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0

2016.06.01

사회

20년 달린 서울시 지하철 ‘오늘도 무사히’

문 열린 채 출발하고 툭하면 멈춰…내구연한 폐지로 규제 방법 없어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5-27 16:4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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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8일 서울도시철도공사 7호선 이용객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날 오전 8시쯤 한 전동차가 태릉입구역에서 일부 출입문이 열린 채 중화역까지 두 정거장을 이동했기 때문. 전동차는 중화역에서 승객을 모두 내리게 한 후 차량 기지로 돌아갔다. 2월 15일에는 서울메트로 1호선 전동차가 영등포역에서 동두천역으로 향하던 중 멈춰 서 승객 200여 명이 전동차에서 내려야 했다. 1월 6일에는 서울메트로 4호선 전동차가 고장이 나 승객 800여 명이 터널에서 탈출하는 소동이 있었다. 한성대입구역과 성신여대입구역 사이에서 단전된 전동차가 멈춘 후 ‘펑’ 소리가 났고, 승객 중 17명이 부상을 입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렇게 1~4월에만 10여 건의 크고 작은 전동차 고장이 잇달았다.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내 지하철 1〜8호선에서 일어난 사고는 2011~2015년 55건에 달한다. 전동차 고장 및 지연은 뉴스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지하철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게 된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지하철 안전 문제는 여러 요소가 얽혀 있지만 그중에서도 주요 원인은 설비 노후화, 그리고 인력 문제”라고 말한다.



    고장 잦은데 검사 횟수는 오히려 줄어

    서울시 지하철은 1974년 처음 개통된 이래 현재 서울메트로(1~4호선),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 서울시메트로9호선(주)을 합쳐 약 3800대가 운행 중이다. 이 중 일부는 노후한 전동차다. 서울메트로 전동차의 약 41%는 21~25년 됐고 서울도시철도공사 전동차의 약 52%는 16~20년 된 차량이다.

    지하철 전동차 내구연한(물건을 정상 상태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은 얼마나 될까. 정답은 ‘규정된 바 없음’이다. 도시철도법은 전동차의 내구연한을 점차 늘리더니 결국 삭제했다. 1996년까지는 전동차 내구연한이 25년으로 제한됐기 때문에 이전까지 도입된 전동차들은 25년이 되던 해 새로운 것들로 대차됐다. 2009년 도시철도법이 재개정되면서 지하철 전동차의 내구연한은 최대 40년으로 늘었다. 2014년에는 도시철도법 제22조 5항 ‘도시철도차량의 사용 내구연한’이 삭제됐다. 그 대신 개별 차량의 정밀진단을 통해 사용 가능 기간을 측정하고, 노후한 전동차의 사용 여부를 5년 주기로 평가하는 방식이 도입됐다.



    전동차는 노후화하는데 검사 횟수는 오히려 줄었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 1월 전동차의 월상검사 주기를 2개월에서 3개월로, 중간 및 전반검사는 각각 2년·4년에서 3년·6년으로 변경했다. 2010년부터는 차량기지에서 승무원에게 인계하기 전 실시하던 출고점검을 폐지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10년 6월부터 일상검사 주기를 3일에서 7일로, 월상검사는 3개월에서 4개월로, 연간검사는 3년에서 4년으로 변경했다.

    현장 실무자들은 “법률 개정으로 전동차의 고장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주장한다. 남삼우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정책부장은 “내구연한이 삭제된 데다 검사 횟수마저 줄어들어 전동차의 안전성을 검증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전동차 한 대에는 4만2000여 부품이 들어 있다. 이 부품들의 내구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내구연한을 삭제한 것은 무리한 법 개정이다. 특히 전기·전자 부품은 자주 점검해야 한다. 1월 서울메트로 4호선 전동차 고장도 전기부품인 ‘고속도차단기’ 절연 불량 때문이었다. 전동차 고장을 감지하자마자 전류를 차단해 큰 사고를 방지하는 부품인데, 이것의 불량 상태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



    정비 일부 외주업체에 맡긴 후 소통 안 돼

    전동차 고장이 정비인력 구조에서 발생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비인력 일부를 외주업체에 맡김으로써 원청회사와 외주업체 간 소통이 잘 안 되고, 문제가 생겨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서울메트로는 2008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인력을 감축하면서 경정비 업무를 ‘(주)프로종합관리’에 위탁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는 2010년부터 ‘서울도시철도엔지니어링(주)’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각종 정비를 맡겼다. 하지만 기존 정규직원과 외주업체 직원이 함께 업무를 수행하면서 혼란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2월 사회공공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 ‘서울지하철 전동차 정비 외주화의 문제점과 직영화 필요성’에 따르면 외주업체 직원 다수가 정비 업무에 문제를 느끼고 있었다. 응답한 직원의 88.5%(108명)가 ‘최근 최적의 정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고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인력은 고정돼 있는데 일감이 늘어난다’(74.3%·84명), ‘직무 관련 교육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10.6%·12명), ‘원청회사와 원활한 소통, 협업이 되지 않는다’(15%·17명)고 답했다. 또한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소속 정규직 응답자 중 31%(48명)는 ‘외주업체 비정규직과 의사소통이 부재해 사고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뻔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보고서를 담당한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 모두 외주 노동자의 작업을 감독하는 정규직이 있다. 그런데 이들 관리자가 현장을 잘 모르거나 외주 노동자들과 소통이 잘 안 돼 정비작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특히 서울도시철도엔지니어링 소속 노동자들은 중정비 업무를 80% 수행하고 있어 인력 부족과 기술교육 부재가 계속된다면, 예방정비가 중요한 ‘마모로 인한 고장’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인력 충원과 새로운 기술교육이 필요하지만 외주화의 목표는 비용 절감이므로 외주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지원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서울시는 먼저 서울메트로 1~4호선의 노후시설부터 정비하고,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새 전동차 620량을 2~3호선에 투입할 예정이다. 서울시의회에 따르면 올해 정비사업에 투입될 예산은 약 1000억 원으로 전차 선로, 노후 전력설비 개량 등 9개 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총 예산에서 정부, 서울시, 서울메트로는 각각 40%, 30%, 30%씩 비용을 부담한다. 남삼우 정책부장은 “국비 지원 규모가 적으면 안전성을 확보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특히 한 대에 약 10억 원 들어가는 전동차 교체에 예산 투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승우 연구위원은 “지하철 안전대책에는 충분한 인력 확보와 교육 및 훈련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위원은 “정비인력들이 기술 숙련도를 유지해야 하는데 요즘엔 기술교육이 사이버교육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있다. 정부는 지하철 사고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충분한 인력이 원활하게 정비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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