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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출동|‘눈속임’ 방염필증 의혹

火魔 키우는 ‘죽음의 커튼’

감사원 “유흥업소 70% 인화성 커튼 사용”…실내 화재시 ‘마의 6분’ 지연 못해

火魔 키우는 ‘죽음의 커튼’

火魔 키우는 ‘죽음의 커튼’
‘플래시 오버’(flash over). 실내에서 불이 났을 때 발생하는 폭발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연소가 덜된 가스가 천장 부근에서 계속 쌓이다 공기와 적합한 농도로 결합해 일시에 터지는 것이다.

한국화재소방학회는 재개발예정인 서울 개봉동 한 아파트단지가 헐릴 때 화재실험을 한 적이 있다. 실내에 불이 붙은 지 6분 후 플래시 오버가 영락없이 일어났다. 플래시 오버를 기점으로 불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방이 온통 화염에 휩싸여 빠져나오기가 불가능하게 됐다. 따라서 화재사고에서 인명피해를 줄이려면 화재 초기 불이 옮겨 붙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게 해 플래시 오버를 늦춰야 한다. 불길을 차단하는 방염제품이 생명보호와 직결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현행 소방법은 호텔, 여관, 술집, 음식점, 노래방 등 다중이용 시설의 내부에선 방염처리가 된 커튼(여기서 말하는 커튼은 창을 가리거나 공간을 구분하는 차단시설 등을 말한다)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업주는 무거운 처벌(최고 3년 이하 징역이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는다. 게다가 구청은 방염필증이 2m 간격으로 찍혀 있지 않은 커튼이 실내에 설치돼 있을 경우 영업허가 자체를 내주지 않는다. 방염필증은 정부기관인 소방검정공사가 엄격한 실험을 통해 커튼에 불이 옮겨 붙지 않는 것이 증명됐을 때 발급해 주는 증명자료다.

따라서 소방법을 적용받는 전국 모든 업소의 커튼은 이러한 절차를 거쳐 설치된 것이며 당연히 불에 타지 않는 방염커튼이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믿음이 완전히 무너지는 일이 발생했다.

감사원은 인천호프집화재사건이 발생하자 지난해 11월 서울시내 여관 레스토랑 단란주점 룸살롱 노래방 비디오방 등 유흥업소 100여 곳을 무작위로 선정, 이곳에 걸려 있는 커튼을 수거해 방염실험을 벌였다. 3월초 나온 검사결과는 뜻밖이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실험대상 커튼 중 70%가 방염효과가 없는 ‘불에 아주 잘 타는’ 커튼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실험을 의뢰한 기관은 한국화재보험협회 산하 방재시험연구소. 이 기관은 소방검정공사가 방염필증을 내줄 때 사용한 것과 똑같은 기준과 장비로 실험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70%의 커튼에서 방염필증이 교부되어서는 안되는 실험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업소에서 사용중인 커튼을 국가기관이 다시 확인 검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감사원 관계자는 “소방검정공사의 방염검사를 전적으로 신뢰해 왔기 때문에 업소에서 사용중인 커튼을 검사한다는 것은 그동안 무의미한 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감사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구체적인 감사결과를 곧 관할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다.

표본검사이긴 하지만 이번 감사원 실험결과 거의 모든 시중 업소가 가짜 방염커튼을 사용, 대형 화재의 위험성에 노출돼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증명됐다. 방염필증을 내준 소방검정공사에 의혹의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대해 소방검정공사 관계자는 “방염검사는 적법하게 진행됐다. 전수검사가 아닌 샘플검사여서 혹시 실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필증을 받은 뒤 업주가 커튼을 자주 세탁해 방염기능이 떨어졌거나 다른 커튼으로 교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명했다.

소방검정공사의 말은 사실일까. 정반대되는 의견이 있다. 기자는 3월2일 대구시 달성군 화원읍에 있는 커튼방염업체 포산화학 대표 곽임영씨를 만났다. 곽씨는 10여년 전 유독가스를 내뿜지 않는 무공해 방염약품 파이로안타(Pyro-ANTA)를 개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인물이다. 시중에 유통되는 기존 방염제들은 인체에 유해한 물질로 알려진 브롬이 함유된 것으로, 방염가루를 커튼 표면에 칠하는 방식이다. 커튼에 불이 붙으면 브롬이 타면서 내뿜는 유독가스가 공기를 차단해 방염효과를 내는 원리다.

곽씨가 개발한 약품은 입자가 커튼섬유구조로 파고들기 때문에 물에 씻길 염려가 없다. 조환 대구염색 기술연구소장은 “곽씨의 제품은 불이 붙으면 섬유입자에 가해지는 열을 방염제가 흡수하는 원리여서 방염효과도 탁월하며 유독가스도 내뿜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제품은 상공부 우수발명상품, 환경부 신물질로 등록됐다.

곽씨는 방염업계에 불법이 판쳐 자신의 사업이 망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그의 주장을 요약한 것이다.

“97년 기존 방염업체들은 우리 약품의 인체 무해성과 방염효과를 인정, 스스로 자신들의 방염제 제조형식승인을 반납했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지금 다시 영업을 재개했다. 소수의 방염업체가 ‘덤핑’으로 전국의 커튼방염 수주를 독점하고 있다. 대신 방염처리는 날림으로 한다. 아예 방염처리는 하지 않거나 세탁 한 번으로 효과가 없어지는 값싼 요소비료성분으로 처리하기도 한다. 커튼에서 브롬성분이 나오지도 않는다. 소방검정공사도 날림으로 필증을 내준다. 방염도 되지 않는 불법커튼이 버젓이 유통되는 것을 막아달라고 행정당국에 수차례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감사원 감사결과는 이런 관행이 부른 당연한 결과다.

“나는 신약을 개발하는데 20억원의 전 재산을 투자했다. 그렇게 해서 좋은 약 개발하면 뭐 하나. 제값 받고 제대로 방염해 주겠다는 우리 같은 업체는 가격경쟁력이 없어 살아 갈 수가 없다. 공장은 부도가 났고 나는 파산될 지경이다.”

곽씨는 “진짜가 가짜에 밀려 죽게 되는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사업을 하느냐”며 가슴을 쳤다.

기자는 시중 업소 내 커튼의 방염성능을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대구시 달서구 본리동 한 여관에서 업주의 협조를 얻어 가로-세로 30cm 크기로 커튼을 절취했다. 절취된 면엔 소방검증공사의 방재필증이 찍혀 있었다. 이 커튼과 곽씨의 약품으로 방염처리된 커튼을 들고 3월3일 경기도 이천군 한국화재보험협회 산하 방재시험연구소를 찾았다. 소방검정공사가 방재필증을 내줄 때와 똑같은 조건으로 실험해 줄 것을 의뢰했다.

방염성능시험기의 버너로 커튼을 1분 동안 태운 뒤 불탄 부분의 면적이 30㎠가 초과되거나 길이가 20cm가 넘으면 불합격. 버너를 끈 뒤 커튼의 잔염이 3초 내에 꺼지지 않아도 필증이 나가지 않는다고 한다. 여관에서 갖고 온 커튼은 버너를 갖다대자마자 급속하게 타들어갔다. 불합격 기준을 넘기는데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버너를 끈 뒤에도 잔염은 66초 동안 계속돼 결국 커튼을 모두 태우고 나서야 꺼졌다.

곧이어 곽씨의 커튼을 실험했다. 버너가 직경 5cm 정도의 구멍을 낸 뒤 1분이 지나도록 커튼은 전혀 타지 않았다. 잔염도 없었다. 이 커튼은 접염횟수 실험도 통과했다. 박찬선팀장은 “실험 전 커튼을 5회 세탁해야 하는데 이번에 하지 않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방염성능시험기의 유리문을 연 것도 결과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두 검사결과를 공인해 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세탁을 하지 않고 실험에 임했다는 것은 방염성능을 입증하는데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실험을 한 커튼은 불이 타 들어가는 속도로 봐서 방염기능이 전혀 없다”고 단정했다.

해당 여관 업주는 “커튼은 한번도 세탁하지 않은 것 같다. 방염필증을 받은 우리 여관의 커튼이 모두 ‘맹탕’이라니 놀랍다”고 말했다. 이 여관에 커튼을 공급한 대구 서문시장의 한 커튼도매상은 “고객이 커튼을 결정하면 그것을 서울의 방염업체에 부쳐 방염필증을 받은 뒤 고객에게 전해준다”며 “방염을 제대로 했기 때문에 방염필증이 나간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일선 소방관은 커튼의 방염기능이 없으면 실내화재 발생시 인명피해 위험이 커진다고 말한다. 서울중부 소방서 이희묵소방관은 “방염커튼은 사람이 대피하거나 소화기로 불을 끄거나 스프링쿨러가 작용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가짜 커튼이 사라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감사원 관계자는 “이미 공공기관에 의해 검증을 받아 영업활동에 이용되고 있는 커튼을 뜯어서 다시 검사할 방법은 없다. 이번 경우는 처벌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업주의 양해를 구해 검사자료를 얻었다”고 말했다. 소방검정공사는 감사원 검사사실이 알려지자 방염검사 횟수를 늘리는 선에서 보완책을 마련중이다.



주간동아 225호 (p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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