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0

2016.06.01

특집 | 헬조선 교육난민

함흥차사가 된 유학생들

일반 유학생 47%, 박사급 60% 귀국 포기…첫째 이유는 취업난, 살인적 노동환경도 원인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6-05-30 1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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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청년이 텅텅 빌 정도로 한번 해보라. 다 어디 갔느냐고….”

    지난해 3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7차 무역투자진흥회의 청년회의소대표단과의 대화에서 한 발언 가운데 일부다. 국내 일자리로는 취업난을 해소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해외 취업을 생각해보라는 취지의 말이었다. 취업난에 허덕이는 우리 청년들에게 한 충고였지만 현실에서 결론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해외로 나간 유학생들이 귀국을 포기하고 한국을 버리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각 설문조사에 따르면 유학생의 귀국 포기 성향은 심각한 수준이다. 일반 유학생의 47%, 박사학위 수여자의 60%가 귀국을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 세금으로 유학길에 나선 국비유학생 역시 10% 정도만 국내에 취업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잠깐 외국에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해외에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젊은 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학생에게도 취업은 좁은 문

    매해 최고치를 경신하는 극심한 취업난은 유학생의 한국행을 지레 포기하게 만드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한국의 취업 사정이 바늘구멍이니 차라리 공부를 마친 나라에 남아 직장을 갖겠다는 유학생이 늘어나는 것. 한국기술혁신학회가 2014년 발표한 ‘미국 기술 분야 대학 유학생 귀국 의사결정 요인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유학생들은 한국보다 오히려 미국에서 좋은 일자리를 얻기 쉽고 실질임금도 높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47%의 유학생이 ‘현재 귀국 의사가 없다’고 응답했다. 귀국 의사가 있는 경우도 전체의 9.5%만이 ‘확실하게 귀국을 계획 중’이라고 응답했다.  



    미국에서 생화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모(26) 씨 또한 같은 이유로 귀국을 포기했다. 석사학위증을 들고 귀국해도 한국에서 취업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김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을 선택한 순간, 한국행이라는 선택지가 머릿속에서 사라졌다”고 대답했다. “대학을 졸업한 직후에는 한국에서 취업할 생각도 했지만 살인적인 경쟁률을 보고 포기했다. 지금은 풀 펀딩(등록금을 면제해주는 동시에 매월 일정한 생활비를 주는 미국 장학제도)을 받고 있고 추후 취업도 미국에서 할 예정”이라고 잘라 말했다.  

    싱가포르에 정착해 살고 있는 이모(31) 씨도 비슷한 이유로 한국행을 포기했다. 미국 대학에서 경영학 학사학위를 취득한 이씨는 현재 싱가포르 헤드헌팅 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이씨는 “2013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1년간 한국에서 취업 준비를 했지만 어떤 기업도 미국 유명 대학 출신이 아닌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싱가포르 회사에 지원했는데 합격했다.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게 생각보다 좋다”고 말했다.

    “막상 일해보니 외국이 한국에 비해 일자리를 구하기도,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기도 수월했다. 연공서열에 따라 상사 눈치 보는 경우가 일상화된 한국에 비해 싱가포르는 능력에 따라 대우받고 상사라고 내게 업무 외 일을 부탁하거나 지시할 수도 없다. 이곳에서 3년간 일하면서 야근을 세 번 했다. 수당도 많아 야근하더라도 불만이 없다. 나중에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낳아도 한국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내 자식의 미래를 설계할 때 합리적인 사회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고 일하는 쪽과 불합리한 사회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일하는 쪽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면 당연히 전자를 택할 것이다. 앞으로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

    고학력자일수록 귀국 기피 현상이 두드러졌다. 미국 국가과학재단(NSF)이 2013년 한국 국적의 박사학위 수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 잔류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59.1%로, 절반 넘는 유학생이 한국행을 포기했다. 국민 세금으로 유학생활을 한 국비유학생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이 2013년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국비유학생 현황에 따르면 2004~2013년 정부 장학금을 받아 미국 등 유학을 떠난 국비유학생은 434명. 이 중 국내에 취업한 사람은 38명으로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차별 있어도 외국이 낫다”

    유학생의 귀국 기피 사유가 꼭 한국의 극심한 취업난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과 유학한 국가 모두에서 취업 기회가 있다 해도 직장문화나 삶의 질 등 다른 이유로 한국행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라스베이거스에 정착한 최모(27) 씨는 “나는 영주권이 있어 바로 취업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도 한국행을 생각지 않는 것으로 안다. 전공 특성상 대학 재학 중 여러 곳에서 인턴을 하게 되는데 한국계 회사와 미국계 회사를 전부 겪어본 사람은 절대 한국계 회사에 취업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미국계 회사는 합리적인 경쟁을 지향하는 반면, 한국계 회사는 매순간 서바이벌 프로그램 같은 느낌이었다. 회사에서의 업무능력뿐 아니라 행동, 생활방식, 심지어 외모까지 평가 대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타국에서 생활할 때 경험하는 ‘대나무 천장’(아시아계 미국인이 회사생활이나 승진에서 차별을 겪는 것) 같은 각종 차별조차 현지에 남으려는 유학생의 의지를 꺾지 못하고 있다. 최씨는 “(각종 차별에도) 미국에서 사는 것이 한국에서 사는 것보다 더 유리하다. 초밥가게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해도 월 3000달러(약 354만 원) 정도 벌 수 있다. 게다가 일부 지역은 한국보다 물가나 집값도 싸다. 의료보험이나 인종차별 문제가 있다지만 한국에 돌아가지 않는 쪽이 더 득이라고 생각하는 유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미국 유학생 가운데 일부는 취업을 위해 미군 입대를 선택하고 있다(43쪽 상자기사 참조). 미국에서 취업하려면 영주권 또는 시민권이 있거나 취업(H-1B) 비자를 취득해야 하는데, 그 자체가 하늘의 별 따기다. 미국 이민서비스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와 올해 각각 15만 명 이상의 한국인이 H-1B 비자를 신청했다 탈락했다. 이들에게 미군 입대는 시민권도 받고 취업도 해결하는 지름길로 통한다.

    최씨는 “미군에 입대하면 시민권을 받게 되고 부모 등 동거인에게도 영주권이 주어진다. 취업비자 문제로 고민하거나 아예 시민권을 받아 미국에 계속 거주하려는 유학생이 미군에 입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밤낮없이 일해도 미래가 없는 한국

    한국행을 포기하는 유학생은 미국이나 유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에도 눌러앉은 유학생이 늘고 있다. 일본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일본 대기업에 입사한 박모(27) 씨는 얼마 전까진 한국에 돌아오는 게 꿈이었지만 한국 기업과 몇 차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난 후 그 꿈을 완전히 접었다. 박씨는 “사실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대학 졸업 후 한국 기업의 신입사원 공개 채용(공채)에 여러 차례 지원서를 넣었지만 줄줄이 낙방했다. 반면 한국 기업보다 연봉이 높고 복지 혜택도 좋은 일본 기업의 입사시험은 여기저기 합격해 골라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일본 회사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해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일단 일본에서 취업했다 한국계 기업으로 이직할 생각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밤낮없이 일하는 업무 행태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대답했다. 박씨는 “지난해 한국계 기업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그쪽 직원이 내게 자료를 요청했다. 나는 업무시간이 지났다고 거절했지만 그 직원은 자료를 받지 못하면 자신이 해고될 수 있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설마 별일 있겠나 싶어 내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보내주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아침에 자료를 보내고 회의에 가보니, 그 직원은 중징계를 받고 해고 위기에 놓여 있었다. 한국 사회의 경쟁은 살인적이었다. 비슷한 상황을 몇 차례 더 겪었더니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밝혔다.

    박씨는 여전히 일본 대기업 M&A팀에서 높은 연봉을 받고 근무 중이다. 박씨는 “결혼과 정착도 한국에서 할 생각이 없다. 어느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아이를 키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인터넷 취업포털 사이트 ‘사람인’에서 최근 성인 남녀 1655명을 대상으로 ‘이민 의향’을 조사한 결과, 78.6%(1301명)가 ‘갈 수 있다면 가고 싶다’고 응답했다. 해외에 연고가 없는 젊은이도 한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당연히 삶의 기반이 외국에 있는 유학생은 돌아오고 싶어할 리 만무하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의 기업·조직문화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신 교수는 “해외에서 유학하며 능력 중심의 기업문화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유학생은 한국의 수직적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어 국내에 취업했다가도 다시 해외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며 “성과보다 조직에 대한 충성을 지향하는 기업문화가 사라져야 한국 기업이 유학생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두뇌 유출 손 놓은 정부, 해외 인재 유치?

    국내 인적자원 유출에 대한 정부의 해결책은 전무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미래인재정책국 관계자는 “이공계 인력의 유출을 막고자 해외 인력 유치에 힘쓰고 있다”고 대답했다. 한국 유학생의 유출 방지 대책을 묻자 “해외에 있는 유학생도 해외 인력으로 간주한다”는 엉뚱한 답변이 돌아왔다. 2014년 미래부가 발표한 ‘해외 우수인재 유치·활용방안’에서 한국인 유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대부분 장학금 지원에 그쳤다. 장학금을 지원하는 국비유학생도 돌아오지 않는 실정에는 적합하지 않은 지원 계획인 셈이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국내 인재도 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외 인재를 유치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국내 경제상황이나 경제정책을 국민이 믿을 수 없으니 해외에서 돌아오지 않는 유학생이 생기는 것이다. 한국이라는 국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유학생들도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비유학생 관리를 맡는 국립국제교육원(국제교육원)도 뾰족한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국제교육원 관계자는 “유학생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귀국 여부는 개인의 선택일 뿐”이라고 대답했다. 국민 세금으로 유학생활을 한 국비유학생(45쪽 상자기사 참조)의 귀국 포기에 대해서도 “(국비)유학생이라 해도 귀국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해외에서 취업해 높은 성과를 올리고 학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해도 일단은 한국인이다. 그들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한국인으로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 그 자체가 국가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미국 시민권 취득의 지름길이 美軍 입대라고?매브니(Military Accessions Vital to the National Interest·MAVNI)는 2009년 처음 실시된 미국의 외국인 모병 프로그램으로, 이중언어 구사자나 전문 의료기술을 보유한 외국인을 모병하는 시스템이다. 매브니가 한국 유학생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는 시민권을 취득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매브니를 통해 미군이 되면 최소 7~8년 걸리는 미국 시민권 취득 절차를 3~6개월로 단축할 수 있다. 시민권이 주어지고 군에 입대하면 미군은 입대자에게 의료보험, 생명보험, 치과보험, 주거비, 학비 등을 지원하기도 한다.

    게다가 동거인의 영주권도 신청할 수 있으니 유학생이 아닌 이민 1.5세대에게도 인기가 높다. 부모가 갖지 못한 영주권을 자녀 입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군에 따르면 지난해 매브니로 입대한 한국인은 250여 명. 이 중 약 80%는 한국 유학생 출신의 미필 남성으로 나타났다. 올해 상반기에도 200여 명이 입대를 앞둔 상황. 미군 측은 한국 출신이 아시아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중국 국비유학생은 돌아오는데…우리는 10% 미만 국내 취업 ▼2007년 5년간 국내 기업 취직 규정 삭제하자 귀국 거부…중국은 2년 자국 근무 의무화

    한국처럼 인재 양성에 힘을 쏟는 중국도 국비유학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10% 미만이 국내에 취업하는 우리와 달리 유학생의 98%가 중국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 중국 국비유학생은 유학을 마친 뒤 반드시 2년간 중국 내 직장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중국 정부는 2007년부터 ‘국가 파견 유학 대학원생 관리 규정’을 통해 국비유학생을 관리 중이다. 이에 따르면 공공자금으로 대학원 과정을 마친 유학생은 귀국 후 2년 동안 중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시 그동안 받은 장학금 전액에 30% 위약금까지 물어야 한다.

    한국 국비유학제도에도 이와 같은 규정이 있었다. 유학생은 국비유학을 마친 후 5년간 국내 기업 및 연구기관에서 근무해야 했다. 그러나 2007년 국내 근무 강제 규정이 삭제됐다. 국립국제교육원 관계자는 “2000년대 이후 유학파 박사 공급 과잉 현상으로 국비유학을 다녀와도 학계나 산업계에 일자리가 없는 경우가 많아 국내 근무 강제 규정의 현실성이 떨어졌다. 불안정한 국내 복귀보다 공부를 마친 국가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유학생에게는 더 나은 선택이다. 각 국가에 남은 유학생이 좋은 성과를 낸다면 그 자체가 국위 선양이고 해외에 있더라도 한국인이니 국내 학계나 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폐지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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