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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임정의의 해외 건축 탐방 : 빈②

유리와 강철의 ‘오묘한 조화’

오토 와그너 우편국 1백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세련된 디자인·돋보이는 가구 등 감탄 저절로

유리와 강철의 ‘오묘한 조화’

유리와 강철의 ‘오묘한 조화’
합스부르크 제국의 카를 5세는 어느날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라고 했다. 궁중 화가인 티탄은 초상화를 그리던 중 그만 붓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카를 5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신이 직접 허리를 굽혀 붓을 주워 티탄에게 건네주었다. 황제는 어느 누구 앞에서도 몸을 구부리지 않는 것을 큰 법도로 여기던 시대라 황제가 몸을 일개 궁중화가에게 굽히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이야기는 합스부르크 제국의 예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준다.

빈에서 문화적인 독창성이 가장 돋보였던 시기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이며, 건축에서 잘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은 세제션관이다. 이는 ‘국립 빈 예술 아카데미’ 원장이었던 오토 와그너의 제자인 조세프 마리아 울브리히의 작품으로 당시의 화려했던 건축 사조를 지금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빈 건축은 세제션 운동에 속한 일련의 건축가들과 아돌프 루스라는 건축가로 대표할 수 있다. 세제션 운동은 당시 영국의 예술공예 운동이나 프랑스와 벨기에의 아르 누보 등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지배 양식인 고전 건축을 대체하고자 했던 개혁운동이었다.

빈 세제션의 결성은 중심지 외곽의 재개발 지역인 랑슈트라세가 보수적인 건축물로 채워지는 것을 반대하는 젊은 건축가들의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유럽 각지의 예술운동과 보조를 취하면서 당시의 허구적인 문화 사조와 예술가들에게 “우리는 너희들과 다르다”고 외쳤다.

건축가이자 이론가인 아돌프 루스는 본격적인 모더니즘의 전환기를 보여주었다. ‘귀머거리들아 들어라’로 시작되는 그의 글모음 ‘허구에 대한 외침’과 그의 건축 작품들은, 크게는 도시의 건축에서부터 작게는 그 속의 일상 생활에 이르기까지 비꼬면서 부정하고 있다. 오토 와그너의 제자들인 조세프 마리아 울브리히와 조세프 호프만,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와 콜로만 모세 등은 과거 예술가들의 양식과 단절하며 1898년 세제션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분리운동을 계속해나갔다.



울브리히가 디자인한 세제션관은 고전 건축과 아주 다르다. 승리의 월계관을 주제로 담은 금속 돔이 마치 사방에서 빛을 방출하는 듯한 이미지를 전해주며 그 밑에 4개의 기둥이 돔을 받치고 있다. 벽면에는 클림트의 그림에서 유래했다는 식물 문양이 장식돼 있다. 3000개의 월계수 잎과 700개의 열매들로 장식된 외부의 화려함은 빈 건축운동이 얼마나 훌륭한 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는지 보여준다.

유리와 강철의 ‘오묘한 조화’
1904년 설계된 오토 와그너의 우편국은 빈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다. 시내 건물들이 대부분 4, 5층 정도의 건축물로 연결돼 있어 우편국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 건물은 건축도 사이에서는 워낙 유명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일단 정면의 전경 사진을 찍고 입구로 들어가면 계단과 통하는 홀이 나온다. 우편국 안에서는 지금도 업무를 그대로 보고 있다. 내부 모습은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과거와 전혀 달라진 게 없다. 세련된 디자인의 의자며 테이블, 가구들이 원형 그대로 잘 배치돼 있고 중앙에는 과거의 역사 자료들을 한눈에 볼 수 있게 전시해 놓았다.

오토 와그너는 1894년 53세에 빈 아카데미 교수가 되었는데 그때만 해도 르네상스와 바로크 건축을 모델로 삼아 전형적인 절충주의 방식으로 인정받는 건축가로 군림했다. 그러나 같은 해에 아카데미의 기대를 저버리는 소책자를 한 권 출판했는데, 이 책은 건축가로서의 와그너가 얼마나 급진적이 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그는 이 책 ‘근대 건축’에서 ‘실용적인 것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또 ‘예술적 창조를 위한 출발점은 현대생활 안에서만 발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건축 구조와 새로운 재료의 활용에 있어서의 시도와 원리는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며, 이것들은 인간의 요구와 조화되어 새로운 형태로 창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형태와 기능, 기술 사이에 새로운 균형이 얻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런 이론에 따라 우편국 건물의 실내는 놀라울 만큼 디자인의 순수성을 나타낸다.

건축가 기디온은 이 건물의 실내가 의심할 바 없이 20세기 초창기에 세워진 가장 비타협적인 실내 건축 중 하나라고 말한다. 이런 순수성이 새로운 재료와 잘 타협됐다는 사실이 바로 와그너 작품의 특징이고, 이 시대 건축가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와그너는 이 건축물에 유리로 지붕을 덮은 안뜰을 계획했다. 이러한 안뜰은 19세기 중엽 이후에 흔히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이 우편국의 백색 홀에서 유리와 철로 된 볼트는 기능적 요구 사항을 만족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모든 건축적 표현으로 승화되고 융합돼 나타나고 있다. 위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강철의 수직 지지대는 유리로 된 천장의 부유하는 듯한 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이 공간의 선적 경향은 경직된 느낌이다. 또한 모든 장식들이 제거된 단순한 모양을 보여준다. 디자인은 아무런 움직임도, 연속성도, 장식도 포함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 건물은 로코코에 대항한 스파르타식 경향을 생각나게 한다.



주간동아 2000.06.15 238호 (p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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