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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수출하는 독일

독일 민법은 ‘수출 히트 상품’

동유럽-중앙亞 등 신생국들 ‘법 수입’ 봇물…한국 민법 구성에도 영향력

독일 민법은 ‘수출 히트 상품’

독일 민법은 ‘수출 히트 상품’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국회에서는 새로운 법안의 의결을 놓고 열띤 공방전이 한창이다. 혁명민족당의 한 의원은 마지막 연설에서 “전면적 계약의 자유가 자유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몽골에 이 새 법안이 실시되는 것을 저지할 것이다” 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 발언자의 영향력 때문일까. 새로운 법안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걱정스러운 눈짓을 교환한다. 이들은 사유재산과 상거래의 자유를 인정하는 새로운 민법안이 몽골에 시급히 필요하다고 판단하는데, 만약 올봄 선거 이전에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 연기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독일의 법학자 크니퍼도 이를 걱정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는 몽골에서 새로운 민법의 초안을 구성하는데 3년이란 시간을 쏟아부었다. 만약 이 법안이 부결되기라도 한다면, 그의 노력은 모조리 헛수고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일당 독재 끝에 이른바 사회적 시장경제라 부르는 체제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이 체제를 실행해야 할 새로운 공화국에는 강자에게만 유리한 무법상태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몽고의 개혁이 실현되려면 새 법안, 특히 경제법 개혁을 통해 국민의 경제행위를 뒷받침하면서 법적 안정성을 통해 개인들에게 사회적 기회를 증가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판단한다. ‘시장이 그것을 원한다’.

이 말은 자주 인용되는 하버드대 제프리 삭스 교수의 말이지만, 현재 변모하고 있는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에는 미사여구처럼 들릴 뿐이다. 이미 새 법을 제정한 나라들에서조차 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법률가들에게 지불할 돈도, 법정을 짓거나 법전을 인쇄할 재정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언론매체가 이에 대한 보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시민들은 새 법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다.

독일은 구소련의 붕괴 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14개 신생국들 변화 과정에 은밀하게 관여하고 있는데, 그 주역 중 한 사람이 바로 법학교수 크니퍼다. 그는 브레멘 대학의 민법 교수지만 대학 강의보다는, 아프리카에서 광산법을 기획하는가 하면 1992년부터는 브레멘 대학의 기술협력단체와 함께 14개의 후기 공산국가들을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서는 등 국제적 활동에 치중하고 있다. 그의 과제는 이 나라들에 자유시장을 위한 규칙을 세우는 동시에 독일법을 수출하는 것이다. 그에게 처음 이 일을 맡긴 사람은 당시 독일 외무장관이었던 한스 디트리히 겐셔였다. 그루지야 공화국을 방문했던 겐셔는 친구이자 구소련의 외무장관이었던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으로부터 ‘법개혁’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독일이 통일이라는 대변혁의 과정을 먼저 경험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겐셔는 크니퍼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고, 그 후부터 그는 1년 중 8개월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의 고원을 헤매거나, 난방장치도 없는 방에서 몇 시간씩 회의를 하고 보드카를 마시며 일하고 있다. 이 분야에서는 그보다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는 독일 민법을 전파하기 위해 수년간 활동해오고 있다.

크니퍼 교수는 그러나 독일법을 이들 동유럽 신생국에 이전하는 문제는 간단하지 않을 뿐아니라 조심스러운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칫 잘못하면 온정적 간섭주의의 냄새를 풍기게 되는데, 이것은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구소련으로부터 그동안 충분히 겪어왔던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그동안 많은 서구의 법률가들이 이런 행동에 동참해 왔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법제정 상담이란 단순한 개발원조가 아니기 때문에, 개별 국가들에 인정받을 수 있는 법이란 바로 그곳의 법률학자, 판사, 그리고 정치가들과 함께해야 한다며 우즈베키스탄 법무장관의 말을 인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법은 낡은 트랙터와 같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최고급의 페라리를 가져오더라도, 그것은 웅덩이 투성이의 길에 걸려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



우즈베키스탄 법무장관의 말은 민주주의적 시장경제로 탈바꿈하려는 탈공산주의 국가들 모두에 해당된 다고 볼 수 있다. 구소련 붕괴 이후, 이 국가들은 과도기의 혼란 속에서 서구의 여러 법률전문가팀을 초청하였다. 예를 들어 그루지야 공화국에서는 미국팀과 독일팀이 서로 알지 못한 채 각각 각각 다른 법안을 작성하고 있었다. 이 법안 작성과 관련해 미국 정부는 2300만달러를, 독일은 50만마르크를 후원하고 있었다. 이렇듯 어떤 국가가 새 법안을 만들 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나라는 한 둘이 아니다. 자국법을 수출한 나라가 수입국으로부터 나중에 얻을 수 있는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상법이 같을 경우, 수출국의 기업가들이 수입국에서 활동하기가 매우 수월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이들 신생국 대부분이 독일법 중심의 대륙법을 수용한 것은 그들이 유럽에 특별한 친근감을 느꼈기 때문은 아니다. 판례 중심의 영미 보통법(comman law)은 전체를 들여다보기가 어려운 ‘결의법’ 으로서, 이 새 국가들의 법률가들을 혼란하고 불안정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몽골의 한 법학교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하게 표현된 법률이다. 그래서 법관들이 들여다보고 ‘아 대충 이래야 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말처럼, 이 신생국들에는 ‘그 자체 모순이 없고 흠결없이 완결된 규범들의 복합체’로서의 법률이 필요한 것이다. 독일법이 이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독일의 정책적 성공 때문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은 몇년 전 이를 독일의 새로운 제국주의라고 공격해대기도 했다.

독일법은 과거에도 여러 나라의 법 제정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왔다. 1896년 독일이 로마법의 구조와 표현양식을 받아들여 통일된 독일 민법전을 공표한 이후, 이것이 당시 소국가들로 분리되어 있던 독일 법질서의 핵심이 된 것은 물론, 즉시 수출상품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에 일본은 독일민법을 표본으로 일본민법을 제정했고, 이것은 나중에 한국의 민법 구성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1895년 중일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패전의 원인을 미진한 서구화에서 찾으면서 독일민법과 비슷한 법안을 작성토록 했다.

현재 몽골에서 법학은 대학입학 신청자의 3분의 2 정도가 전공하고 싶어하는 인기 학문이다.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수도 울란바토르에 법률사무소가 새롭게 문을 열고 외국 회사들이 달러로 직원을 찾기 시작하면서부터 변호사는 전망이 좋은 직업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학에서 법학 강의에, 특히 독일법 강의에 학생들이 몰려드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의회에 상정되어 있는 법안에는 독일 민법의 총칙과 채권-물권법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몽골과 독일의 관계는 오히려 지금보다 1990년 이전에 더 활발했었다. 같은 공산권 국가로서 구동독은 지난 40년 동안 약 2만명의 몽골 젊은이들을 교육시켰다.

독일 통일 이후에 오히려 양국간의 관계가 소원해진 것이다. 몽골에서는 독일에서 수입한 새 법안과 함께 다시 과거처럼 독일과 더욱 긴밀한 관계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주간동아 227호 (p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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