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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 금물! 내게 좋은 게 1등급

‘1855 보르도 등급표’에 관해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맹신 금물! 내게 좋은 게 1등급

맹신 금물! 내게 좋은 게 1등급

이우환 화백이 그린 무통 로쉴드 2013년산 레이블(왼쪽)과 1973년 2등급에서 1등급으로 격상된 무통 로쉴드 와인.

철이 바뀔 때마다 와인 세일이 이어진다.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게 많다 보니 자연스레 할인 폭이 큰 와인에 눈길이 가곤 한다. 그런데 할인해도 여전히 비싼 와인이 있다. 주로 프랑스 와인인데, 이런 와인에는 ‘보르도(Bordeaux) 그랑 크뤼(Grand Cru) ◯등급’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을 때가 많다. 보르도가 유명한 와인 산지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랑 크뤼는 무엇이고 등급이란 무엇일까.

1855년 프랑스 파리는 국제박람회 준비로 한창이었다. 당시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의 우수한 와인들을 전시하라 명했고, 이 임무를 보르도와인상협회에 맡겼다. 다른 지역을 제치고 보르도를 선정한 이유는 1700년대부터 이곳이 고급 레드와인 산지로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보르도와인상협회는 단 2주 만에 ‘1855 보르도 등급표(1855 Bordeaux Classification)’를 만들어 발표했다. 그랑 크뤼, 즉 우수한 샤토(Chateau·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와이너리)를 선정해 1~5등급까지 구분한 리스트였다. 선정 기준은 와인 가격이었다. 가격이야말로 품질을 대변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 등급표가 예상외로 오랫동안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등급표에 이름이 오른 샤토는 그러지 못한 샤토에 비해 훨씬 더 고가로 와인을 팔 수 있었다. 샤토 등급이 높을수록 와인 가격이 치솟았다. 기득권을 거머쥔 샤토들은 이후 등급표의 개편을 격렬히 반대했고, 그 결과 161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등급표가 바뀐 적이 거의 없다. 큰 변화라면 1973년 샤토 무통 로쉴드(Mouton Rothschild)가 2등급에서 1등급으로 격상된 것이 유일하다. 3등급 샤토인 팔머(Palmer)는 품질과 가격이 2등급 샤토들을 훌쩍 뛰어넘지만 여전히 3등급이다. 포도밭을 서로 사고팔면서 포도를 생산하는 땅이 변하고, 샤토 주인이 바뀌면서 와인 맛이 달라져도 등급표는 바뀌지 않았다.

문제는 또 있다. 등급표를 보면 레드 와인을 만드는 샤토는 모두 보르도 안에서도 메독(Medoc) 지역에 소재하고 있다.

맹신 금물! 내게 좋은 게 1등급

프랑스 그라브에 소재한 샤토로 유일하게 ‘1855 보르도 등급표’에 이름을 올린 샤토 오브리옹 와인. 포므롤에 소재해 아예 ‘1855 보르도 등급표’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페트루스 와인은 현재 보르도 와인 가운데 최고가다. 2등급 와인 가격을 뛰어넘지만 여전히 3등급에 머물러 있는 샤토 팔머 와인(왼쪽부터).

유일한 예외는 그라브(Graves) 지역에 위치한 샤토 오브리옹(Haut-Brion)이었다. 오브리옹은 당시에도 워낙 유명해 등급표에 포함될 수 있었다. 하지만 메독만큼 유명하지 않았던 포므롤(Pomerol)과 생테밀리옹(St. Emilion) 지역은 아예 검토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페트루스(Petrus)와 슈발 블랑(Cheval Blanc)이 지금 1등급 샤토 와인보다 훨씬 더 높은 가격에 팔려도 등급표에서 그 이름을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1855년 이후 설립된 샤토들도 마찬가지다. 100년 넘는 전통을 자랑하며 4등급이나 5등급 샤토보다 월등히 더 맛있는 와인을 만들어도 등급표에 이름을 올릴 수가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와인 평론가는 ‘1855 보르도 등급표’가 더는 제 기능을 못한다고 비난하면서 개편을 요구하거나 스스로 작성한 평가표를 공개하기도 했다. 보르도와인상협회 또한 수차례 개편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1855 보르도 등급표’가 결코 무용지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 등급표를 맹신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음원 차트에 오른 가수만이 무조건 훌륭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자기 취향대로 음악을 듣기 때문이다. 와인도 그런 것이 아닐까. 등급표는 참고자료일 뿐이다. 이것에 너무 현혹되거나 매달리기엔 좋은 와인이 무척 많다.






주간동아 2016.04.20 1034호 (p76~76)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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