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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관료당’을 타파하라

‘관료당’을 타파하라

‘관료당’을 타파하라
한국사회에 제 기능을 하는 정당이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생길 전망이 불투명하다면 나라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군사독재에 항거해 그 오랜 기간 치열한 투쟁을 벌여온 시민들은 막상 민주화가 이루어졌을 때 소중한 민주정치를 제대로 이끌 정치집단이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몹시 당황했다. 정당다운 정당이 없으니 국회다운 국회가 존재할 리도 없다. 그 결과, 다시 국정은 관료의, 관료에 의한, 관료를 위한 것으로 회귀했다. 시대상황을 제대로 읽은 영민한 대학생들은 민족역사상 가장 극렬한 고시열풍에 휩싸였다.

군사독재는, 여기에 참여한 군인들이 갖가지 권력과 특혜를 누린 것이 표면적으로 사회문제가 되었지만 그 이면에 진짜 지배세력으로서의 독점적 지위를 만끽한 것은 관료집단이었다. 군사독재는 사회주의 북한과의 대립상황을 통해 정당화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군사독재하에서 사회주의 체제와 매우 흡사한 관료천국이 전개되었다. 관료들은 군인 출신 대통령이나 조직상관에 대한 충성심만 의심받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권위를 타협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시민들은 국정의 주체가 아니고 객체였으며 단지 세금을 내거나 병역을 이행해야 할 때 소집되는 봉건적 존재였다.

그 시대에는 심지어 공항의 출입국사무소 직원이나 동사무소 창구 직원까지도 시민들에게 막나가는 언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시민들의 삶을 근저에서 옥죄고 국정에서 소외되게 한 것은 정책관료들의 음험한 기술관료적 권위주의였다. 개인적으로는 고시라는 대한민국 최고의 관문을 뚫었고 집단적으로는 경제개발이라는 대한민국의 세계적 성취를 주도했으니 어느 누구의 비판이나 충고에도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조직문화가 형성되었다. 사실 무엇이 국정의 사안이고, 어떤 방법으로 해결돼야 하고, 어떻게 필요한 자원을 조달하는지를 모두 정책관료들이 결정해 온 것이나 다름없다. 관료들이 그만큼 많은 일을 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배태된 독선과 부패는 엄청난 사회적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군인 출신 대통령들이 물러나고 민간정치인 출신 대통령들이 취임했을 때, 시민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정부 개혁과 문제관료 숙정을 기대했다. 그러나 지역구도에 의존해 간신히 당선된 이들 문민대통령은 단구(短軀)로 청와대에 입성했으며, 국정을 전면 새롭게 집행하는 데 필요한 이른바 개혁주도 세력을 양성하기보다는 기존 관료집단에 의존하여 몇 가지 단편적인 생각들을 실현시키려 했다. 이들이 이끄는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국회가 확실한 거수기로 전락하도록 만드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다. 그래서 민주화가 관료들의 입지에는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으며, 수십여년의 개발지상주의 관료 독주의 역사가 아직도 도도히 지속되고 있다.



결국 관료 독주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시민운동단체들의 몫이었다. 민주화의 결과로서 대통령과 의회 의원들을 정상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민사회적 비판역량의 증대일 것이다. 그래서 주요한 국정사안들이 생길 때마다 국회에서의 정책토론 대신 시민운동단체들의 검증과 비판에 더 많은 시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언론 보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적-재정적 자원이 극히 부족한 이들 단체의 역할은 대부분의 경우 상징적 차원에 머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능하고 적극적인 관료엘리트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이들이 어떠한 국가적 견제장치나 사회적 견제집단도 없이 일방통행식으로 국정을 주무르면 언젠가는 국가와 사회의 안위가 근본적으로 위협받을 수 있다.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생각없는 대통령이 누구의 머리를 빌려 나라를 환란으로 이끌었겠는가.

근자에 들어 현 정부까지도 관료개혁을 포기한 데 따른 갖가지 증후군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에 대한 시민들의 비판과 저항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환경 노동 복지 의료 교육 문화 등 각 사회정책 영역에서 나타나는 관료들의 독선과 국정의 난맥상은 집권 후반기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 오히려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관료당’ 개혁에 나서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0.07.20 243호 (p96~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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