 눈을 맞추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대개 20~30대의 여성으로 한시간마다 교대근무를 한다고 했다. 기자의 호기심으로 평양에서 눈독을 들인 여성 중 대화를 나눠 보지 못한 유일한 여성이 교통안전원이었다.

    안내원은 평양의 여성 교통안전원을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을 반영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교통단속과 같은 질서 유지를 위해서는 때때로 완력이 필요하지만 꽃다운 여성의 손끝 하나로 수많은 남성 운전자들이 순응하는 것은 제도가 부여한 권위 때문이라는 것이다. 농촌의 ‘영예군인’에게 시집가는 도시 처녀들도 마찬가지다. 북한에서는 전상을 당한 상이군인을 영예군인이라고 한다. 대학 나온 도시 처녀들이 시골의 영예군인에게 시집가는 것을 영예로 아는 것은 남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제도의 우월성’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같은 설명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대목이기도 했다.

    호텔에서 접한 복무원들도 싹싹하고 친절했다. 하루는 기자가 묵었던 방 관리원 여성이 벗어둔 양말을 빨아 놓았기에 관례대로 ‘외화와 바꾼 돈표’ 10원(약 5달러)을 놓고 나갔는데 그대로 있었다. 그래서 다음날 방 청소하러 들어온 관리원에게 감사를 표하고 연유를 묻자 “일 없습니다. 돈 받자고 한 일이 아니고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인데, 내 집처럼 생각하고 속옷도 내놓으십시오”라고 했다. 평양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서 만난 김경선 의례원은 친절하게도 기자에게 안내를 자처하며 “통일이 되면 인천에서 배를 타고 남포 갑문으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곳 옥류관 앞에서 내려 연회를 즐기고 가십시오”라고 했다. 결코 허투루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제도와 이념의 우월성’ 을 떠나서 북쪽 여성들이 때묻지 않고 순박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7박8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통일이 되면 이 순박한 평양 여성들이 남쪽 남정네들에게 홀리지 않을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안내원과 운전수에게 “북쪽 여자들이 남쪽 남자들을 선망하는데 통일되면 북쪽 남자들은 어떡하냐”고 슬쩍 농담을 건넸더니 이렇게 대꾸했다. “남쪽이 인구가 더 많은데 무슨 걱정입네까, 우리야 남쪽 여자하고 결혼하면 되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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