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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칼라 워커’의 우아한 사생활

취미는 승마, 요트, 악기 연주…3050세대 돈 버는 인생에서 즐기는 인생으로

  •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l.com

‘블랙칼라 워커’의 우아한 사생활

지적이고 창의적인, 문화적이고 감각적인, 자유롭고 열정적인, 스타일리시하고 세련된. 어쩐지 드라마 혹은 영화 주인공에게나 허용될 것 같은 이 화려한 단어가 수식하는 것은 ‘블랙칼라 워커’라 지칭되는 새로운 남성 직업군이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로 나뉘던 기존 직업군에서 벗어난 이들은 공통적으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고, 성공적이면서 안정적인 커리어를 갖고 있다. 언뜻 돈 많은 고소득 엘리트층을 통칭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블랙칼라 워커에게는 또 하나 특별한 것이 있다. 문화를 향유하고 즐길 줄 아는 콘텐츠 생산자라는 점이다.

최근 전문직 종사자를 중심으로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취미를 향유하려는 사람이 늘면서 요트, 승마, 악기 연주, 회화, 무용, 사진 촬영 등 과거 별스러운 문화 정도로만 여겨지던 것들의 저변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술과 도박, 유흥 등으로 유대감을 확인하던 엘리트층의 교류문화가 점차 세련된 방식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도 포착된다.

흥미롭게도 이처럼 꽤나 특별해 보이는 존재들은 의외로 우리 주변 곳곳에 서식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취미를 즐기고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공간, 커뮤니티 등이 대폭 늘어난 데다 안정적인 경제력만 뒷받침된다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수준에서 이들 문화를 향유하는 데 필요한 소양 교육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간동아’에서는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섯 명의 블랙칼라 워커를 만나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들었다.




말에게서 인생 배우는 배우 홍요섭

‘블랙칼라 워커’의 우아한 사생활

애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배우 홍요섭 씨. [사진 제공·한국마사회]

배우 홍요섭 씨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승마광이다. 3년 전부터 한국마사회 말산업발전협의회 위원직을 맡아 활동할 만큼 적극적이다. 사극 출연이 잦은 연기자가 촬영을 위해 기본적인 승마 실력을 갖추는 사례는 있지만, 그는 경주마까지 다룰 정도로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일찍부터 골프와 스쿠버다이빙 등 온갖 스포츠를 섭렵했던 그가 승마와 연을 맺은 것은 다리 부상으로 갑작스레 수술을 받으면서부터라고 한다. 수술 후 오랫동안 거동이 불편해 어려움을 겪던 그에게 의사가 승마를 권했다.



“주치의가 외국에서 재활치료를 공부한 분이었는데 해외에서는 승마가 재활치료 목적으로 많이 활용된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썩 내키지 않았습니다. 승마 하면 경마나 도박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서요. 굉장히 사치스러운 느낌도 들고요. 어느 쪽이든 배우가 승마를 한다고 하면 좋게 보일 것 같지 않아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몰래 시작했죠. 순전히 재활 목적으로요. 그런데 4년쯤 지나니 몸도 수술 전보다 좋아지고 말에 대한 애착도 생기더군요.”

홍씨가 승마를 시작하면서 가장 놀란 것은 말의 가격이었다고 한다. 당시 골프채 하나 가격이 300만 원에 달했던 것에 비해 말은 마리당 80만 원 정도면 개인 소유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말을 관리하는 데 추가 비용이 들긴 하지만 골프나 다른 스포츠에 비해 그다지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승마는 홍씨의 생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동물과 교감하는 데서 오는 쾌감과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고 한다. 최근 일곱 살 된 경주마 ‘아줌마’의 마주가 된 그는 ‘아줌마’와 함께하면서 또다시 새로운 인생을 배우고 있다고도 했다.

“암말은 수말과 달리 감수성이 예민하고 눈치가 빨라요. 사람이 자신을 안아줄 때도 진심인지 아닌지를 알 정도입니다. ‘말의 감정과 컨디션을 살피듯 아내에게도 그렇게 했다면 더 사랑받았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죠. 게다가 ‘아줌마’는 새끼를 낳은 적도 있어서인지 인생의 깊이가 느껴져요. 서로의 컨디션이나 감정을 살펴가면서 함께 달린다는 기분을 느낄 때면 얼마나 뿌듯하고 벅찬지 모릅니다.”



바람의 자유를 누리는 치과의사 김종대

‘블랙칼라 워커’의 우아한 사생활

취미생활로 요트(왼쪽), 발레 등을 즐기는 중년 남성이 늘고 있다. 오른쪽 사진 중앙은 발레 애호가 이창배 씨. [이상윤 기자] [이상윤 기자]

서울 잠실에 있는 한 회원제 요트클럽에서 치과의사 김종대(46) 씨를 만났다. 그는 최근 골프 동호회에서 만난 지인 소개로 이곳에 가입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강변에서 요트를 즐길 수 있다는 말에 체험 삼아 한번 타본 것이 헤어나올 수 없는 요트의 매력에 빠진 계기가 됐다. 요트조정면허를 따야겠다는 욕심도 생겼다고 한다.

“요트는 육상에서 즐기는 스포츠와는 확실히 달라요. 해양스포츠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특히 인공적인 동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타고 수면 위를 가르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크죠. 요트 위에 서면 지금까지 몰랐던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요트조정면허 취득 후에는 가족들과 나들이 삼아 한강에서 요트를 즐길 생각입니다.”

강수은 ‘700요트클럽’ 대리는 최근 몇 년 사이 김씨 같은 20~40대 회원 수가 급격히 늘었다고 밝혔다. 한강을 중심으로 서울 경기권에 회원제 요트클럽이 늘어나면서 요트를 소유하지 않아도 언제든 요트를 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클럽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요트 운행과 면허 취득에 필요한 강습비 등이 포함된 1년 회비는 300만 원 안팎이다. 수억 원대 요트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것에 비춰보면 결코 비싼 게 아니라고.

요트는 배 종류에 따라 면허 종류도 다르다. 무동력 요트의 경우 기본 강습 후 바로 운행이 가능하지만, 엔진 5마력 이상의 요트는 반드시 해양경찰청에서 발급하는 요트조정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요트조정면허를 받으려면 운전면허와 같이 필기시험과 실기시험 모두 합격해야 한다. 실기시험의 경우 2~3일간 집중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취득할 수 있다는 게 관계자들 설명이다. 



아마추어 발레리노인 벤처기업 팀장 이창배

바이오 벤처기업 팀장인 이창배 씨는 엄밀히 말해 직업이 2개다. 2002년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보다 발레리노 애덤 쿠퍼의 멋진 발레 동작에 반해 발레에 입문한 그는, 간혹 남자무용수가 필요한 발레 공연 무대에 설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처음엔 발레 배울 곳을 찾는 것부터가 힘들었어요. 멋진 동작에 매료돼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발레교습소에서는 일반인 대상 강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헤매고 또 헤매다 저를 받아주는 발레아카데미를 만났는데, 마침 우리나라 1세대 발레리노 이상만 선생님이 운영하는 곳이었어요. 운이 정말 좋았죠. 그곳에서 꾸준히 배우며 발레단 소속으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요즘도 이씨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메홀라아트센터에서 일주일에 2~3회 꾸준히 발레 강습을 받는다. 호기심에서 시작한 발레가 생활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에 따르면 발레를 시작한 뒤 가장 좋아진 것은 자세와 근력이다. 학업 및 회사생활을 이어오면서 구부정해진 허리와 거북목이 자연스럽게 치유됐다.

“발레는 400년 동안 인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완성된, 굉장히 과학적인 춤입니다. 다른 춤사위는 며칠만 배워도 대충 따라 할 수 있지만 발레는 최소 3년 정도는 해야 동작에 자리가 잡히고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초창기에는 발레가 남자들의 춤이었다는 거죠.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반 무렵 이탈리아에서 프랑스로 발레가 전파되면서 성대한 궁정무용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루이 14세가 직접 발레 공연을 할 만큼 귀족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고 합니다. 이후 민간에도 퍼지면서 서양의 대표적인 춤으로 전해지게 된 거죠.”

이씨의 발레 예찬에도 아직까지 지인 가운데 선뜻 발레를 배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최근에는 성인에게 문호를 개방한 발레교습소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좋은 강사진을 갖춘 아카데미를 찾는 일이 쉽지 않고, 남자가 발레를 하는 것에 대한 선입견도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씨는 “발레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천천히 몸을 워밍업하면서 시작하는 매우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춤”이라며 “발레를 하면 몸을 움직이면서도 차분히 명상에 빠져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힘든 시기에 발레를 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고 밝혔다.



악기 연주, 대학원생 김형진, 금융맨 김경석

‘블랙칼라 워커’의 우아한 사생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취미로 배우는 김형진(왼쪽), 김경석 씨.[이상윤 기자]

서울 대학로에 있는 성인전문음악학원 ‘바다소리’에서 만난 김형진(27) 씨는 기계항공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공학도다. 바이올린을 6개월째 배우고 있지만, 원래 주특기는 클라리넷이었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교내 프로그램을 통해 클라리넷을 배우다 클래식 음악에 빠진 그는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도 클래식 동아리 회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는 공통적으로 성격이 차분하고 절제력이 있는 것 같다. 술을 마실 때도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고 그 시간을 즐기는 느낌이 강하다. 여가 시간에도 공연을 보러 가거나 함께 악기를 연습하며 보낸다”고 했다. 김씨의 꿈은 가족 음악단을 만드는 것. 굳이 프로페셔널한 실력을 갖추지 않더라도 온 가족이 함께 연주하며 음악이라는 관심사를 공유할 수 있다면 그만큼 인생이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금융맨 김경석(33) 씨는 직장생활 2년 차에 접어들 무렵 피아노를 샀고, 좀 더 전문적으로 배우고자 ‘바다소리’에 등록했다. 어린 시절 베토벤 피아노곡을 연주할 정도의 실력을 쌓았지만 학업과 취업 준비 등에 밀려 오랜 시간 피아노에서 손을 놓은 것이 아쉬웠다고. 지난 3년간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 건반을 두드리던 그는 “모든 악기가 그렇듯 피아노도 기본기가 중요한데 혼자 연습하다 보니 내가 제대로 연주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치는 것’과 ‘연주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니 정식으로 다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학원을 찾았다”고 밝혔다. 그는 언젠가 취향이 비슷한 친구, 동료들과 소규모 클래식 밴드를 결성할 계획이다. 그에게 피아노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인생을 향유하고 삶의 모토를 새롭게 다지는 멋진 프롤로그가 됐다. 






주간동아 2016.06.01 1040호 (p34~36)

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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