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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재정 가능한가

2004년 재정 흑자? “글쎄요”

정부 “2003년까지 균형재정 달성” …금융 구조조정·사회보험 등 곳곳에 복병

2004년 재정 흑자? “글쎄요”

2004년 재정 흑자? “글쎄요”
‘주식회사 한국은 재정적으로 파산상태(financial wreck)이다.’

1년반만에 IMF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들떠 있던 지난 1월 한국 정부를 긴장시킬 만한 기사가 세계적인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에 실렸다. 이 기사는 ‘한국경제 붐인가, 시한폭탄인가(A Boom or a ticking bomb)’라는 ‘도발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 전략에 골몰해 있던 여 야는 물론 어떠한 언론도 당시 외신의 이러한 지적에는 전혀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한나라당이 국가 부채 규모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경제학 분야의 ‘태두’를 자처하는 조순 민국당 대표까지 가세함으로써 촉발된 재정 적자 논란은 이 당시 외신의 경고와 너무나도 닮아 있다.

이 기사가 실린 지 꼭 두달만인 지난 3월13일 국책연구원인 한국조세연구원은 ‘적정 재정적자 규모와 재정건전화 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15년 이내에 재정 파탄이 올지도 모른다’는 무시무시한 경고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IMF 위기 이후 대규모 국채를 발행했고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팽창 위주의 정책을 펼쳐왔다. 금융구조조정뿐만 아니라 실업대책 관련 투자, SOC 관련 투자, 중소 벤처기업 지원 등에도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어왔다. 물론 이러한 정부의 재정지출 증가는 우리 경제가 IMF 위기 이후 ‘V자형’ 성장 곡선을 그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정부는 지난해 상반기 경제성장률 7.3%에서 20% 정도가 이러한 재정지출 덕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재정적자 폭은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다. 기획예산처는 애초 2000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4.0%에서 3.5%로 축소한다는 방침을 내세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야당에 의해 재정적자 논란이 제기되자 이번에는 이헌재 재정경제부장관이 정면으로 맞받아치고 나왔다. 이장관은 지난 3월15일 “올해 재정적자 규모를 당초 예상했던 18조원에서 13조원 이하로 낮춰 재정적자 규모를 5조원 이상 줄이겠다”고 밝혔다. 2003년까지 사실상 균형재정을 달성한다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도 최근 세입 구조가 좋아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장관의 이러한 발언을 뒷받침했다.

문제는 이러한 방침이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당장 올해 세입 증가로 인해 재정적자 폭을 단기적으로는 줄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같은 상황 호전이 정부가 목표하고 있는 ‘2003년 균형 재정 달성’으로 이어질지에는 의문부호를 다는 전문가들이 한둘이 아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영선연구위원은 “정부가 2004년부터 세출 증가율을 6%로 억제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실질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의지는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경기 회복으로 인해 세입 구조가 좋아지고 있다는 말만을 반복하고 하지만 세입 규모 예측은 늘 불안정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지출 분야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현재 정부가 마련중인 수정 중기재정전망에 따르면 세출 증가율을 올해 5%, 2004년부터는 6%로 억제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경제 전문가 역시 거의 없어 보인다. 우선 금융권 구조조정에 공적 자금이 추가로 투입될 가능성이 적지 않은데다 4대 사회보험 통합과 공무원 연금제도 개편에 따라 추가 세출 요인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김대중대통령이 언급한 대로 지난해 세계잉여금의 40%인 1조7000여억원을 부채 감축이 아닌 서민생활안정자금으로 돌리게 되면 여기서도 추가 부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기획예산처 관계자 역시 “부처 협의과정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세출 증가율 6% 목표가 관철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상태” 라고 실토하고 있는 형편이다.

야당에서는 오는 7월 의약분업이 실시되고 10월 들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시행되고 나면 정부가 또다시 추경 예산안을 편성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과거 경제 관료들은 ‘추경은 없다’고 선언한 뒤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추경안 편성 계획을 발표하는 등 말을 바꾼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정부가 추진하는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특별조치법’ 제정. 매년 세출 규모를 일정하게 묶어놓고 긴축 재정을 통해 재정 건전성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오는 5월까지 중기 재정계획(1999∼2003년)의 수정안을 마련한다는 계획 아래 2000년 이후의 세입-세출 규모와 분배 구조에 대한 검토작업을 벌이고 있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2003년 재정적자가 당초 GDP 대비 2.0%에서 0.5%로 줄어들 것이라는 등 긍정적 전망을 내놓고 있다. 2003년까지 균형재정을 달성하고 국채 상환을 시작할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애초 재정적자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한나라당 관계자는 아예 정부의 재정건전화 추진 계획을 ‘언 발에 오줌누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 청사에 난방을 공급하지 못할 정도의 극심한 적자를 경험한 끝에 강력한 예산통제법을 내세우고 나서야 30년만에 재정적자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현재 정부가 추진중인 중기 재정전망은 단순한 숫자의 나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늘 선거를 염두에 둬야 하는 정부여당이 특별조치법을 추진하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난센스다. 결국 16대 총선 이후 특별법 제정 문제가 다시 이슈화되기는 하겠지만 돈씀씀이를 줄이기 위한 특단의 조치 없이는 정부가 공언한 대로 2003년 균형 재정은 달성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다른 측면에서 정부 재정정책의 방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조세연구원 박종규박사는 “정부안대로 장기간 세출 증가율을 억제한다면 거시경제가 지나치게 위축되어 재정건전화 정책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세입은 늘고 정부 지출은 줄기 때문에 국민의 고통만 가중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SOC 투자 억제보다는 정부 지출이나 가계 이전 지출을 줄임으로써 거시 경제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0년대 말 재정적자가 시작된 미국도 15년이 지난 85년에야 예산통제법을 마련하고 겨우 30년만에 재정적자를 해소하면서 ‘쌍둥이 적자’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도 5년마다 세출 규모를 아예 정해놓고 강력한 조치를 동원한 덕택이었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겪은 남미의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나마 국가 재정이 훨씬 건전했었다는 것이다. IMF 위기 직후 금융권 구조조정에 수십조원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건전재정 덕분이었다. 이와 비교해 남미국가들은 만성적인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외환 위기를 맞았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은 외채 원리금과 이자상환을 위해 다시 외채를 들여와야 하는 악순환을 거듭했다. 따라서 재정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제2의 외환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전북대 강인재교수(행정학)는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사회복지, 환경 관련 지출 수요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차피 사회복지 관련 재정 수요가 꾸준히 증가할 것을 감안해 세출 증가율 목표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재정건전화를 부르짖으면서, 총선을 앞두고 여야를 막론하고 세금은 무조건 깎아주겠다고 하고 선심성 사업은 늘리겠다는 공약을 남발하는 등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국책연구원에서조차 재정적자의 심각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거듭해서 터져나오는 식이라면 대한민국의 빈털터리 지갑에는 21세기에도 늘 찬바람만 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지갑을 채워야 하는 것은 386세대를 포함해 자라나는 차세대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다.



주간동아 227호 (p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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