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0

2016.06.01

정치

손학규의 구차한 ‘셀프 복귀’

은퇴하란 국민도 없었지만, 복귀하란 국민도 없다

  • 이종훈 시사평론가·정치학 박사 rheehoon@naver.com

    입력2016-05-27 16:3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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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 생각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예상 밖 총선 결과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더민주)은 완패했어야 했다. 국민의당도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더민주도 국민의당도 선전했다. 문재인에게도 안철수에게도 힘이 더 실려버렸다. 이제 두 사람은 당당히 대권주자 1, 2위다. 틈이 거의 없다. 기다린다고 틈이 벌어질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좁아질 개연성이 높다. 더 늦기 전 결단을 내려야 했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셀프 복귀’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하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달리는 명분

    어디에서 정계 복귀의 명분을 찾을 것인가. 손학규가 아니면 안 되는 상황이 최고 명분이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연이은 재·보궐선거(재보선) 참패로 문재인 전 대표 사퇴론이 제기되면서 내분이 극에 달했을 때 1차 기회가 찾아왔다. 비주류를 중심으로 손학규 구원투수론이 터져나온 것이다. 하지만 문 전 대표와 친노(친노무현)그룹이 그것을 허용할 리 없었다. 결국 문 전 대표는 그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는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그때 손 전 고문이 위원장에 올랐다면 지난 총선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됐을 것이다. 친노계의 물갈이 폭도 컸을 테고, 비주류의 탈당 사태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총선 과정에서 2차 기회가 찾아왔다. 총선 참패, 특히 수도권 완패 우려가 높아질 때였다. 문 전 대표와 달리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손 전 고문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도권 대표주자인 손 전 고문이 유세 지원에 나서달라는 것이었다. 정장선 총선기획단장을 전남 강진으로 내려 보내 공동선거대책위원장직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국민의당도 손을 내밀었다. 창당 과정에 합류해주고, 총선 과정에서는 수도권 지원 유세에 나서주길 희망했다. 안철수 공동대표가 다산 180주기 행사를 계기로 회동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손 전 고문은 두 야당 측 요구를 완곡히 거절했다. 그리고 제한적으로 본인과 인연이 깊은 야권 후보자들에 대해서만 지원에 나섰다. 여기에는 그 나름의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총선에서 야권이 패배하면 통합 요구가 빗발칠 것이다. 이때 자연스럽게 그 중심에 서서 통합을 주도할 수 있을 터. 그러나 계산은 빗나갔고 정계 복귀 명분도 약해졌다. 총선 이후 기회는 오히려 새누리당 쪽에서 찾아왔다. 총선 참패와 연쇄 낙선으로 새누리당 유력 대권주자의 위상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친박(친박근혜)계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유력 대권주자로 띄우려는 가운데 비박(비박근혜)계는 김무성 외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손학규 영입설이다. 손 전 고문을 혁신형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모시는 방안이다. 김무성계 김성태 의원은 공개적으로 언급해 논란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또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손 전 고문의 2007년 한나라당 탈당 전력이 걸림돌이다. 역시 명분이 부족한 것이다.



    부족한 세력

    손 전 고문은 강진 토굴에서 찾고자 하는 답을 찾았을까. 그에게는 극복해야 할 두 가지 난제가 있었다. 첫째, 호남 지지 획득이다. 둘째, 친노패권 극복이다. 호남 지지 획득으로 친노패권을 극복하는 것이 그의 계획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공동대표와 국민의당 호남 출신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선점당하고 말았다. 나머지 호남 지지기반은 문 전 대표와 더민주가 차지하고 있다.

    이런 속에서 손학규계는 더민주 내에서도, 국민의당 내에서도 소수파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심각한 지지율 저하와 내부 갈등에 휩싸이지 않는 한 손 전 대표와 손학규계에게 기회는 거의 없다. 그나마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계기는 각 당의 전당대회다. 당권을 놓고 더민주 내에서는 주류 친노·친문(친문재인)계와 비주류 비노(비노무현)계가 갈등을 빚다 추가 탈당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새누리당 내에서도 주류 친박계와 비주류 비박계가 갈등을 빚다 탈당 사태를 맞을 수 있다. 이들 탈당파 가운데 일부는 제3당인 국민의당에 합류할 테지만, 일부는 중간지대에 남아 제4당 창당을 시도할 것이다. 이때 손 전 고문이 중심에 서서 창당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다. 손 전 고문은 얼마 전 제36주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뒤 이에 대한 그 나름의 의지를 피력했다. “지금 국민이 모든 것을 녹여내는 ‘새판 짜기’를 시작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광주의 5월은 그 시작이다.”

    하지만 제4당에서도 손학규계가 주류가 되지 못한다면, 이번에도 남 좋은 일 하는 것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특히 새누리당 비주류 중에는 손학규계라 부를 만한 인물이 아예 없다. 보수 진영의 제4당 추진 과정에서도 그가 중심에 서기 힘든 요인이다.



    과도한 민첩

    ‘손학규는 언제나 빠르다’는 평가가 없지 않다. 손 전 고문이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 아쉬워하던 사람이 많다. 그때 손학규가 대통령선거(대선) 후보 경선을 중도 포기하고 탈당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한나라당 집권 이후 국무총리가 됐으리란 분석이 많다. 총리를 거쳐 차기 대권 도전이 가능했으리란 관측이다.

    2012년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중도에 보이콧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끝까지 완주하고 패배를 흔쾌히 인정했더라면 오히려 더 좋았을 것이란 분석이다. 2014년 재보선 패배 직후 정계 은퇴 역시 전격적이었다. 만약 그때 정계 은퇴를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비주류의 중심 인물로 활동하면서 친노패권주의 척결의 선봉에 설 수 있었을 것이다. 탈당을 주도하며 제3당 창당을 주도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안철수 공동대표보다 더 주목받았을 것이란 뜻이다.

    불과 1년 전인 2015년 5월 ‘시사저널’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호남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를 보면, 손 전 고문은 22.4%로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2위가 20.5%를 기록한 박원순 서울시장, 3위가 19.4%를 기록한 문재인 전 대표, 4위가 18.6%를 기록한 안철수 공동대표였다. 같은 조사에서 손 전 고문은 호남 신당 창당 시 참여를 희망하는 인사 순위에서도 1위였다. 2위가 안 공동대표다.

    빠른 의사결정은 지도자의 덕목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단점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 탈당 당시 참모들도 미처 설득하지 못한, 준비 안 된 탈당을 감행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서실장이던 새누리당 박종희 전 의원을 비롯해 정문헌 의원, 신현태 당시 직능특보, 최측근이던 국민의당 김성식 정책위 의장과 결별한 것이 그때다. 강진 토굴 생활로 과도한 민첩함을 얼마나 극복했는지 모르겠다. 오히려 조급함만 더 늘어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아쉬운 신곡

    정치인이 칩거하는 이유는 더 성숙해지기 위함이다.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기회지만, 못다 한 공부를 하면서 실력도 쌓을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계 은퇴를 하고 영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자신의 통일론을 가다듬는 데 공을 많이 들인 것으로 유명하다. 손 전 고문은 이런 면에서도 실력을 쌓는 데 성공했을까.

    손 전 고문이 이번에 정계 복귀를 예고하면서 들고 나온 곡은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 5년 전 나름 반향을 불러일으킨 공약이다. 그로부터 5년이 흐른 지금 국민은 여전히 ‘저녁이 있는 삶’을 갈망할까. 2012년 대선에서 화두는 단연 경제민주화였고 분배와 복지였다. 2017년 대한민국의 화두는 꺼져가는 ‘성장동력’을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다. 구조조정과 대량해고다. ‘저녁만 있는 삶’을 사는 수많은 청년실업자와 ‘저녁만 있는 삶’을 살게 될 청장년 명예퇴직자에게 어떻게 일자리를 줄 것인지가 시대적 과제라는 뜻이다. ‘저녁만 있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는 5년 전 히트곡 ‘저녁이 있는 삶’이 별로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다.

    손 전 고문은 신곡을 들고 컴백해야 한다. 신곡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면, 하다못해 리메이크한 ‘저녁도 있는 삶’ 정도라도 들고 나와야 한다. 준비, 곧 공부를 충분히 했다면 말이다. 만약에 공부가 부족하다면 컴백 시기는 조정해야 마땅하다.

    손학규 맞춤형 시나리오손학규 전 상임고문에게 기회는 아예 없는 것일까. 아니다. 극적인 상황이 전개된다면 손학규 대망론에 불이 붙을 수도 있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는 새누리당 지지율 폭락이다. 새누리당이 총선 이후에도 변하지 않은 경우다. 친박(친박근혜)계 패권주의가 유지 또는 강화된 결과 당권까지 장악하면서 비박(비박근혜)계와 갈등이 격렬해지는 경우다. 새누리당한 지지율이 20% 이하로 떨어지면 실제로 혁신형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꾸리려 들 것이다.

    이때가 기회다. 외부 영입 비대위원장으로 혁신을 주도하고 여권 대권주자로 다시 자리매김하는 것이 가능하다. 비대위원장이 아니더라도 다시 여권으로 돌아가 대권주자로서 행보를 시작한다면 일단 주목을 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지지율까지 동반 폭락한다면 금상첨화다. 반 사무총장에게는 ‘친박 후보’라는 프레임이 걸려 있다.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과 친박계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커지면 동반 추락할 개연성이 없지 않다.

    다음으로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문재인 지지율 폭락 사태다. 문 전 대표에게 악재가 발생해 지지율이 폭락한다면, 그래서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에게 1위 자리를 내준다면 더불어민주당 처지에서는 비상이다. 당내에 대권주자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로는 역부족일 경우 가장 먼저 손 전 고문을 불러들이려 할 것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이 일에 앞장설 가능성도 높다. 대권주자 당내 경선의 흥행 차원에서도 손 전 고문은 가치가 있는 카드다. 문 전 대표를 띄우려 하더라도 약체 후보자보다 강력한 후보자와 경쟁하는 편이 본선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메이커 차원에서라도 손 전 고문을 필요로 할 수 있다는 말이다. 페이스메이커로서 손학규의 가치에 주목하기는 국민의당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 공동대표를 띄우는 차원에서 손 전 고문이 필요할지 모른다. 손 전 고문 처지에서는 이를 기회 삼아 경선에서 강자를 이기는 반전 드라마를 기획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시나리오는 여권발(發) 정계개편이다. 새누리당 비박계가 탈당해 제4당으로 보수신당을 창당하는 경우다. 이들이 보수와 진보를 한데 아우를 수 있는 대권주자로 손 전 고문을 원한다면 대권 도전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제4당이 창당 이후 세를 불리는 데 성공해 오히려 새누리당보다 많은 의석을 가진 정당이 된다면 실제로 집권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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