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4

2016.04.20

스포츠

김성근 한화 감독 “갈아치워” 야구

선발투수 5회 기용 불문율 깬 변칙 운용 논란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e-mail@donga.com

    입력2016-04-18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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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0일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부산 사직야구장 경기. 삼성 선발투수 콜린 벨레스터는 홈런 1개 포함 8안타를 맞으며 2회 1실점, 3회 2실점을 했다. 삼성은 선취점을 올렸지만 선발투수가 1회부터 5회까지 매 이닝 안타를 허용해 어려운 경기를 했다. 그러나 류중일 삼성 감독은 선발투수를 교체하지 않으며 참고 기다렸다. 벨레스터가 투구 수 93개를 기록하며 5회를 마치자 곧장 김대우를 투입했다. kt 위즈는 시즌 초반 6명의 선발투수를 기용하고 있다. 6일 경기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삼성전에서 프로 2년 차 정성곤이 선발 등판해 2회 3실점했지만 조범현 감독 역시 5회까지 지켜봤다.

    선발투수 5회 기용은 야구의 정석으로 여기는 일반적인 투수 기용법이다. KBO리그는 한 시즌 팀당 144경기를 치른다. 선발투수가 빨리 교체되면 불펜투수의 부담이 가중되고 시즌 후반 체력적인 문제나 부상에 시달릴 수 있다. 야구는 프로스포츠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그날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인 선발투수가 매 경기 나올 수 없는 종목이다. 선발투수는 한 번 등판하면 100개 안팎의 공을 던지고 최소 나흘을 쉰다. 각 팀 감독은 불펜투수들의 체력을 아끼고자 5~6일에 하루 등판하는 선발투수가 실점하더라도 최소 5회 이상 끌고 가려고 한다.

    그러나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선발투수를 기용하는 팀이 있다. KBO리그는 물론 미국 메이저리그, 일본 프로야구, 대만 프로야구 등 전 세계 야구 리그를 통틀어 거의 유일하게 선발투수 개념이 사실상 없는 매우 독특한 야구를 하는 팀이 바로 김성근 감독의 한화 이글스다.



    투수 분업화 완성

    1980년대 후반 메이저리그 최고 명장으로 꼽히던 토니 라루사 당시 감독은 5명의 선발투수와 이기는 경기 7~8회를 책임지는 불펜 필승조, 왼손타자를 전문적으로 상대하는 스페셜리스트, 9회 단 1이닝만 막아내는 마무리 투수로 이어지는 투수 분업화를 완성했다. 1이닝 전문 마무리 투수 시대의 개막으로 현대 야구의 흐름을 바꿔놓은 혁신적인 순간이었다. 라루사 감독은 반대로 지고 있는 경기의 경우 점수 차에 따라 선발투수를 최대한 길게 끌고 가고, 역시 뒤지는 경기에서 전문적으로 던지는 롱 릴리프를 함께 활용했다. 이후 라루사 감독이 완성한 투수 분업화는 메이저리그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각 투수의 능력을 활용하는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검증됐고 부상을 예방하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특히 최근 KBO리그 팀들은 스프링캠프의 선발 경쟁에서 탈락한 투수를 불펜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보직을 정하고 거기에 맞는 투구 리듬을 훈련하기도 한다. 선발투수는 100개 이상 투구가 가능하도록 지구력을 늘리고 불펜투수는 짧은 이닝 동안 전력을 다하는 강한 투구를 한다.

    kt는 올 시즌 한 발 더 나아가 불펜진을 아끼고 선발투수의 체력 안배를 위해 6명의 선발투수 로테이션을 가동하고 있다. 이 경우 선발투수가 책임져야 하는 이닝은 더 늘어난다. 1군 엔트리에는 보통 12명의 투수가 있는데 그중 7명이 불펜투수다. 회복력이 뛰어난 불펜투수라 해도 3경기 연속 투구는 매우 힘들고 부상 위험이 높다. 한 경기를 모두 책임지는 완투형 선발투수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7명의 불펜투수 수는 항상 부족하다.

    조범현 kt 감독은 “6명의 선발을 가용하고 있기 때문에 롱 릴리프가 부족하다. 선발투수가 일찍 무너질 경우 퓨처스(2군)에서 투수 한 명을 1군으로 올려야 한다. 그런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막 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한화는 시즌 초반 5경기에서 선발투수가 평균 3.3이닝만 던졌다. 불펜진이 책임진 평균 이닝은 6.4이닝이다. 한화에서 선발투수는 가장 먼저 등판하는 투수일 뿐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초반 5경기 선발이 단 3명뿐이었다. 송은범-김재영-알렉스 마에스트리만으로 선발진을 운용했다. 이후 김민우와 송창식이 선발진에 추가로 투입됐지만 약속이나 한 듯이 3.2이닝 만에 모두 조기 교체됐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매우 비정상적인 투수 운용이다. 특히 올해 입단한 대졸 투수 김재영은 팀 마운드의 미래로 꼽히지만 2경기 선발 등판에서 모두 2회에 교체됐다. 많은 감독이 신인 선수에게 선발 등판 기회를 줄 때는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게 하고자 초반에 실점해도 목표로 정한 투구 수를 다 채우도록 하지만, 김성근 감독에게 이 같은 배려는 없었다. 한화가 시즌 초반 8경기 만에 6패를 당하면서 이 같은 매우 파격적인 선발투수 기용은 야구팬들과 야구계에서 큰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물론 한화에게도 사정은 있다. 지난해 10경기에서 75.2이닝을 소화한 외국인 에이스 에스밀 로저스가 아직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아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선발 후보인 이태양과 배영수도 재활 중이다. 또 다른 선발투수 안영명은 컨디션 난조로 1군에 없다.

    반면 에이스 조상우까지 부상을 당하며 팀 마운드 전력이 붕괴됐던 넥센 히어로즈는 신예 박주현을 발굴하고 지난해 트레이드로 보강한 양훈, 그리고 역시 새롭게 육성한 신재영 등을 주축으로 선발진을 버티며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5회 이전 3실점 이하 교체

    넥센은 시즌 초반 9경기에서 단 한 번도 선발투수가 5회 이전에 마운드를 내려간 적이 없다. 한화처럼 선발투수가 경기 초반 실점한 경우도 있지만 염경엽 감독은 5회까지 선발투수를 무조건 믿었다.

    한화는 최근 3년간 자유계약선수(FA) 영입에만 465억 원을 쏟아부었다. 외국인 선수, 일본인 코치 영입까지 더하면 500억 원을 훌쩍 넘는다. 그러나 그사이 매년 2~3명의 FA를 영입하면서 20인 보호선수 외 지명되는 보상선수를 내주며 유망주 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미래보다 당장 올해 성적에 초점을 맞춘 팀 운영이지만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많은 훈련량을 소화한 겨우내 예비 선발 자원을 찾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큰 문제다.

    김성근 감독의 투수 운용은 모기업의 파격적인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올해 무조건 성적을 올려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승리를 쟁취하려는 선택으로 풀이된다. 한화는 지난해 정우람과 84억 원에 계약했고, 2014년 권혁을 영입하는 등 강력한 불펜진을 보유하고 있다. 이재우와 박정진 등 베테랑 구원투수도 있다. 그 영향으로 김성근 감독은 선발보다 불펜 야구를 더 선호하는 모습이다. 단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선발투수 육성이나 팀의 미래에 대비하는 전략은 찾기 어렵다.

    한화는 시즌 초반 8경기에서 선발투수가 5회 이전 3실점 이하 상황에서 교체됐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를 퀵후크(quick hook)라고 표현하는데 선발투수가 부상당한 것이 아니라면 매우 비정상적인 상황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이제 KBO리그에서 퀵후크는 김성근 감독의 선발투수 기용법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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